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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노마드, 도시, 호텔

일러스트레이터의 반짝이는 도시 사랑

이슬아 일러스트레이터

Text | Solhee Yoon
Photos | Ken Pyun
Film | Taemin Son

일러스트레이터 이슬아는 마지막 출입국 도장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여행 가방을 싸는 프로 여행자다. 고개를 한껏 들어야 그 끝이 겨우 보일 듯한 건물, 좁은 골목 사이로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마음 설레는 도시 사랑꾼이다. 한편으로는 지난날 보았던 풍경과 달라진 점을 발견하고 남몰래 미소 짓는 꼼꼼한 관찰자이기도 하다. 이슬아 작가에게 도시의 무엇이 그토록 마음을 흔드는지 물었다.








캔버스가 쌓여 있고 여기저기 물감과 팔레트가 놓여 있어요. 제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이슬아 작가의 작업실 모습이에요.

너무 지저분해 부끄러운걸요. 11 3일에 개인전을 오픈해요. 곧 이 작품들이 몽땅 갤러리에 가 있을 거예요. 놀러 오세요. 그러고 보니 이 기사가 소개될 때면 전시도 반환점을 돌았겠네요. 시간이 참 빨리 가요.



빠르게 흘러간 시간을 거슬러 옛날이야기부터 해보죠. 이 질문을 지겹도록 받았을 것 같지만 한번 해보죠. 어릴 때부터 화가가 장래 희망이었나요?

그렇지 않았어요. 특별할 게 없었어요. 7~8살 무렵에 태권도 학원이나 미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잖아요. 저는 그저 미술 학원에 등록해 다녔을 뿐이에요. 다만 그림 그리는 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좋아한 것 같아요. 그래서 꾸준히 미술 학원에 다녔고 자연스럽게 예고로 진학했고 예대에 입학하게 된 거죠.








미술 학원 커리큘럼에는 정물화든 석고상이든 그려야 하는 대상이 얼추 정해져 있잖아요. 그중 무엇을 좋아했나요?

그렇게 물어보니까 생각나는 일화가 있어요. 미술 학원 선생님이 집을 그려보라고 과제를 내셨어요. 의심하지 않고 제가 사는 아파트를 그렸죠. 하얀색의 네모난 모양으로요. 근데 선생님이 바라던 그림이 아니었나 봐요. 지금 생각해보면 박공지붕의 단독주택 모습을 바랐던 것 같아요. 제 그림을 보고 뭐라고 하셨는데, 어린 마음에도 불만스럽더라고요. 내가 사는 집을 그대로 그렸을 뿐인데 말이죠. 이야기를 듣고 엄마도 제 생각에 공감하셨는지 바로 학원을 옮겨주셨어요. 덕분에 커리큘럼이 없는 동네의 작은 교습소에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재미를 붙이면서 계속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캔버스에 내 시선을 옮기며 주인공이 되어보죠. 도시에 사는 사람은 모두 관찰자인 동시에 주인공 같아요.”




어릴 때부터 건물을 유심히 보는 눈이 있었군요. 요즘 포털 창에이슬아 일러스트레이터를 검색하면도시가 연관 검색어로 꼭 등장해요. 언제부터 도시를 그리기 시작한 거예요?

20대 중반이었을 때인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하고 돈을 벌면서 내 의지로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렸던 때부터! 그 시절에 다니던 여행지가 모두 도시였고, 좋아하는 건물을 하나둘 수집하면서 도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건물을 수집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길을 걷다가 예쁜 건물이 보이면 먼저 사진을 찍어요. 아마 그렇게 해본 첫 도시가 뉴욕이었을 거예요. 건물이 굉장히 빽빽하게 모여 있는 도시잖아요. 건물이 하나같이 크고, 또 창도 많아 창끼리 서로 더해지고 겹쳐지면서 만들어내는 그림자나 패턴이 신기했어요. 그때 도시라는 대상에 반한 것 같아요. 저는 고향이 부산이고, 또 바로 집 앞이 바다라 그렇게 건물이 모여 있는 시내 풍경이 생경했거든요.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면서이 부분은 빼면 좋겠다’, ‘여기까지는 넣고 싶은데하며 1차 편집을 해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 사진을 따라 그리며 한 번 더 편집하고, 마지막으로 색을 입혀 그림을 완성했죠.



멋진 수집이네요.

저는 도시에 서면 관찰자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캔버스에 내 시선을 옮기며 그 안에서 주인공이 되어보죠. 그러고 보면 도시에 사는 사람은 모두 관찰자인 동시에 주인공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그리면서 좋아한다’, 어느 쪽이 더 적절해요?

굳이 따지면 전자인 것 같아요. 저는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들을 그리거든요. 그린다는 건 제가 좋아하는 모습을 편집하는 과정이고요. 그래서 그 끝에는 사랑만 남는 것 같아요.










