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위치한 장식 전문가 솔렌 엘로이의 집은 프랑스 최초의 현대식 카바레 ‘르 샤 누아’가 있던 자리다. 음악가, 화가, 시인 등 19세기 보헤미안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업을 무대에 올리던 예술 명소. 그녀는 고민 없이 이곳을 구입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손본 곳은 벽이다. 벽화 및 벽 장식 전문가인 그녀에게 벽이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돕는 장치와 다름없다. 가로세로 벽으로 촘촘히 나누어진 집에서 벽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에 대해 들었다.
이곳이 한때 잘나가던 카바레였다니 신기하네요. 프랑스 최초의 현대식 카바레 ‘르 샤 누아Le Chat Noir’는 위키피디아에서 찾을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예술 공간이었어요.
맞아요. 아티스트 앙리 리비에르Henri Rivière가 거실에서 그림자 연극을 하고 작곡가 에리크 사티Eric Satie가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상상해보세요. 탐나는 공간이죠. 부동산 중개인이 슬쩍 운을 뗐을 때부터 욕심이 났어요. 어두컴컴한 네모 상자 같은 무대를 생각했는데 운 좋게 적절히 개조한 상태였어요. 복층 구조에 창문이 커서 채광도 좋았죠. 그날 바로 계약했어요.
“저에게 벽은 저를 가두는 담이 아니라 저를 세상 밖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길이에요.”
솔렌 엘로이Solène Eloy 씨가 직접 손봤다는 리모델링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세요.
리모델링 방향을 정하기 전에 몽마르트르 박물관을 갔어요. 19세기 당시 르 샤 누아의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관련 그림, 드로잉, 사진을 찾아보았고, 여러 단서를 이용해 아르데코 디자인의 계단 난간을 만들었죠. 전체 구조는 거의 건들지 않았어요. 대신 가벽을 여러 개 설치했죠. 저에게 벽은 공간을 나누고 구분하는 요소가 아니라 그림이나 가구처럼 집을 장식하는 요소 중 하나예요.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물론 금박을 입히고 벽을 깎아 무늬를 만들 수도 있죠. 보통 가벽을 설치하면 공간이 쪼개져 답답하다고 생각하지만 천장까지 막힌 벽이 아닌 열린 벽을 세우면 벽이 가구이자 그림이 될 수 있어요. 여기 계단을 보세요. 주위를 벽으로 막고 컬러를 위층의 화이트와 통일시키니까 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 말을 듣고 보니 벽이 정말 많네요. 각각의 벽마다 컬러, 소재, 형태가 달라요.
현관 복도에는 와인 컬러와 스테인리스 글라스를 첨가한 벽이 가로지르고, 그 앞에는 금박을 입힌 반짝거리는 벽이, 맞은편에는 화이트 컬러의 빗살 무늬 석고 패널 벽이 가로지르죠. 모두 벽이라 부르지만 용도와 역할이 다 달라요. 카바레 무대를 상상하게 되는 통로, 채광을 더하고 공간을 우아하게 만드는 창문, 비밀 공간으로 이어지는 문이 되니까요. 벽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납장이고, 다른 공간과 연결되는 문인 경우가 많아요. 특히 2층 전체를 감싸는 벽은 책장이자 침실로 통하는 문이기도 하죠. 저희 집의 모든 벽은 단절과 차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결과 소통을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어요. 구분을 위한 벽이 필요한 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있어요. 여기 거실처럼 일부는 그린 에메랄드 컬러로, 나머지는 화이트 컬러로 칠하니 자연스럽게 공간이 나눠지죠. 굳이 벽이 아니어도 다른 요소로 공간을 나눌 수 있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벽은 어떤 건가요?
빗살 무늬 석고 패널 벽이요. 매우 어려운 도전이었는데 결과물이 만족스러워 뿌듯해요. 이 벽은 사실 TV가 숨겨진 비밀의 방으로 향하는 문이에요. 손톱만큼 작은 열쇠로 문을 열 수 있죠. 어린 딸아이가 디지털 미디어에 쉽게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했어요. 거실 벽난로에 대해서도 꼭 이야기하고 싶네요. 원래 클래식한 오래된 벽난로가 있었는데 이질감이 들었죠. 그래서 마카사르 흑단 나무를 조각한 뒤 화이트 광택 페인트로 정리한, 현대적인 벽난로 커버를 만들어서 숨겼어요. 벽의 일부인 듯 벽처럼 보여서 좋아요. 직선 무늬 천장 틀과 조화를 이루면서 공간 소실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요.
