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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의 특별한 주말농장

바이올리니스트 안젤라 킴

Text | Jehoun Gim
Photos | Jehoun Gim

도심에서의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해 독일 라이프치히에서는 오래전부터 시내 인근에 주말농장 단지를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계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 안젤라 킴은 이를 활용해 자신의 가든에서 재배한 다양한 식재료에서 요리에 대한 영감을 얻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긴다. 그곳은 그녀에게 요리를 위한 창작의 샘이자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편안한 쉼터이기도 하다.








창작이란 꼭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당장 맛있는 내 식사를 만드는 일 같은 것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 베를린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는 한국계 독일인 안젤라 킴Angela Kim에게 요리란 단순한 취미 그 이상의 창작 활동이다. 어린 나이에 한국의 가족을 떠나 홀로 시작한 유학 생활에서 시작된 그녀의 요리는 생존의 영역을 넘어 열정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남다른 식재료에 대한 갈증으로 번져갔다. 이에 그녀는 남편과 함께 1년 전부터 주말농장 단지 가든 콜로니Garden Colony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식재료를 가꾸고 있다. 국내에서도 주말농장과 세컨드 하우스 등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느 때보다 뜨겁게 떠오르는 요즘,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라이프치히의 가든 콜로니에서 그녀가 보내는 휴일은 어떤 모습일까.








라이프치히라는 도시에서 오랜 생활을 하다가 주말농장을 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이렇게 가든을 하나 갖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우선 최근 몇 년 새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가든 콜로니가 트렌드로 급부상했죠. 10년 전만 하더라도 가든 콜로니는 나이 지긋한 분들의 취미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자급자족이나 서스테이너빌리티 같은 것이 화두로 떠오르며 판도가 바뀐 것 같아요. 자연스레 제 지인들도 하나둘 자기 정원이나 텃밭을 갖기 시작했고, 그걸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어요. 원래도 아파트 발코니에서 토마토 정도는 식재료용으로 키웠는데 다른 식재료도 입맛대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설레기도 했어요. 운 좋게도 집에서 차로 15, 자전거로 20분 거리인 도심 근처에 가든 콜로니 매물이 있어 이베이를 통해 일사천리로 구하게 됐어요. 전 주인이 농막과 사용하던 기구도 남겨놓고 가서 더 좋았죠.




각각의 가든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공동체 성격이 강.”




도심의 아파트와 가든을 함께 유지하고 관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직업 특성상 저는 거의 매달 주변 국가나 도시로 며칠간 연주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두 공간을 항상 제가 관리하는 건 불가능해요. 남편도 같은 일을 해서 둘 다 집을 비울 때도 종종 있어요. 아파트는 걱정이 덜하지만 가든은 오래 비워두면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그런데 다행히도 가든 콜로니는 가든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옆 가든 주인과 친해지기 마련이에요. 또 여기서 마주치는 이웃은 아파트 이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훨씬 덜 사무적이고 친근하게 느껴지죠. 제 경우에는 옆 가든 주인인 할머니와 친해진 이후로 저와 남편 둘 다 오래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항상 열쇠와 함께 할머니께 편지를 남겨요. 혹은 친구나 지인에게 비어 있는 아파트 방을 빌려주고 며칠에 한 번씩 가든에 가서 식물에 물을 주라고 부탁하죠.












정말 많은 가든이 가까이 붙어 있으면 교류가 활발할 것 같아요.

각각의 가든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든 콜로니는 공동체 성격이 꽤 강한 편이에요. 400세대 이상이 모여 있는 만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고, 파티나 축제 등 다양한 행사도 열고 있어요. 저는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요.(웃음) 제 경우는 가까운 이웃과 가드닝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필요할 때 도움을 나누는 식의 교류가 더 잦아요.



공동체인 만큼 꼭 지켜야 할 사항이 있을 것 같은데, 상식적인 부분을 제외한 특별한 규칙이 있나요?

법적으로 주거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원칙상 여기서 숙식을 하면 안 돼요. 그렇다고 따로 검열을 하는 건 아니고, 상황에 따라 하룻밤 정도 지내는 경우는 종종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토질 유지를 위해 화학비료 사용은 금지되어 있어요. 이 외에 특별한 전달 사항이 있으면 입구 게시판을 이용해 알려요. 연세 드신 분이 많다 보니 이런 부분은 아직까지 아날로그 방식이죠.