갑자기 든 의문인데, 건물을 보며 그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처음에는 안 그랬어요. 오직 예쁜 모양, 예쁜 패턴을 찾으려고 도시를 봤죠. 근데 요즘엔 그런 생각을 해요. 최근에 오랜 친구와 도쿄로 여행을 갔거든요. 수십 번도 더 가본 곳이었는데 친구 덕분에 처음으로 스카이트리라는 전망대에 올라갔어요. 물론 어김없이 도쿄의 야경을 내려다보며저 풍경을 그려봐야겠다하고 생각하던 중에 친구가 말했어요. “저렇게 창문이 많다니! 저 창문마다 다른 사람이 살고 그만큼 다른 이야기가 있겠다.”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건물 안에 사는 사람이 궁금해졌어요. 그러면서 새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고요.



그 깨달음이 개인전 <네모 안의 너와 나> 주제로 이어졌군요.

맞아요. 언젠가 길을 걷다가 문득 어떤 건물을 올려다봤는데,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똑같이 생긴 창문 안에서 우리 각자 다 다르게 살아가고 있구나. 그래서 똑같은 프레임 안에서 얼마나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해 이번 신작에서는 인물을 크게 그렸어요. 결국 우리는 네모난 건물, 네모난 창, 스마트폰 같은 네모난 기계로 연결되어 이 도시에 살고 있잖아요. 결국 이 네모난 공간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삶의 중요한 과제인 것 같아요. 그런 생각에서 시작한 작업을 전시에서 보실 수 있어요.








밀레니얼 힐튼 서울이 영업을 종료하기 전인 2022 9월부터 10월까지 객실에 머물며 건물 안팎을 그림으로 그리고 아트북으로 펴냈다고 알고 있어요. 철거될 건물을 기록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궁금했어요.

영업 종료일이 2022 12 31일이었으니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 인연은 2023년 달력 삽화를 의뢰한다는 연락으로 시작되었는데, 담당자와 미팅한 다음 저희가 아트북을 만들자고 제안해 성사된 프로젝트였어요. 40년이란 호텔의 역사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담고 싶었거든요. 두 달간 한 객실에서 지내며 디럭스룸, 스위트룸 등 여러 객실 유형을 비롯해 직원 전용 공간까지 샅샅이 보고, 지난 인테리어 공사 기록, 레스토랑 메뉴 리뉴얼 기록까지 시간순으로 살펴보며 그림을 그렸어요. 40년간 근무한 직원 인터뷰도 기억에 남아요. 건물이 사라지면 이 기록에 틀린 점이 있는지 확인하고 수정할 기회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욱 정성과 노력을 쏟았던 것 같아요.



여행이 일이고 일이 곧 여행일 만큼 자주 여행을 떠날 것 같아요. 방문할 도시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비즈니스 출장을 제외하고는 갔던 곳을 또 가는 편이에요. 10년 전에 이 도시가 어땠는지, 5년 전에 이 도시가 어땠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또 어떻게 변할지가 제 관심사죠. 어떤 도시에 한동안 못 갈 때는 구글 맵 스트리트 뷰로 길을 가로질러보기도 해요.(웃음) 제가 가장 많이 가본 도시는 뉴욕인데,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땅값 비싸고 빠르게 바뀌는 도시로 유명하죠. 그래서 제가 좋아했던 장소가 어느 날 가면 없어요. 그럴 때는 너무 아쉽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각으로 만든 어떤 것을 만날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 또한 저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고요.










바깥 활동을 훨씬 좋아할 것 같지만, 질문할게요. 본인에게 집은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가요?

믿기 어렵겠지만, 저는 정말 집순이예요. 밖에 잘 나가지 않아요. 골목을 휘젓고 다니는 건 비행기를 타고 이국의 도시에 떨어졌을 때 일어나는, 어쩌면 특수한 일이죠. 스마트폰으로 몇 보 걸었는지 확인할 수 있잖아요? 저는 해외에 있을 때 2만 보는 거뜬하고 3만 보 넘게 걷는 날도 흔해요. 그렇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하루 평균 100보 걸어요. 집과 작업실만 오가거든요.



그렇다면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순수한 휴식처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작업실을 구하기 전에는 줄곧 집에서 작업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일과 휴식이 구분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공간을 분리해서 지내니까 집에서는 멍때리며 정말 오롯이 쉬어요. 그래서 더 애정이 가요. 제가 좋아하는 일만 일어나는 곳이니까요.








집을 사랑하는 만큼 해외 체류 중에도 집에서처럼 지내기 위해 하는 루틴이 있나요?

저는 집에서 무엇을 해 먹는지도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어서 해외에 도착한 첫날 중요한 루틴 중 하나가 동네 슈퍼마켓에 가는 거예요. 그 도시 사람들은 이 계절에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사는지 곁눈질하면서 비슷하게 흉내를 내죠. 그게 다른 도시에 살 때 느끼는 재미예요.



다음은 어느 도시로 떠나나요?

이번에는 보스턴으로 갑니다. 북 페어 때문에 가는 출장이라 길게는 아니고 3주 정도 있다가 돌아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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