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수북하게 쌓인 숲길을 뽀드득 뽀드득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신비로운 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로 만든 듯한,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 포근하고 아늑한 산장 같은 곳. 인스타그램을 통해 티켓을 구입한 이들이 낯선 가정집으로 성큼 들어선다. 레몬즙과 설탕을 넣어 조린 쿨리스를 두른 순무 샐러드, 양고기와 살구, 톡 쏘는 매자를 섞은 양배추 롤 등 개성 넘치는 메뉴가 차례로 등장한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나만의 레시피로 만든 식사를 제공하면 어떨까. 식사권을 사전 예약한 손님을 대상으로 랜덤한 메뉴를 제공하는 팝업 레스토랑 ‘버드앤드토드Bird and Toad’의 시작은 이 소박한 바람에서 출발했다. 미시간주에서 10년 넘게 생활한 캐리 마스터스Carrie Masters는 이를 곧장 실행에 옮겼고, 버드앤드토드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어 첫 팝업 식사권을 판매했다. 1인당 75달러 메뉴를 8~12가지 코스로 구성한 첫 티켓은 공개 후 일주일만에 매진됐다. 이후 한 달에 1~2회 꾸준히 팝업 식사를 선보인 버드앤드토드는 최근 셰프 오스틴 퓨어Austin Fure와 함께 프라이빗 브런치 식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본인의 사적 공간인 홈 키친을 타인에게 오픈해 식사를 제공하는 셰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버드앤드토드의 음식과 홍보, 모든 것을 맡은 캐리 마스터스가 미국 미시건주 특유의 라이프, 손님을 자신의 주방으로 들이는 일에 관한 소회, 계절 변화를 식탁 위에 올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팝업 레스토랑 버드앤드토드를 열기 전까지 어떠한 일을 했는지 궁금해요.
대학을 졸업한 뒤 저는 계속 미시건주 마켓Marquette 지역에서 살고 싶었어요. 전공 관련 직업을 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우연히 식당에서 일하게 되면서 음식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 저한테 맞다는 걸 깨달았죠.
버드앤드토드를 운영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레스토랑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면 마켓 지역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해야 했어요. 인터넷을 검색해 오랜 시간 사전 조사를 했습니다. 건강한 음식을 통해 좋은 영향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누군가의 영혼을 달래는 작업을 찾고 싶었어요. 마켓은 만족스러운 음식을 접하기 힘든 사막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음식으로 누군가를 보살피고 서로 연결하는, 식사라는 행위를 통해 사랑을 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저는 음식이란 정신적, 육체적 치유제라고 믿어요.
Instagram@birdandtoad
‘새와 두꺼비(Bird and Toad)’라는 식당 이름이 인상적이에요. 팝업 테이스팅 이벤트를 여는 버드앤드토드는 어떤 곳인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아놀드 로벨Arnold Lobel의 동화책 <프로그앤드토드Frog and Toad(개구리와 두꺼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주인공인 개구리와 두꺼비가 멋진 우정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단순하고 간결한 일들을 척척 수행해내죠. 버드앤드토드 역시 그렇게 하나하나 주어진 일을 해내고 싶었어요. 저희는 친밀한 ‘팝업 경험’을 목표로 하며, 손님들은 기본적으로 저희 집에서 식사를 해요. 어떤 날은 15가지 메뉴를 만들고, 또 어떤 날은 가족 정찬 스타일의 디너 이벤트를 운영합니다.
매회 팝업 식사 이벤트 티켓이 ‘완판’ 되는데, 많은 이들이 홈키친에서의 정찬을 희망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요즘 사람들은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바람이 큰 것 같아요. 버드앤드토드는 식사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죠. 10여 명의 손님들은 전혀 만나본 적 없는 낯선 이 옆에 앉아 빵을 자르고 와인을 마시면서 종국에는 모두 친구가 됩니다. 저는 그 교류가 이뤄지는 상황을 꾸리고,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는 역할이 너무 좋아요. 저희의 소박한 식사가 그 자체로 특별해 자연스레 사람들을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여덟 번쯤 이벤트를 진행했고, 앞으로도 매달 최소 2회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한 번의 정찬에는 보통 10~14명이 참여하고요.
버드앤드토드 홈 디너 메뉴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지역의 제철 농산물과 식자재를 가능한 많이 사용하려고 해요. 식자재가 좋은 만큼 요리도 훌륭해지기 때문이죠. 운 좋게도 이 도시에는 품질 좋은 식자재를 생산하는 농장이 많아요. 전 세계 다양한 요리법과 맛을 배합해 메뉴를 만드는 것 또한 저희 팝업 식당의 특징이죠. 주변 숲과 저희 집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도 적극 활용하려고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메뉴를 구성하는지 궁금해요. 재료를 선택할 때, 음식을 만들 때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그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맛과 식자재의 풍미를 최대한 소개하려고 해요. 7월의 토마토가 1월의 토마토와 다르잖아요. 7월에 수확한 토마토는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예술일 만큼 풍미가 훌륭하죠.
