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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평생 집을 옮겨 다닌 이유

디자이너 피에르 베나르

Text | Anna Gye
Photos | Mineun Kim

이사를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평생 여기저기 집을 옮겨 다녔다는 이야기는 주로 씁쓸한 토로로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디자이너 피에르 베나르는 “지금까지 20곳이 넘는 집에서 살았다”라며 새로운 공간을 취향에 따라 고쳐가며 사계절을 보내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언제든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날 수 있다고 말한다.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 앤티크 가구, 조각품, 예술 서적을 이고 지고 또 다른 집을 찾아다니는 여정이다.








피에르 베나르 Pierre Bénard 씨가 살고 있는 파리 5구의 이 아파트는 스물한 번째 집이 될까요?

자세히 세어보지 않았지만 아마 그럴 거예요. 저는 낯선 장소에 가서 새로운 집을 찾고 개조하고 변형하는 것을 좋아하지, 좋은 집을 유지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어요. 저에게 집은 거주지일 뿐 정착지가 아니거든요. 새로운 집에 살면서 마주하는 우연과 모험, 그것을 저만의 주파로 조율하는 일이 제 인생을 더 재미있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파리의 여러 구역뿐 아니라 도르도뉴Dordogne, 일드레 Ile de Ré 등 여러 도시의 다양한 크기의 공간에서 살아봤어요. 새로운 집을 찾는 일은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과 같아요. 매번 가슴이 두근거리죠.




자주 나가지 않기에 마음에 드는 동네에 사는 것이 중요해요. 커피 한잔도 내가 원하는 카페에 가고 싶죠.”




매 순간 이 많은 짐을 옮기는 일이 힘들지 않나요?

몸만 달랑 옮긴 적도 있어요. 가구와 모든 소품은 원하면 처분할 수 있죠. 사람들이 이사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짐 때문이 아니라 타인 때문에, 또는 잘못된 결정 때문에 이사를 해야만 한다는 무의식적 강요가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살고 싶은 도시와 집이 있고 언제든지 이동 가능한 상황이라면 누구나 이사하는 날이 기대될 거예요.










2년 전에 매입해 살고 있는 이 집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파리 중심에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내부는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고 2년간 부지런히 손본 결과죠. 커다란 벽난로, 클래식한 몰딩 등 파리 특유의 장식적 요소가 가득했는데, 불필요한 것을 모두 걷어내면서 방문도 다 없앴어요. 심지어 화장실 문까지 말이죠. 저는 빛, 공기, 에너지가 맞바람 치듯 드나드는 곳이 좋아요. 시선이나 동선이 차단되는 것이 싫었어요. 여기뿐 아니라 지금까지 살았던 집 모두 벽과 문, 창을 과감히 정리하고 커다란 로프트 스타일로 개조했어요. 집을 순환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아마 저에게 집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안식처라기보다 세상과 연결 고리가 되어주는 통로 역할로 인식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집에서는 외부와 내부, 침실 거실 등 각각의 목적에 따른 구분, 삶과 일의 경계가 따로 없어요. 다이닝 테이블에서 식사하면서 일을 할 수도 있고, 창문을 모두 열고 소파에서 햇볕을 쬐다 잠을 잘 수도 있죠.



매일 조금씩 집을 수리하고 가구 배치를 바꾸다 보면 밖에 나갈 시간이 별로 없겠어요.

천생 집돌이예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아요. 이렇게 집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니 집이 중요하고, 매번 다른 집에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곳에 이사 오고 한참 지난 후에야 가장 친한 친구가 주변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 성격을 잘 아는 친구라 늘 저희 집으로 와요. 연락도 없이 와서 문을 두드리죠.



밖에 나가지 않는다면 사는 동네나 위치가 크게 중요하지 않을 텐데요.

그렇지 않아요. 정반대죠. 자주 나가지 않기에 마음에 드는 동네에 사는 것이 중요해요. 커피 한잔 마시러 나간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카페에 가고 싶죠. 책을 사려고 주로 외출하는데, 보통 칼 라거펠트가 운영하는 리브리아리 7L Libriarie 7L, 팔레 드 도쿄 내 아트 서점, 리브리아리 갈리냐니Librairie Galignani에 갑니다.










여행은 어떤가요?

여행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서 세상과 등지고 방 안에 틀어박혀 사는 염세주의자는 아닙니다.(웃음) 정확하게 말하면 1 2일 정도의 짧은 여행만 좋아해요.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어서 장기 여행은 계획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거든요. 레스토랑을 고르는 데 세 시간 걸린 적도 있어요. 만약 하루 정도 파리에 머물러야 한다면 일분일초를 의미 있게 쓰려고 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외출하듯 가볍게 하는 여행을 좋아해요.



집에서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한 나름의 법칙이 있나요?

