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집에 100% 만족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집은 그 어떤 곳보다 소중한 곳이지만 누구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수희 문화재복원가는 다르다. 발품 팔며 운명처럼 만난 집을 3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꿈에 그리던 집으로 바꿨다. 이러한 용기 덕분에 그녀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집을 얻었다.
문화재복원가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고고학자가 발굴한 선조의 기물을 분석해 역사적인 부분은 자료로 정리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는 상태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에요.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서도 특수 직업군에 속해서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해요. 다음 세대에 전할 정보와 교훈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최근에야 조금씩 알려지고 관심이 늘어나는 추세예요.
생소한 직업인데 어떻게 문화재복원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나요?
학창 시절에 탱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때 함께 작업했던 선생님들이 우리나라는 훌륭한 문화재가 많음에도 관리를 못하는 바람에 책으로만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앞으로 문화재를 관리하는 기관과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네가 한번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관심이 생겨서 조사하다가 프랑스로 공부하러 떠났죠.
프랑스 유학 시절 / 정수희 제공
프랑스는 예술과 낭만의 나라인데 그곳 생활은 어땠나요?
교수님, 동기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지금까지 인간으로서 고민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문화재 복원 연구에는 나는 어떻게 될 것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철학적인 생각도 필요하거든요. 게다가 한국어로 공부해도 어려운 학문을 불어로 하다 보니 많이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15년간 프랑스에서 공부와 연구를 하다가 돌연 한국으로 돌아오셨어요.
처음부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의 학문을 열심히 배우고 돌아와서 우리나라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마음으로 프랑스에 갔거든요. 하지만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어요. 세계의 예술 전문가들이 기술을 보고 공부하기 위해 제가 박사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곳에 방문했는데, 놀랍게도 한국에서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우리나라는 고려청자,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국민들도 알 정도로 도자기에 대한 자부심이 높잖아요. 하지만 도자기에 대해 깊이 알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문화재 복원보다 우리나라 도자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문화인지를 먼저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차에 도자기로 유명한 이천에 연이 닿게 되었어요. 지금은 진주공예창작지원센터 센터장으로서 진주의 공예를 지원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고요.
“스스로 집의 장점을 자신 있게 소개하고, 이런 집에 살고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말하게 돼요.”
한편으론 이천으로 왔기에 이 집을 만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천의 장점 중 하나는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아버지가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자연이 펼쳐진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 주택을 보면서 ‘집은 이래야 한다’는 청사진이 그려진 것 같아요. 그래서 이천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꿈에 그리던 집을 찾아다녔어요. 400~500채 정도 본 것 같아요.
집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요. 이 집은 어떻게 찾았나요?
남편이 귀촌 청년 활동을 하면서 우리 이장님을 만나 마을 축제에 초대받았어요. 그때 우연히 이 집을 발견했어요. 봄꽃이 만발한 모습을 보고 “저 집 너무 좋다. 매물로 안 나오겠지?”라며 푸념 아닌 푸념을 했죠. 1년 뒤에 그나마 적당한 집을 찾아서 계약하려고 하는데 제가 좋아할 것 같은 집이 매물로 나왔다고 전화가 왔어요. 그게 1년 전에 본 이 집이었어요.
그렇게 마음에 든 집을 3년에 걸쳐 리모델링하고 증축했어요. 어떤 점이 아쉬웠을까요?
집을 보러 왔을 때 너무 놀랐어요. 마음에 들어 했던 집이 매물로 나왔으니까요. 주변 환경은 무척 마음에 드는데 내부 구조에서 갸우뚱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건 우리가 고치자고 생각했죠.
리모델링의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동서남북으로 최대한 낼 수 있을 만큼 창을 냈어요. 자연을 즐기고 싶어서 이 집을 택했는데 벽으로 막힌 집에서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집 어디에 있어도 고개만 돌리면 자연을 볼 수 있도록 창을 냈어요.
언제 창밖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이 집에 살면서 안개 낀 풍경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우리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안개가 많이 껴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잔잔하게 안개가 낀 것을 볼 수 있어요.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내가 신선이 된 것 같아요.
구옥을 리모델링한 데 이어 새로운 공간을 증축한 것도 특이해요.
처음에는 구옥을 리모델링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리모델링이 끝나가니까 증축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남편이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저도 복원한 도자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공간이 있었으면 했거든요. 건축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증축을 시작했어요.
증축한 신옥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보시면 구옥과 신옥 간에 단차가 있어요. 그래서 시선의 막힘 없이 집의 끝과 끝이 한눈에 보여요. 그리고 역할이 다양해요. 남편이 요리하는 주방도 되고, 사람들과 만나는 커뮤니티 공간도 되고, 제 작업실도 되죠. 공연도 할 수 있고요. 얼마 전에 프로젝터를 설치해 문화생활을 즐기는 공간도 되었어요.
