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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여행자로 사는 간단한 방법

김현성 맨케이브 대표 / R.T.T.C. 디렉터

Text | Solhee Yoon
Photos | Mineun Kim
Film | Taemin Son

“사업체를 운영하다 보니 온전히 쉬며 여행하는 게 점점 어려워져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일을 하러 계속 어딘가로 떠나죠. 어쩌다 보니 여행이 일상이고 일상이 여행이 되었어요.” 김현성 대표는 가방과 자동차, 오토바이 한편에 늘 세면도구가 준비되어 있다고 말했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하는 부스터이자 어디에서나 일상을 지킬 수 있게 하는 도구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2층 카페에 올라오니 효창공원이 내려다보이네요.

2022 11월에 이 건물을 처음 보러 왔어요. 그날은 11월인데도 정말 눈이 많이 내렸거든요. 나무에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만 남았는데 그조차도 너무 예뻐 보였어요. 기왕 온 김에 효창공원에도 처음 가봤어요. 백범 김구 선생 묘가 여기 있다는 걸 그전까지 몰랐죠. 이 동네를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지금도 여전히 이곳을 좋아해요.



레디 투 트래블 센터(Ready to Travel Centre)란 이름을 보자마자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명동에서 6년간 ‘맨케이브’란 상호의 매장을 운영하다가 지난겨울 여기로 이사 왔어요. ‘여행을 준비하기 좋은 공간’을 콘셉트를 정하고 ‘레디 투 트래블 센터’라고 이름 지었죠. 줄여서 R.T.T.C.라고 불러요. 여기 2층은 카페이고 1층은 편집숍이에요.








가게 이름을 바꾼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요.

맨케이브는 사업자명으로 두고 편집숍 브랜드를 새로 만들었어요. 인생 삼모작이라고 하잖아요. 100년 가게를 꿈꾸는 건 아니니까 꼭 한 이름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6년 만의 이전이라 뭔가 새롭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20대 때 ‘남자들의 취미에 관한 편집숍은 왜 없을까'라고 생각해 맨케이브를 만들었고, 여름에 생각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빅웨이브’란 패션 브랜드도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이제 언제든 여행하고 싶어서 R.T.T.C.를 만든 셈이죠.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인가요?

여행의 의미는 사람마다 제각각일 텐데 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집 밖도, 집 안도 여행이 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전 매일 여행하는 편이죠.



그러면 본인에게 여행의 조건은 무엇이에요?

저는 가고 싶은 장소가 중요해요. 잘 곳, 탈것, 음식, 동행자 등은 그다음이죠. 장소만 정해지면 나머지는 쉬워요. 사람을 모아서 갈 건지, 혼자 갈 건지, 예산이 얼마인지, 어느 정도 머물지 등은 금방 정해요.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게 있다면, 그 여행지에 있는 제 모습을 떠올렸을 때 즐겁다, 재밌다는 흥미 여부예요. 그런 흥미가 저에게는 여행 준비의 시작이고요.



여행이라는 게 사실 거창한 게 아니네요.

예를 들어 여행지에 도착해 버스나 기차, 자동차 또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먼저 무엇을 하나요? 기지개를 켜고, 화장실을 가고, 카페나 흡연 부스를 찾잖아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대로 약간의 해방감을 맛보죠. 저에게 여행이란 그런 것 같아요. 단순하면서도 사소하지만 꽤 기분 좋은 일이면 충분하죠.




집 밖도, 집 안도 여행이 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전 매일 여행하는 편이죠.”




갈 곳을 중요시한다고 했는데 그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서른 살까지는 저도 여행 경험이 많지 않았어요. 기껏해야 남들 다 간다는 유명한 도시에 며칠 머무는 게 다였어요. 그러다 서른 살을 기점으로 이런 여행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그 시기에 친구와 하와이에 놀러 갔다가 하루는 동선을 바꿔봤어요. 점을 찍듯 관광지 이곳저곳을 다니지 않고 한곳을 거점으로 두고 위아래, 좌우를 둘러봤죠. 지역 주민의 집에도 가보고 가게 주인의 추천을 받아 근처 식당도 갔어요.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보고 듣고 체험했더니 확실히 기억에 남는 순간과 느낌이 달라지더라고요.



여행을 준비하는 의미도 남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방문지 목록을 꼼꼼하게 짜고 공간의 오픈 시간을 사전에 확인하는 성향이 절대 아니거든요. 대신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TV 프로그램이나 소설 등 무언가를 보면서 언젠가 저기에 내가 있는 상상을 많이 해요. 이게 저의 여행 준비죠. 그리고 실제로 그곳에 가서 상상한 것들은 해봐요. 자전거 일주나 바이크 일주, 싸구려 와인 한 병을 들고 숙소 베란다에서 태닝, 장난감 같은 기념품 구매, 그런 일들이죠.












