현관문에는 커다란 눈이, 테이블에는 꿈틀거리는 뱀이, 복도에는 머리 세 개를 형상화한 무거운 돌이 놓여 있다. 큐레이터 발렌티나 구이디 오토브리가 사는 피렌체 집은 영적인 기운으로 가득한 심령술사의 공간처럼 보인다. 그녀는 과거의 삶이 깃든 각종 물건을 수집하면서 세상을 읽고 해석한 후 현대인의 삶에 대입할 수 있는, 영혼을 투과하는 물건과 공간을 만든다.
사진 제공 : 발렌티나 구이디 오토브리
현관문을 열자마자 알록달록한 뱀이 꿈틀거리는 대리석 테이블이 복도 전체를 막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문에서 기다려야 할지 망설여지더군요.
이 테이블은 제가(Valentina Guidi Ottobri) 운영하는 VGO 어소시에이츠와 스칼리올라scagliola 전문가인 레오나르도 비안키Leonardo Bianchi가 합작해 만든 것이에요. 스칼리올라는 회반죽을 이용해 대리석 같은 느낌을 내는 기법으로 교회나 궁전 벽을 장식하는 데 많이 쓰는데, 테이블 상판 디자인에 적용했죠. 전설적인 연금술사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와 관련된 여러 표식과 기호가 구불구불한 뱀 사이사이에 새겨져 있어요. 뱀은 제가 특별히 신성시하는 토템 동물이에요. 저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는 현관 앞에 두었죠.
곡선처럼 휘어지면서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 옆 선반에도 신기한 물건들이 있네요. 마치 고대 박물관에 온 것 같아요.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고대 유물품을 모티브로 전통 장인이 만든 작품이에요. 주로 사원이나 무덤 등에서 출토한 드바라팔라Dvarapala를 테마로 했어요. 드바라팔라는 출입구를 지키는 남성 수호자로, 영혼이 깨끗한 이는 받아들이고 불손한 무리는 쫓아내는 일을 하죠. 여기 머리가 셋 달린 돌 조각상은 인도 힌두교 양식을 반영한 것인데, 사람들은 이런 영적인 물건이 악귀를 쫓고 불운을 막아준다고 여겨 현관 입구나 침실에 두고 소중히 다루었어요.
한국에도 비슷한 풍습이 있어요. 특히 새집으로 이사 가면 각 방에서 쑥을 태우고 바가지에 물을 떠서 고추, 숯, 소금을 넣고 부엌에 두었죠. 북어를 명주실로 감아 현관에 매달기도 했고요.
북어를 매달았다니 정말 재미있네요. 나라마다 동물, 식물, 물건은 물론 자연현상에도 의식이 있는 생명체 또는 영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이 존재했던 것 같아요. 특히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일수록 불안과 걱정을 덜기 위 자신의 신앙과 관련된 오브제를 집 안에 고이 모셨죠. 고대 로마인도 한국의 성주신처럼 사람을 따라다니는 정령 누멘Numen이나 장소를 수호하는 영 게니우스 로키genius loci가 존재한다고 믿었어요. 게니우스 로키는 도상학에서 파테라patera 또는 뱀의 형상으로 표현하는데, 건축물을 지을 때 지붕과 벽에 게니우스 로키의 형상을 부조 조각품으로 만들어 그들의 마음을 달래고 그곳에 살게 되는 사람이 무탈하길 기원했죠. 이 개념은 노르웨이 건축가 노르베르그 슐츠Norberg Schulz가 '땅의 정신과 분위기'라는 말로 재해석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어요.
“서양은 어떤 땅이든 땅의 에너지, 형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도록 해 명당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죠.”
풍수지리 같은 개념인가요?
한국에서 말하는 풍수지리와는 달라요. 게니우스 로키나 바위, 모래에 새겨진 무늬를 해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점성술 지어맨시geomancy 모두 땅의 신비한 힘이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지만, 동양의 풍수지리처럼 구체적으로 땅의 속성을 파악하고 길흉화복과 연결 짓지는 않았어요. 동양은 명당이나 흉지를 구분하지만 서양은 어떤 땅이든 땅의 에너지, 형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도록 해 명당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 개념은 건축, 기호, 수학 이론의 발전에 동력이 되었어요. 특히 이탈리아 건축가들은 정원을 만들 때 땅이 하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했죠.
혹시 물, 식물, 바위, 별을 포함한 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을 신봉하나요?
(웃음) 저는 자연숭배자도, 심령술사도 아니에요. 친구들이 농담 삼아 이 집에서 타로점도 봐줄 수 있느냐고 묻는데, 저의 관심사는 무속이나 종교 자체가 아니라 이런 현상을 통해 옛사람들의 일상과 태도를 파악하고 싶은 것이에요. 피렌체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역사에 대한 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생 때부터 인류학, 그리스어, 라틴어를 공부했어요. 시에나 대학교(University of Siena)에서 문학과 철학을 탐구하면서 기호학 논문으로 커뮤니케이션 과학 학위를 받고, 밀라노에서 브랜드 매니지먼트 관리 영역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큐레이터로 전환했어요. 글보다 오감을 이용해 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고대의 토템, 신화, 전설은 종교보다 민속예술에 가까워요. 무속이 비과학적이라고 해서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 있는 기호와 단서로 생각하는 거죠. 삶에 대한 희망과 기원이 담긴 물건이야말로 우리 삶에 가장 밀접한 생활용품이자 가장 공들인 예술품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물건을 수집하면서 세상을 읽고 해석하고 현대인의 삶에 대입할 수 있는, 영혼을 투과하는 물건과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예를 들면 저기 서랍장 위에 있는, 땅에서 출토한 토템 유적물처럼 보이는 미샤 칸Misha Kahn의 작품은 사실 블루투스 스피커이고, 바닥에 놓인 입을 벌리고 있는 인물 동상은 휴지통이에요.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을 뿌리로 한 물건을 쓰임새 있게, 현대적 화법으로 변화시켜 현대인의 심리, 감정, 문화에 파고들 수 있도록 만드는 거죠.