그렇다면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부모가 모든 자식을 다 똑같이 좋아하듯이, 저도 어느 한 군데 안 좋아하는 곳이 없어요. 여기는 이래서 좋고, 저기는 저래서 좋아요. 다만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공간과 반려동물이 좋아하는 공간은 다르더라고요. 그래도 한 울타리에서 함께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과 동물들이 죽은 공간 없이 집을 100% 활용한다는 게 만족스러워요.
이 집의 또 다른 특징을 찾자면 버려진 자재를 재사용했다는 점이에요. 고벽돌(버려진 벽돌)을 사용해서 신옥 외관을 꾸미고, 폐교 바닥 목재를 마루에 재사용했죠. 한옥의 대들보를 잘라 커다란 탁자를 만들고요. 생활하는 데 불편하진 않나요?
살다 보면 익숙해져서 불편하지 않아요. 바닥을 예로 들면, 교실 바닥이 나무여서 왁스 칠을 하고 가끔 가시가 박히기도 했지만, 그게 불편했던 기억은 아닐 거예요. 오히려 나무가 주는 따스함과 안정감이 있어요. 학생들이 오랜 시간 밟고 다닌 바닥이라 스크래치와 흠집이 많아요. 덕분에 바닥이 찍히거나 뭐가 묻어도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그리고 빙고와 미소, 고양이 털이 떨어져도 잘 안 보여요.(웃음) 바닥이 훼손될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고 청소 스트레스에서 해방된다는 좋은 점이 있죠.
앞에는 마당이, 뒤에는 산과 이어진 오솔길이 펼쳐져 있어요. 자연과 가까운 집에 살면 어떤 점이 좋아요?
온전히 우리만의 공간이기에 기본 도리를 지키는 선에서 우리가 살고 싶은 방식대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요. 공간이 좁은 도시에서는 자연도 많은 사람과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규범과 에티켓이 엄격하잖아요. 또 이곳에서는 언제든지 자연을 즐길 수 있죠.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깐 나가서 산을 보고, 자다 깨서 마당에 나가기도 하고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장점은 집 관리에 큰 책임이 따른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래도 기본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신경 쓴다면 365일 내내 큰 기쁨과 힐링을 얻을 수 있어요.
관리하는 책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마당과 정원은 관리하기 힘들죠?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 대부분이 정원을 잘 가꿔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그러면 더 이상 행복한 집이 아니잖아요? 저는 이 집이 나중에 자연으로 고스란히 되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주변의 나무를 그대로 두었고, 마당에 일부러 자갈이나 디딤돌을 깔지 않았어요. 그리고 마당을 깔끔하게 가꾸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면 마당에 풀이 정신없이 자라지 않나요?
맞아요. 봄기운을 얻은 땅과 식물의 생명력은 남달라서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더라고요. 제초제를 뿌리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아이들(반려동물)이 마당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는 데다 풀과 거기 사는 곤충을 죽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불편하더라도 개의치 말자고 생각하면서 마당을 가꿨어요. 그런데 큰 풀만 뽑고 낮은 풀은 놔두니까 저절로 낮은 풀만 살아남더라고요. 이제 발목 높이를 넘어 자라는 풀은 없어요. 그러고 보면 집은 거주자 취향에 맞춰 변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집을 빨리 짓잖아요. 그런 추세와 달리 이 집은 3년이나 걸렸어요.
구옥을 리모델링하고 신옥을 완성하기까지 3년이 넘게 걸렸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전문가가 설계하고 지은 집에서 살죠. 하지만 저와 남편은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집을 지어 살겠다고 결심한 거예요. 그래서 집 지을 때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난 과정이 많았어요. 그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시간도 오래 걸렸죠. 하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만족하며 지내요. ‘이게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하고 의심했던 부분도 집에 적응하고 삶에 동화되면서 만족하게 되었어요.
언제 ‘집 짓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나요?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올 때요.(웃음) 전문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이 집의 진가를 알아주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우리 집의 장점을 소개하면서 값진 물건이나 자재가 아니라 공간 자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말할 때도 집을 잘 지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집엔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가구나 비싼 물건은 없어요. 흔한 그림 한 점 없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재로 지었죠. 그럼에도 저 스스로 집의 장점을 자신 있게 소개하고, 이런 집에 살고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말하게 돼요.
아무리 꿈에 그리던 집을 짓는다 해도 여러 조건과 환경 때문에 원하는 걸 다 반영할 순 없잖아요. 그런데 이 집은 하고 싶은 걸 다 이룬 것 같아요.
‘집은 우리가 제일 오래 머무르면서 동시에 나 본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런데 모두가 똑같은 구조와 생활 방식으로 살아야 할까?’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해봤어요. 그에 대한 답은 ‘반드시 그래야 하는 집은 없다’였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원 없이 반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