버스 시간을 지키지 못할까 봐, 언어가 통하지 않을까 봐 하는 초조함이란 없군요.

여행이란 게 세상사 내 맘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 아닌가요.(웃음) 그래서 저는 배운 게 ‘준비보다 극복’이에요.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지', '저 사람이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애초에 접고 문밖을 나서요. 저는 모든 건 다 기세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정말 궁금해', '정말 이걸 알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지으면 사람들이 다 알려줘요. 저는 그랬던 것 같아요.



여행의 묘미에 쇼핑이 빠질 수 없죠. 어떤 것을 즐겨 모으나요?

저는 예전에도, 지금도 가장 많이 구매하는 게 모자예요. 그다음으로는 티셔츠, 신발, 지역 기념품 정도? 자잘하게 돈 쓰는 걸 좋아해요. 소소하게 자주 소비해야 크게 지르는 걸 예방할 수 있다고 할까요. 5만 원 안쪽에서는 어디다 쓸 거냐, 그게 꼭 필요하냐, 잘 쓸 수 있냐 이런 고민은 제쳐두고 일단 사고 봐요. 이런 소소한 즐길 거리가 일상을 간편하게 재미있게 하거든요.










시간이든 돈이든 에너지든 무언가를 희생하면서 대대적으로 큰 의미를 좇겠다는 자세보다 가볍게 무리하지 않고 즐기듯 소화하자는 태도가 느껴져요. 평범한 하루에서도 그렇듯 즐기면서 쉬어 가는 생활 방식이 있나요?

쉬는 건 좋아해도 감각이 무뎌지는 건 싫어해요. 사람도 도구도 쓰임새가 있어야 어디서라도 제값 받고 일하거든요.(웃음) 그래서 지키고자 하는 루틴이 있어요. 4일 이상은 꼭 운동하고요. 찬물로 하는 샤워를 좋아해요. 퇴근할 때만큼은 다른 기분을 느끼고 싶어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는 것을 즐겨요. 마지막으로 저에게 휴식이란 곧 목욕이거든요. 그래서 집에서는 물론이고 1 2일 짧은 여행지에서라도 근처 목욕탕 위치를 검색하고 일정을 시작하는 편이에요.








목욕이 중요해진 계기가 궁금해요.

아버지가 회사원이었는데 은퇴하던 날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목욕탕을 다니셨어요. 저를 3살 무렵일 때부터 목욕탕에 데리고 다니셨고요. 어릴 때는 목욕탕 가는 게 정말 싫었거든요. 일요일에 늦잠을 자고 싶은데 일어나야 하잖아요. 근데 습관이란 게 참 무서워서 그 귀찮아하던 게 몸에 배었는지 조금만 피곤하고 조금만 심란하면 목욕탕 생각이 나요.



재미있어요. R.T.T.C.에서 목욕용품도 소개하면 좋겠는걸요.

그럴까요?(웃음) 어쨌든 R.T.T.C.에 온 분들이 자신만의 여행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카페 테이블마다 노트를 둔 이유이기도 해요. ‘나 언제 어디에 갔다 왔는데 이런 순간이 좋았다’ 그런 이야기부터 꺼내며 자신만의 여행 준비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그동안 모은 잡지, 티켓, 스티커 등을 은근히 널어놨으니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도 좋고요.








또 기획 중인 재미난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R.T.T.C.에서 이름을 살짝 바꿔 레디 투 프레시 센터Ready to Fresh Centre란 팝업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효창동과 이웃인 명동, 이태원 등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네 빵집, 꽃집, 과일집 또는 지역의 아티스트와 한날한시에 만나 자신들의 신선한 물건을 판매하는 팝업 마켓이에요. 이제는 협업이 너무 중요한 시대이잖아요. 모이니까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요. 재미있는 일도 벌어져요. 레디 투 프레시 센터가 열리는 날이면 동네 주민들, 그러니까 10, 20대뿐만 아니라 70~80대 어르신들도 잠깐 들러서 책도 보고 식사도 하고 가세요. 지난 8 25, 26일에는 제주도 탑동에서 레디 투 프레시 센터를 열었어요. 어디로 가든 그곳의 로컬 브랜드와 함께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고요. 여러 세대가 다 같이 즐기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정기적으로 도전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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