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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도시, 재생, 친환경

우리는 아파트로 탐조하러 간다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 정맹순 작가

Text | Solhee Yoon
Photos | Mineun Kim
Film | Taemin Son

사회적 거리 두기 시절 박임자, 정맹순 모녀는 쌍안경을 들고 아파트 단지에서 탐조 활동을 했다.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새들이 단지 안으로 많이 들어왔다. 어느 나무에 어떤 새가 숨어 무엇이라 지저귀는지 들었다. 그 순간을 귀하게 여겨, 뒤돌아서면 날아갈세라 종이를 꺼내 그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팔순의 정맹순 작가가 색연필을 잡았고, 그 그림으로 딸 박임자 대표가 ‘아파트 새 지도’를 기획했다.








탐조책방은 넓은 공원 안에 있네요. 숲이 울창해요.

(박임자) 이곳은 경기상상캠퍼스란 복합문화공간이예요.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였는데 2003년 캠퍼스가 이전하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리모델링해 조성했어요. 캠퍼스를 1946년에 지었다니까 그때부터 따져도 70년 된 숲이죠. 저희는 2021년에 입주했어요.

(정맹순) 오느라 고생했어요. 여기 앉아서 먼저 차 한잔해요.



아파트탐조단 활동도, <맹순 씨네 아파트에 온 새> 출판도 박임자 대표가 기획했지요. 탐조책방도 열고요. 어떤 계기로 이토록 탐조에 흠뻑 빠졌어요?

(박임자) 2015년에탐조란 단어를 처음 들었어요. 우리 주변에 새가 있구나, 그때 처음 인식한 거예요. 이후 신경을 쓰고 주변을 보니까 사방에 새가 있더라고요. 특히 직박구리! 기자님도 직박구리 울음소리를 알면 바로, 들어봤는데!” 할 거예요. 알면 들리는 소리인데 왜 여태 듣지 못했나 하고 저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다 보고 다 듣고 산 건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인식의 전환점이 생기며 탐조에 빠지게 됐어요.







탐조책방 제공




그래서 본격적으로 탐조하기 위해 아파트탐조단을 만들었나요?

(박임자) 처음에는 생각만 하다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대면 심리 치료인 제 본업이 잠시 멈추었어요. 그때 문득 우리 아파트 주변에 어떤 새들이 살까 궁금해졌고요. 같이 사는 엄마, 옆 동에 사는 언니를 불러 함께 아파트 정원으로 나갔어요. 그리고 그럴싸한 이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아파트탐조단이라고 이름 붙인 게 모임의 시작이에요.




새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깊었어요. 그러다 내린 결론은같이 사니까 주민이라고 해야겠다였어요.”




아파트에 새가 많던가요?

(박임자) 2020년은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이 강화된 때라 바깥에 사람이 잘 안 돌아다녔어요. 사람의 흔적이 없으니 새들은 반가웠던지 단지에 새가 굉장히 많더라고요.(웃음) 1년 동안 기록한 게 47종이었어요. 멧비둘기, 박새, 꾀꼬리, 물까치, 곤줄박이, 종다리 등등 많아요.



! 단지 안에 그렇게 많은 새가 날아들다니, 정말 몰랐어요.

(박임자) 그렇게 새들을 만나보니까 우리의 기록으로만 남기기에는 아깝더라고요. 새 지도를 하나 만들고 싶었어요. 지원받을 곳을 찾다가 ()숲과나눔에서 시민 아이디어 지원 사업풀씨 프로젝트를 운영한다는 걸 알았고, 그러면서 맹순 씨한테 새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맹순 작가의 데뷔 계기였네요.

(정맹순) 어느 날 딸이 새 사진을 가지고 와서 갑자기 그려보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그리느냐고 못 그린다고 거절했어요. 평생 농사만 짓고 초등학교 6년 다닌 뒤로 연필도 잡아본 적 없으니 말이에요. 근데 신경 써서 그리고 보니 희한하게 그럴듯해요.(웃음) 또 오며 가며 딸이 예쁘다고 해줘요. 그럼 기분 좋아서 내일 또 그리고 그랬죠. 처음에는 그렇게 했어요.












탐조도 같이 다니셨잖아요. 새 보는 건 어땠어요?

(정맹순) 새를 보면 그냥 살아 있다는 기분, 나도 저 새처럼 날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요. 내가 나이 들고 보니까 힘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저 나는 새들이 부럽지요.



새를 그릴 때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정맹순) 딸이 처음부터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하니 지울 수도 없고 얼마나 신경이 쓰여요. 그래도 볼펜으로 한 것이 잘했다 싶어요. 볼펜으로 그리면 잘 못 그려도 색연필로 칠하면 되니까요. 색칠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여러 색깔이 들어가야 보기가 좋거든요. 보기에는 저래도 신경을 많이 쓴 거예요.

(박임자) 놀이 치료를 10년 가까이 했는데, 보니까 그림에 자신 없는 아이들 특징이 거의 다 그린 다음에 지우개로 지워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맹순 씨도 그림 그리기는 처음이니까 볼펜으로 그리라고 했어요. 완성하면 마음에 안 들어도 고생한 게 아까워 어쩌지 못하거든요.(웃음)








그럼 처음엔 아파트탐조단을 가족끼리 하다가 점차 단체 활동으로 키운 거네요.