집에서 편안하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이 말은 즉, 집을 쉬고 먹고 자는 편안한 나만의 장소로 가둬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집 테라스에 다이닝 테이블을 두면 카페가 되고, 홈 바를 만들면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어지죠. 저처럼 이렇게 거실에 책상을 두면 일도 즐기면서 여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무조건 쉰다는 생각보다 어떤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의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돼요. 쓸모에 따라 조금씩 고쳐가면서 집의 용도를 늘려볼 수도 있어요. 그렇게 공간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집 안의 일상을 즐기게 되죠.










이력을 보니 광고 에이전시를 설립했고, 회사를 매각한 후 앤티크 딜러로 일했네요. 그림 작가로 활동했다가 지금은 폴 베르 세르페트Paul Bert Serpette 벼룩시장 내 갤러리 피에르 오귀스탱 로즈Pierre Augustin Rose의 공동 대표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고요.

집처럼 직업도 여러 번 바꿨죠.(웃음) 이런 모든 변화가 변덕이나 싫증 때문이 아니라 편견과 습관에서 벗어나려고 애쓴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적응 패턴을 만들어 예측 불허 상황에 대비하려 하지만 저는 일부러 낯선 환경을 찾아 나섰어요. 특히 회사를 매각한 이후에는 인생에서 돈을 벌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원치 않는 일을 계속하면 원하는 삶과 멀어지죠. 돈보다 재미를 위한 직업을 찾았어요. 나이 들수록 보통 안전을 추구하는데 저는 반대로 모험을 강행해야 한다고 봐요. 노화는 성숙점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멈추는 게 아니거든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창조성, 감수성이 높아지고 개성이 강해집니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를 보세요.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죠. 저도 마지막 날까지 일하고 성장하고 싶어요.








피에르 오귀스탱 로즈는 젊은 앤티크 딜러 오귀스탱 델뢰즈Augustin Deleuze, 디자이너 니나 로즈Nina Rose와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예요. 어떻게 이런 젊은 친구들과 사업을 같이 하게 되었나요?

오귀스탱을 먼저 만났어요. 폴 베르 세르페트 벼룩시장에서 앤티크 딜러로 일할 때 제가 구한 제품을 종종 오귀스탱의 것으로 착각하는 일이 있었어요. 당시 오귀스탱은 19세였고 시장에서 가장 어린 앤티크 딜러였는데 저와 여러모로 취향이 비슷했죠.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금방 친구가 되었고, 함께 파리 시내에 작업실을 얻고 이벤트를 열었죠. 그때 니나를 만났어요. 세 사람이 모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피에르 오귀스탱 로즈 갤러리는 가구 제작 브랜드예요. 제가 손으로 그림을 그리면 이를 3D 드로잉으로 구현해 프로토타입을 완성합니다. 이후 완성된 가구를 클라이언트의 공간에 멋지게 연출하는 것까지 제 담당이라 할 수 있어요.



홍보는 어떻게 하나요? 비즈니스에 소셜 미디어 활동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어요.

오랫동안 광고 분야에서 일했기 때문에 제품을 알리는 데 홍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오귀스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저보다 한참 젊고 디지털 비즈니스에 익숙한 세대인데 말이죠. 오귀스탱은 지나치게 노출하는 것이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어요. 공감 못 하는 100명의 손님보다 취향이 맞는 1명의 손님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낫다는 것이죠. 저도 동의해요.










당신은 특히 어떤 물건에 끌리나요?

변하지 않는 고전미(classisime indémodable)가 있는 물건을 좋아해요. 공간 연출에서는 저희 집에서처럼 현대적 오브제를 앤티크 물건과 섞는 것을 좋아해요. 소위 시간 개념을 흩뜨려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죠. 저는 수집가라기보다 탐미주의자에 가까워요. 수집가는 특정 물건을 편집광적으로 모으지만 저는 시기, 종류, 재질 등 어떤 카테고리로 구분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즉흥적으로 구입하는 편이니까요. 최근에도 브루탈리스트 나뭇조각, 금속 의자, 화이트 톤 소파를 구입했는데 공통점이 거의 없어요. 만약 금이 가고 부서졌다고 해도 제 마음을 울린다면 웃돈을 주고라도 구입할 겁니다. 오로지 본능만 생각한 덕분인지 제가 고른 물건은 너무 독특했어요. 그래서 잘 팔렸죠.



나이 들면서 점점 필요해진 물건이 있다면요?

사실 여기 있는 모든 물건이 단 하루 만에 사라진다 해도 아쉽지 않아요. 저는 물건에 담긴 추억이나 이야기를 모으는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를 그리워하기보다 시간이 멈춘 듯한 물건에서 미래를 읽으려고 했어요. 추억과 미래를 두루 통찰해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예지를 가지려고 노력했죠. 저의 관심사는 늘 저 멀리,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있어요. 아마 그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고, 집을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때는 제가 창의력이나 에너지 면에서 오귀스탱보다 더 젊다고 느낄 때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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