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PEOPLE|다양성, 커뮤니티

건축가와 무용가 부부의 예술을 닮은 집

이병엽 바이아키텍쳐 대표, 차진엽 콜렉티브A 예술감독

Text | Solhee Yoon
Photos | Sung Veen Kim
Film | Taemin Son

이병엽, 차진엽 부부는 지난 7월 1~2일 [YEOBYEOB 결혼:전]을 열었다. 2시간짜리 결혼식 대신 이틀짜리 결혼 전시를 연 것이다. 혼인신고를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 전시를 준비한 과정도 우리가 아는 통상적 수순과 다르다. 신혼집 또한 마찬가지. 하나의 스타일로 뚝딱 완성하기보다 각자의 물건과 취향을 찬찬히 그러 모으고 있다. 부부로 사는 건 하나의 정답 맞히기가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시간을 리믹스하는 과정 그 자체란 생각이다.








이병엽, 차진엽 두 분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왔는데 집에 이름이 있더군요.

(차진엽) 저희 각자의 이름 마지막 글자를 따서 ‘#엽엽플레이스’라고 태그라인을 정했어요. ‘하우스’가 아니라 ‘플레이스’인 건 이곳이 저희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협력의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집의 개념 더하기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이길 기대하고 있어요.



그저 휴식하는 곳이 아닌, 작업실이자 회의실 개념까지 확장하겠다는 뜻이네요. 그렇다면 집을 고를 때 더 신중했을 것 같아요. 이 집의 어떤 부분이 좋았어요?

(이병엽) 한남동은 아내의 고향 같은 동네이고, 집 앞에 테니스장과 공원이 있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결정적인 건 집 구조가 너무 좋았어요. 물론 전 세입자가 살고 있는 상황에서 집을 봐서 한눈에 공간을 다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느껴졌어요. 저는 건물이 태생적으로 가진 공간감, 즉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집은 그 에너지가 강렬했어요. 제가 아내를 설득해서 다음 날 바로 계약했어요.








진엽 님은 왜 망설였어요?

(차진엽) 집이 꽤 오래됐어요. 그러니까 건축 비전문가인 제 눈에는 다 뜯어고쳐야 할 것처럼 보였죠. 비유하면 시술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저희가 집을 매매하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 공사는 좀 부담스러웠죠. 그런데 병엽 씨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어요. 이 집에서 하루를 살더라도 어떤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 기억에 더 많이 남을 순간과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투자다. 그 말에 솔깃했어요.




결혼이란 게 하나의 집, 하나의 삶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온전히 존중되면서 적당히 균형과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테리어를 하며 각자의 바람을 이입했을 것 같아요. 하나씩 소개해주세요.

(이병엽) 완전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만든 게 안방 욕조 공간이에요. 저는 스스로를 ‘목욕 덕후’라고 소개할 정도로 목욕을 좋아해요. 목욕탕에 많이 갈 땐 일주일에 두 번씩 가죠. 그래서 공사를 하면 꼭 욕조를 넣고 싶었어요. 이 집은 오래된 집이라 마땅한 사이즈의 욕조 공간이 없어서 안방에 딸린 작은 화장실을 개조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원래 있던 변기, 세면대를 떼어내고 욕조만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죠.

(차진엽) 저는 좋아하는 뷰를 이야기해도 될까요? 부엌 싱크대 앞에 서면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숲 뷰를 좋아해요. 이 집에서 겨울과 봄과 여름을 보내면서 하얀 라일락이 지고 초록 잎이 나는 계절의 변화를 매일 목격했죠. 거리상으로는 멀리 있는 자연이지만 창 안으로 들어오니 마치 제 것 같고 그래요.(웃음) 우리 선조들은 이런 걸 ‘차경’이라 불렀다고 하죠? 풍경을 빌려온다고요.










저는 거실 벽도 두 분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이병엽) 저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에서 요소들 간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거실 이곳저곳에 자리할 다양한 물건과 벽면의 거대한 스테인리스 요소의 조화를 위해 바닥은 어둡게, 벽면은 두꺼운 질감과 낮은 톤으로 마감했어요. 빛을 흡수하게끔 해 안정감을 주고자 했거든요. 진엽 씨는 종종 스트레칭과 안무 연습을 하기 때문에 거실 한 면에 큰 거울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일반 거울 대신 슈퍼 미러 스테인리스를 선택한 건 재료가 만들어내는 약간의 왜곡이 이 공간의 분위기를 더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반사로 인해 공간이 더 넓어 보이죠. 벽처럼 보이는 이 스테인리스 벽면은 사실 드레스 룸과 서재 공간을 감춰주는 역할까지 하는 슬라이딩 도어예요.



인테리어 과정이 서로의 필요와 취향을 소중히 옮기는 일이었다는 게 느껴져요.