이전 팝업 식사 메뉴에서 인도 음식을 소개한 적이 있어요. 다른 문화 음식, 이를테면 한국 음식도 앞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한국 메뉴도 기회가 되면 꼭 소개하고 싶어요. 이제 막 아시아 요리로 레시피를 확장하기 시작했거든요. 문화적으로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대도시에 산다는 건 새로운 식당과 사람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뜻이죠. 제가 사는 소도시에서는 그런 게 상대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함께 일하며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자 늘 노력해야 해요. 다른 배경과 경험을 지닌 셰프들과 다양한 협업을 하며 발전해가고 싶어요.
최근 퍼스널 셰프 오스틴 퓨어와 함께 팝업 브런치를 기획한 것도 그 계획의 연장선이라 하겠네요.
친구이기도 한 오스틴과 9년 넘게 함께 일하고 있는데, 우리는 같은 직업윤리를 갖고 있어서 특히 잘 맞아요. 지역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건강한 먹거리, 사랑이 가득한 음식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팝업 브런치 메뉴에 담아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어요.
그간 살아오며 가장 행복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요.
삶의 많은 순간 속에서 다양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디트로이트에서 보낸 시간, 자라며 경험했던 것들이 깊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아버지와 전통 시장을 돌아다니던 추억이 특히 소중해요. 매우 다정한 유형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가장 좋은 과일과 빵, 고기, 치즈를 고르는 모습을 보며 저희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꼈죠. 어린 시절 저희 집이 가난했음에도 아버지는 항상 시장에서 고급 치즈와 과일을 사주곤 했어요.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행복한 순간 중 하나예요.
층고가 매우 높은, 산장 같은 아늑한 숲속 저택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공공장소가 아닌 개인 집에서 요리하고 팝업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나요?
7년 전 파트너 매슈를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에요. 25세 때부터 직접 집을 짓기 시작해 지금까지 저희 집에 아름다움을 더해가고 있죠. 앞으로 더 많은 별채를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잘 이루어진다면 언젠가 버드앤드토드를 단순한 팝업 식당이 아닌, 완전한 몰입형 경험(immersion experience)을 선물하는 공간으로 바꿀 수도 있어요. 이 집에서 5년째 살고 있는데 저희 커플은 최대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해요. 숲 한가운데라는 환경적 제약이 따르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정말 다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아름다워요.
“그저 모여 앉아 긴장을 풀고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사를 함께 하며 위안을 얻고 싶어 해요.”
집 안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나 장소가 있다면요?
제 파트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때가 보통의 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퇴근을 하면 저희는 집에 들어서기 전 각자의 스트레스를 문 앞에 두고 들어와서 마음을 비우고 식사하죠. 집에서의 모든 순간이 특별하지만, 특히 주방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껴요. 정해진 메뉴나 특별한 주문 없이 제 스타일대로 요리하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거죠. 집이란 진정으로 제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문적인 외식 주방이 아니기 때문에 주방을 운영하는 데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아요.
확실히 그래요. 그중에서도 냉장고 사용이 특히 불편하죠. 저희는 자급자족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기 때문에 작은 프로판propane 냉장고를 쓰는데, 전문 식당 장비와는 여러모로 비교가 안 돼요. 하지만 언제든 잠옷을 입은 채로도 일할 수 있고, 휴식이 필요할 때면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갈 수도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상쇄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정성스레 차린 특별한 음식을 맛본다는 것은 분명 일반 식당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인 것 같아요. 버드앤드토드에 참여하는 이들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일까요?
손님들이 낯선 이의 집, 더군다나 익숙지 않은 메뉴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꽤 주목할 만한 일이에요. 뭔가 이상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처음에는 긴장하지만, 이내 주변에 적응하고 아름답고 근사한 음식을 먹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의 감정을 마주하는 일은 참 특별해요. 저희 손님들은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고 사람에 대한 애정과 교감을 즐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식사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다시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음식을 나누고 싶어 하죠.
사실이에요. 팬데믹 이후 우리는 ‘고독’이라는 외로움의 전염병으로 힘들어하고 있어요. 인간관계에 굶주려 있죠. 그저 모여 앉아 긴장을 풀고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 중 하나인 식사를 함께 하며 위안을 얻고 싶어 해요.
연말, 함께 모여 식사를 즐기기 좋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기다리고 있어요.
딱히 명절 메뉴를 계획하진 않았지만 11월과 12월에 몇 가지 이벤트를 열 계획이에요. 모두가 바쁜 시기지만 적어도 맛있는 한 끼를 나누는 데에는 기꺼이 시간을 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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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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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상 일본인들의 집에 대한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