(박임자) 1시간, 2시간 주변을 걷다 보니까 아파트에 굉장히 애정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아이들, 또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이런 활동을 같이 하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지금 태어나는 수많은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숲도 아파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아파트 단지의 숲은 안전하거든요. 인간에게 최적화된 숲이라고 할까요? 야생 숲 탐조의 경우 모기나 벌레가 많아 아이들이 무서워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첫 탐조 경험이 무섭고 싫은 기억으로 남아서 다시 새에 관심을 갖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요. 그러니 아파트는 탐조를 시작하기 너무 좋은 곳이죠.



아파트란 주거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을 것 같아요.

(박임자) 저희 아파트는 지은 지 25년 정도 된 터라 나무가 우거지고 새도 많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 아파트 정말 좋다고 자랑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새 지도를 만들면서 탐조 전문가 7분을 모시고 함께 답사를 했는데 다들 깜짝 놀라는 거예요. ‘아니, 이렇게 힘든 환경에 새가 이렇게나 많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인간 관점에서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작은 새 입장에서는 아니더라고요. 관목이 없어 숨을 데가 없대요. 목을 축일 물웅덩이나 연못도 없고요. 물론 요즘 신축 아파트는 관목도 많고 연못도 있는데, 오래된 아파트는 큰 나무 중심이다 보니 작은 새들이 불쌍하게 살고 있더라고요.








새들의 집으로 아파트를 본 거네요?

(박임자) 사실 새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깊었어요. 손님으로 바라볼 건가, 우리와 같이 사는 이웃으로 바라볼 건가. 그러다 내린 결론은같이 사니까 주민이라고 해야겠다였어요. 그리고 새들도 아파트에서 번식을 해요. 다시 말해, 어떻게 보면 단지를 만들기 위해 토지를 밀 때는 쫓겨났다가 아파트가 들어서고 정원의 나무가 크면 새들도 다시 입주하는 거죠. 자연스레 아파트 단지는 새와 사람이 같이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믿으며, 인간과 새가 서로 배려하면서 공존하는 삶, 공존하는 공간 등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아파트에서 탐조 활동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박임자) ‘새들의 삶을 존중한다가 첫 번째 규칙이고, 또 중요한 게 공동주택이므로 이웃을 배려해야 해요. 예를 들어 가정집을 향해 쌍안경을 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거요. 또 겨울철에는 새 먹이나 물을 주는 게 필요한 일이지만 함께 사는 사람들이 꺼린다면 그들의 생각도 이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만둘 수도 있다는 자세가 필요해요.








특히 마음이 가는 새가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새를 좋아하나요?

(정맹순) 참새가 좋아요. 모이를 주면 짹짹거리면서 서로 먹겠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날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예뻐요.

(임자) 참새는 우리나라 텃세예요. 생각해보면 약한 존재들이 같이 모여 다니는 것 같아요. 참새는 대표적으로 무리 지어 다니며 같이 생활하는 새죠. 저는 직박구리를 아직도 좋아해요.



무엇보다 모녀 사이가 정말 좋아 보여요. 같이 취미 활동을 해서 그런 걸까요?

(박임자) 엄마가 2018년에 심정지를 한번 겪고 건강이 악화돼 굉장히 우울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 기록하기를 시작했죠. ‘엄마가 아니라맹순 씨라고 불렀고, <맹순 씨 텃밭> 다큐멘터리 영상도 찍고, 그렇게 그림 그리기도 독려했어요. 그러면서 자꾸 질문하게 되잖아요. 오늘은 뭐 해요? 이건 뭐가 좋아요? 그러다 보니까 문득부모가 자식한테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이 시간이 굉장히 좋았어요. 엄마랑 더 친해진 것 같아요. 2016년부터 같이 살았는데 이런 활동을 함께 하며 그 전보다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거든요.








마지막으로 맹순 작가에게 아파트는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어요. 마흔 되던 해에 5남매를 데리고 순천에서 수원으로 이사 왔다고요. 아파트가 막 들어서는 도시 모습도 보셨을 텐데 개인적으로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정맹순) 수원에 올라와 고만고만한 데에서 살다가 처음 아파트에 입주한 게 1995년이었어요. 병점사거리 근처였는데 그때는 정말 시골이었어요. 조그마한 트럭 하나 지나다닐 정도로 난 길이 전부였어요. 한창 아파트 지어질 때 논두렁에 서서 구경도 했죠. 순천에서 우리 집은 목장을 했어요. 험한 데에서 살다가 아파트에 들어가니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8층에 24평짜리 아파트, 아직도 그 모습이 선해요. 그러다가 2000년에 33평으로 옮겼죠. 그때도 너무 좋아서 일하는 아줌마 둘을 불러서 집들이도 크게 하고 비싼 찬장도 맞추고 소파도 비싼 거 사고 돌침대도 샀어요. 한참 재미났어요. 내 삶에 잊지 못할 좋았던 순간, 그때마다 아파트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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