요리를 취미 이상의 부업처럼 하고 있다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저만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응용해 만든 요리를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올린 게 시작이었던 것 같고, 운 좋게도 <가디언The Guardian>지에 제 요리가 몇 차례 소개되면서 점점 더 집중하게 됐죠. 최근에는 라이프치히의 한 레스토랑에서 셰프들과 컬래버레이션으로 팝업 이벤트를 하면서 한국 재료와 음식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가든 콜로니를 시작한 이래 요리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일단 가장 큰 장점은 채소를 제가 딱 필요한 만큼만 수확해서 신선도가 유지되는 기간 동안 쓸 수 있다는 점이에요. 마트에서 사서 쓸 때는 묶음으로 사야 해서 재료가 남거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일이 꼭 생기거든요. 다시 말해 재료 수급의 질이 높아졌죠. 영양이나 맛도 대량생산한 채소와는 당연히 확연한 차이가 있고요. 그리고 내 가든에서 이것저것 가꾸다 보면 이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재료들 사이의 새로운 연관성을 발견하게 돼요. 이전에는 요리에 맞춰 재료를 샀다면, 지금은 재료에 맞춰 요리를 구상하죠. 그리고 가든에서는 항상 내가 심은 것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묻혀 있던 씨앗이 싹을 틔워 올라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부분이 새로운 영감이 되기도 해요. 결론적으로 이제는 채소를 사러 마트에 가는 일이 없어졌고 육류나 치즈 같은 것만 마트에서 구입하죠.








한국 식재료를 응용하는 경우가 많던데, 이것도 가든에서 나오는 재료인가요?

맞아요. 최근에 알타리, 깻잎, 열무 같은 채소를 많이 사용했는데 모두 독일 마켓에선 좀처럼 구하기 힘든 채소예요. 저는 한국보다 독일에서 더 오래 살았지만 어린 시절 한국에서 지내며 쌓인 추억이 많고, 매년 휴가철마다 가족을 보러 한국에 가면 어머니와 할머니가 해주신 한식을 먹고 자연스레 한식에 대한 향수가 생겼죠. 그래서 지난번에 한국에 갔을 때 다이소에서 씨앗을 왕창 사 왔어요. 다행히 기후나 토양의 변화에 예민하지 않은지 잘 자라고 있죠.



이제 가든을 시작한 지 1년 좀 넘었는데, 처음에 초보로서 어려운 부분이 많지는 않았나요?

사실 아직까지도 꽤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어요. 초기에는 유튜브로 많이 공부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보다 깊고 어려운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 전문 서적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죠. 우선 단순히 내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 기다리기만 해도 잘 자라는 것도 있고, 세세한 조건을 모두 맞춰줘야만 잘 자라는 것도 있어요. 이런 특성 때문에 식물이 애완동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재배하기 까다로운 종류는 씨앗이 아닌 모종을 사서 심기도 해요. 비용은 더 들지만 시간 측면에서 더 효율적인 방법이죠.



그런 일련의 시행착오를 통해 삶 전반에 대한 통찰이 생길 것 같아요.

저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런 통찰이 꽤 자주 생겨요. 예를 들어 제가 읽은 한 가드닝 서적에서는 초기에 토질을 어떻게 셋업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반 이상을 차지했어요. 그런 점을 보고 내가 항상 조급했음을 깨닫고 인내심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죠. 또 가드닝과 농사에서 잡초와 채소, 곤충 등이 적절히 공생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런 대목에서 다양성과 조화에 대한 인사이트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채소만 잘 가꾸면 될 것 같지만, 여러 조연과 환경의 도움이 있어야만 제대로 수확할 수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죠.








그렇다면 삶의 태도나 마인드 셋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아무래도 아파트에 살다 보면 내 공간이 내 공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가든 콜로니는 바로 옆에 이웃이 있어도 내 공간은 나만의 것이라는 확실한 느낌이 들어요. 땅부터 내가 하나하나 일궈야 하니까요. 그런 부분이 심리적 측면에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해요.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애정과 관심을 쏟아야 할 대상이 생겼고, 여기서 결실을 맺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끼죠.



가든 콜로니의 존재가 아파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나요?

내가 지쳤을 때 언제든 잠깐 숨 돌리러 갈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안정감. 이건 가든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는 전반적인 사항이고, 세부적으로 따지면 작은 부분들이 많이 바뀌고 있죠. 건강한 식습관은 물론이고, 가든의 채소에서 올라오는 꽃부터, 갑자기 어디선가 자라는 정체 모를 꽃까지 다양한 꽃을 가져와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가든 콜로니는 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자녀가 있는 분들은 주말마다 와서 가든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마련해 놓기도 하고요, 그냥 앉아서 멍때리거나 책 읽다 가시는 분도 많아요. 꼭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그냥 심적인 위안을 주는 공간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공동 센터에는 맥주와 음식을 파는 식당도 있고 공용 놀이터도 크게 잘 만들어놨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야말로 나만의 쉼터이자 놀이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라이프치히 인구 중 80%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공간이 있다면 삶이 한층 다채로워지죠. 또 주말마다 여는 행사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이곳은 주말농장 그 이상의 또 다른 커뮤니티이자 만남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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