(이병엽) 저는 결혼이란 게 각자 다른 시간을 살아온 인간과 인간이 만나 하나의 집, 하나의 삶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온전히 존중되면서 적당히 균형과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집을 꾸미는 데에서도 균형과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물건도 마찬가지죠. 각자 원래 가지고 있었거나, 이번에 새로 사거나 선물 받은 오브제가 이 집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계속 줄다리기를 하죠. 그래서 저희 집에는 완성형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 집에 이사 온 지 7개월 정도 됐는데 여전히 가꾸고 있는 과정에 있어요. 한 달 전 모습과 지금 모습은 사뭇 다르죠.







이병엽 제공




결혼식 대신 선택한 [YEOBYEOB 결혼:전]이 두 분의 가치관과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일 것 같아요. 소개 부탁드려요.

(차진엽)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7 1일과 2일 양일간 저희만의 결혼 전시를 열었어요. 각자의 가족과 지인을 모시고 저희가 부부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은 일반 결혼식과 같지만, ‘결혼’의 의미에 집중하고자 ‘식’이 아닌 ‘전시’를 선택한 것이었어요. 우리 둘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를 축하하러 온 하객들 또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즐기는 시간이 되길 바랐어요. 저희가 생각하는 '결혼, 사랑, 관계'에 대한 다양한 작품과 글, 영화 관람과 토크, 라이브 연주 그리고 파티가 있었어요. 이런 시도를 한 것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러웠어요. 진지하게 연애할 적부터 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 둘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에서 결혼식이 필수일까? 필수라면 어떤 방식이, 형태가 가장 적합할까?' 그런 생각을 나눴거든요. 중요한 건 일종의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관계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하객 한 분 한 분에게 인사드리며, 그간 각자가 쌓아온 관계를 서로 나누며 자연스레 삶이 공유되기를 바란 것이에요. 각자의 지인을 서로에게 소개하는 방식이 각자 살아온 삶이 합쳐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요.










결혼식을 두 분만의 관점으로 해석한 셈이군요.

(차진엽) 저는 특히 공연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결혼식이 공연과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정해진 시간에 모두 입장해서 무대에 오른 배우들을 보다가 박수를 치고 끝나는 과정이 그렇죠. 그래서 이런 형식을 재해석하는 일이 제게는 익숙한 일이었고 자연스러웠어요. 물론 저의 작업에서도 무용수와 관람객이 고정된 공간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마주 보는 공연 예술의 틀을 깨고, 관람석을 관람객이 원하는 대로 배치하거나 관람객도 원한다면 스스로 몸의 움직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형식을 시도했어요.



[YEOBYEOB 결혼:전]에 출품한 작품은 어떤 과정으로 만들었어요?

(이병엽) 전통 혼례 장면을 떠올려보면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잔치를 벌이잖아요. 그 모습을 상상하며 저희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진작가, 건축가, 목공예가, 뮤지션, 미디어 아티스트 등 20명 가까이 되는 친구, 동료들과 같이 [YEOBYEOB 결혼:전]을 그려갔죠.










행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어요?

(차진엽) 인터뷰할 때마다 늘 받는 질문이 있어요. “어떻게 살고 싶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삶이 제 작품과 닮아 있고, 제 작업이 제 삶과 닮기를 바란다고 해요. 예술과 일상이 일치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요. 삶의 태도가 작업에 고스란히 드러나거든요[YEOBYEOB 결혼:전]이 그 중요한 지점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삶과 예술을 일치시킨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네 모습을 보고 나도 용기가 생겼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저 또한 새로운 기운을 얻었어요.

(이병엽) 요즘 시대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사람들이 사치처럼 여기더라고요. 그러나 저희가 이 시간을 준비하면서 나눈 ‘사랑이 무엇일까?, ‘우리다운 관계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 어떻게 보면 지금을 살아가는 저희에게 너무나 필요했던 것 같아요. 집에 돌아와서, 그리고 아직까지도 사랑에 대한, 관계에 대한 여러 생각을 모으고 함께 소개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랬기 때문에 [YEOBYEOB 결혼:전]이 더 풍성하고 더 많은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신혼집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네요.

(이병엽) 저희가 결혼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더 강하게 느끼고 있어요. 생이 일과 삶으로 이뤄진다고 할 때 결혼생활 또는 삶도 일처럼 하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또는 우리가 이 집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일에 몰입하면 할수록 능력이 성장하듯 우리라는 관계도, 우리 집도 계속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조금씩 변하자고요.

(차진엽) 저는 제 작업으로, 병엽 씨는 본인의 프로젝트로, 또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서 서로에게 받은 좋은 에너지와 영감이 잘 발현되기를 바라요. 그래서 이 집이 서로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이 넘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 POSTS

PREVIOUS

나와 오브제와의 관계, 그 친밀감이 편안한 곳
라이팅 디자이너 마이클 아나스타시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