컬러 팔레트도 독특하지만 천장과 벽을 따로 칠하는 등 연출 방식이 인상적이에요. 컬러 선택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죠?
이 집의 주요 포인트는 벽, 계단, 컬러예요. 그중 컬러 선택에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페인트 컬러 차이를 이용해 일종의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같은 컬러를 이용해 기존 벽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어요. 공간을 합치는 거죠. 거실의 경우 모두 같은 그린 컬러 페인트처럼 보이지만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무광택, 새틴 질감을 섞어 사용했어요. 이렇게 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위기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져요. 강렬한 컬러 벽에서 느껴지는 단조로움을 피할 수도 있죠. 현관은 레드 와인 컬러로 카바레 같은 분위기를, 2층을 둘러싸는 책장 벽은 외부의 빛에 따라 변하는 브론즈 그린 컬러로 차분함을 더했죠. 마스터 침실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에 사용한 선샤인 옐로와 스카이 블루를 활용했어요. 르코르뷔지에는 따뜻한 색은 자극적이며 차가운 색은 차분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으로 벽 컬러를 선택했는데, 저도 그의 이론에 따라 색온도를 정했어요.
개인적으로 부엌 벽 문을 열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브 클라인 블루 컬러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저도 가장 좋아하는 컬러예요. 이 컬러를 만든 아티스트 이브 클라인은 ‘파랑은 볼 수 없는 것을 보이게 하는 색’이라고 했죠. 사실 바다와 하늘이 무슨 컬러인지 아무도 몰라요. 빛과 공기, 물 등 여러 입자와 부딪히면서 생기는 산란 현상 때문에 파랗게 보이는 것뿐이죠. 예로부터 파랑은 현실에서 감지하기 힘든 대상이나 초월적인 것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어요. 벽화에도 신성시하는 형상에만 파란색을 사용했죠. 이처럼 파란색에는 신비스러운 힘이 존재해요. 세상 어디든지 닿을 수 있는 바다처럼 느껴져 물잔과도 잘 어울리고요.
모든 벽에는 전문가만이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 요소가 첨가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쯤에서 장식 전문가란 직업에 대해 들어보고 싶네요. 어떻게 이 직업을 택하게 되었나요?
어린 시절부터 프레스코화에 매료되었어요. 박물관, 미술관, 궁전 등 어디를 가도 벽과 천장을 가득 메운 그림이 눈길을 끌었죠. 올리비에 드 세르 예술 학교(ENSAAMA Olivier de Serres)에서 프레스코와 모자이크를 전공하고 2010년 벽 장식, 장식 패널, 벽 코팅을 전문으로 하는 아틀리에 뒤 뮈르L'Atelier du Mur를 설립했어요. 보통 장식 복원가가 되어 유물을 살피는 일을 하기 마련인데, 저는 그 기술을 현대적 시점으로 풀어보고자 했어요. 일본 벽화 장인에게 기법을 배우는 등 동서양 방식을 혼합하기도 했고요. 프레스코, 장식 벽화, 금박, 베레 에글로미세verre églomisé(유리 뒷면에 디자인과 금도금을 적용하는 기법)를 오늘날의 주거, 상업 공간에 녹여내는 일을 하죠. 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함께 일해요.
24시간 벽과 마주하는 셈이네요.
그렇지만 답답하거나 지루하지 않아요. 저에게 벽은 저를 가두는 담이 아니라 저를 세상 밖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길이거든요. 상상 속 세계로 갈 수 있는 통로이자 벽 너머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 같은 역할을 하죠. 저는 벽에 그림을 그리면서 고대 이집트 시대로, 19세기 보헤미안 시대로, 다차원의 공간으로 떠나요. 최근 페이스트리 셰프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é 본사 주방에 구름이 그려진 금박 벽지 작업을 했어요. 영화 <해리포터>에서 소년 해리가 런던 킹스크로스역 벽을 뚫고 들어가던 장면처럼 셰프들이 제 작업을 보면서 구름 너머 쾌적한 하늘에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누구나 삶에서 거대한 성벽 같은 벽을 마주하기 마련이에요. 이런 벽은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요?
용기밖에 없는 것 같아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결국 벽이지만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문이 될 거예요. 바로 인생의 출구가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