철학자, 예술가, 민속학자, 디자이너 역할을 하는 큐레이터인 셈이네요.
‘편안하고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남발하고, 기술을 이용한 기능적 물건이 쌓여가는 세상을 보면서 어느새 우리는 껍데기 같은 집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멋진 집에 살면 인생도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외부가 아닌 내부로 관점을 전환해야 합니다.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영적인 물건, 우리의 본성과 감각을 흔드는 공간 속에서 살아야 해요. 그래서 현대인에게 신애니미즘이 필요하다고 봐요. 믿든 안 믿든 명주실 감은 북어를 현관에 걸 때 마음속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잖아요. 만약 진짜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 북어를 베개 밑에 두고 자고 싶을 만큼 애착이 커질걸요. 슬픔과 갈망에 대해서까지 의지할 수 있는 영혼의 공간과 물건을 제안하고 싶어요.
영혼의 물건이라. 그래서인지 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어요.
현관 앞에 놓인 수호신 때문이겠죠.(웃음) 물건이 전하는 파동과 자극도 분명히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테라코타 컬러 벽, 바닥이 큰 영향을 준다고 봐요. 이 집의 테마는 땅이에요. 적갈색 테라코타를 기본으로 벽, 바닥을 마감했고, 서랍장도 모래성을 쌓아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죠. 야외 테라스에는 디자이너 크리스티나 셀레스티노Cristina Celestino가 브리오니Brioni를 위해 제작한 셰노그라피카Scenografica 타일을 사용했는데,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야외 오페라 무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땅, 사람, 음악을 연결한다는 의미가 있죠. 땅에도 에너지가 있어요. 맨발로 땅을 걸으면 우리 몸의 전기적 불균형이 해소되고 노화를 일으키는 활성산소가 중화된다고 하죠. 땅속 깊은 곳에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었어요.
땅을 닮은 분위기에 각종 나무 조각품과 식물로 집이 감싸여 있어서 이곳이 피렌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 꼭대기 층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프로젝트 때문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프랑스 남부 도시 그라스에도 그녀의 집이 있다) 이곳에 오면 왠지 어머니 자궁 속으로 들어간 듯 세상과는 완전히 격리된 채 고요한 일상을 맞이해요. 잠도 잘 자고요. 영혼이 해독되는 것 같다고 할까요? 피렌체가 아니라 휴가지에 온 듯한 느낌도 들어요.
당신의 공간처럼 영혼을 건드리는 누군가의 집에 가본 적이 있나요?
스페인 란사로테Lanzarote에 있는 건축가 세사르 만리케César Manrique의 집은 정말 마법 같고 활력이 넘쳤어요. 용암이 분출되면서 움푹 꺼진 땅과 두껍게 용암이 흘러 울퉁불퉁해진 표면을 그대로 집 일부로 활용했죠. 용암이 창문을 뚫고 집 안으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연출한 거실은 백미 중의 백미예요. 시커먼 돌덩어리 사이로 아담한 선인장이 자라고 있었죠. 꼭 한번 가보세요.
당신의 스타일을 표현한다면요?
살바도르 달리는 이런 말을 했죠. “나는 이상하지 않다. 단지 평범하지 않을 뿐이다.” 제 스타일은 초현실적이고 때론 비합리적이죠. 원래 큐레이터는 불편한 일에 불을 지피는 사람이에요. 사회적 필요, 문제, 성향에 의문을 제기해 토론하도록 만들죠. 전시회를 열거나 제 공간을 이렇게 매체에 소개해 사람들이 주목하게 만드는 것 모두 큐레이터 일에 속한다고 봐요. 저는 예술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변화는 이질적 교류에서 시작되죠. VGO 어소시에이츠에서 다양한 분야, 국적,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예술가와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협업하는 레시던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죠.
공간도, 생각도, 일하는 방식도 남다른 것 같아요. 다음에는 직접 집을 지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러고 싶어요. 이제 건축도 건축가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스토리텔링만 있다면 건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죠. 대지예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Christo Javacheff는 이탈리아 북부 이세오 호수를 건너는 다리를 만들었고, 아티스트 마르타 미누힌Marta Minujín은 카셀 도큐멘타에서 3만 권의 금서로 실제 유적지 규모의 그리스 신전을 지었죠. 얼마 전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는 건축가 헤어초크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뉴욕 맨해튼 건축물을 떠받치는 거대한 조각품을 공개했어요. 장담하건대 건축가보다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집이 당신의 일상을 더 즐겁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1220
하우스 리터러시
1083
970
SNS 상 일본인들의 집에 대한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