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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네트워킹, 도시, 큐레이션

커피와 위스키를 내주는 건축가의 라운지

김동현 마하건축사사무소 소장

Text | Solhee Yoon
Photos | Ken Pyun
Film | Taemin Son

한남5구역 한적한 골목길을 우두커니 지키고 서 있는 건물 입구, ‘귀빈탕’이란 때 묻은 간판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다. ‘이런 곳에 그렇게 말쑥한 카페가 있다고?’ 의심을 안고 4층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남탕, 여탕 표지판을 지나 마지막 계단참을 밟는 순간, 실내로 쏟아진 햇살에 눈이 부셨다. 찡그렸던 눈을 똑바로 뜨니, 화재로 새까맣게 탄 채 방치되어 있다는 목욕탕 주인집은 씻겨 나갔는지 온데간데없고 정오의 따사로운 빛을 받는 건축가의 서재가 보였다.








서울에 산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 동네를 지나쳐 간 적도 없는 걸 보면 소장께서 쓴 소개 글처럼깊숙한 마을에 있는 카페가 맞나 보네요.

저도 이 건물 때문에 여기 오기 전까지 이 동네의 존재를 몰랐어요. 여기 바로 앞 골목까지 오는 대중교통이 마을버스 용산01번 딱 1대거든요. 게다가 건물이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용산구가 서울 한가운데 자리하지만 왠지 골짜기 깊숙이 들어온 느낌이었어요.



한남동과 한강을 이렇게 한눈에 볼 수 있는 것도 놀랍네요. 4층에 도착하자마자!”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그 보람으로 이 일을 해요.(웃음)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다락방처럼 작은 방이 제 사무실인데, 일하고 있다 보면 손님들 발자국 소리가 들리거든요. 그러고 나고 이내 그렇게!” 하더라고요.








설계업을 하시잖아요. 본업과 별개로 왜 카페를 운영하고 싶었나요?

마하 한남은 저에게는 두 번째 카페예요. 첫 번째 카페는 용산역 인근 땡땡거리라고 부르는 곳에서 건축가 동료들과 함께 연 ‘3F/Lobby’란 카페였어요. 설계 사무소를 개업했지만 당장은 수입이 그리 넉넉하지 않을 테니 탕비실을 조금 크게 만드는 개념으로 사무소 절반을 카페로 만든 거죠. 근데 손님들 반응이 좋고 덩달아 저희도 너무 신나는 거예요. 그러면서 여기서 독립해 나 혼자 운영하는 카페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 생각을 한 후로는 틈날 때마다 취미 삼아 부동산을 알아보러 다녔어요.



어떤 건물을 보러 다녔나요?

3F/Lobby 카페 자리도 외진 동네에 있는 오래된 건물 3층이었어요. 접근성이 떨어지고 허름한 건물 상태는 저에게 두려운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런 데만 찾아다녔죠. 임대료가 싸니까요. 그러다 이 동네에 와서 화재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귀빈탕 건물을 만났죠. 문이 열려 있어서,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4층까지 올라와봤어요. 그러니까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더라고요. 별수 있나요. 이곳을 꼭 계약해야겠다 생각하고 먼저 동네 사람들한테 재개발이 언제 시작될 것 같은지 물으러 다녔어요. 빠르면 3, 늦으면 5년 걸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면 이 공간에서 내 의도와 취지를 알리기에 충분할 것 같아서 건물주를 설득했어요. 설득하는 데 한 6개월 걸렸어요.












어떤 의도와 취지를 알리고 싶었나요?

저의 취향대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재료, 제가 좋아하는 가구와 기물, 제가 좋아하는 공간감 같은 것을 늘어놓은 곳으로 말이에요. 과장을 조금 보태면 동네에 만든 저의 취미방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3F/Lobby 카페가 건축가의 탕비실이었다면 마하 한남은 건축가의 집, 그중에서도 서재에 초대받은 느낌으로 콘셉트를 잡았어요. 돌아보면사용자가 이렇게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나는 여기를 어떻게 하고 싶지?’라는 질문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목욕탕 주인집이 카페가 된 셈이에요. 집 구조 그대로 카페로 쓰기에는 불편하지 않나요?

사업적으로만 보면 단점이 크죠. 벽을 없애고 홀을 크게 만들었다면 테이블을 지금보다 2배는 더 놓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 매출이 더 올라갔을 거고요. 그렇지만 제가 이곳을 만들려는 취지는 건축가의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이었으니까 지금 집 구조가 가장 좋은 답이었어요. 그리고 더 아늑해요. 방이 여러 개 있으니까 손님들도 호기심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재미를 느끼고요.



그러고 보니 테이블과 의자 모두 집에 둘 법한 가구네요.

맞아요. 안방에 있는 데이베드도 그런 의미예요. 데이베드는 쉽게 말해 낮잠용 침대잖아요. 물론 앉아서 즐길 수도 있지만 때로는 누워서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들 수도 있는 가구인데, 저는 여기에 잠깐 머무는 손님도 진짜 그렇게 쉬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번 더 가보고 싶은 마음이, 예쁘고 신기한 인테리어보다 강력하다고 믿어요




커피와 위스키를 판매하는데, 이 메뉴도 본인 취향이겠네요?

사실 위스키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에요. 근데 술을 메뉴에 꼭 넣고 싶었던 이유가 있어요. 여기 야경이 너무 아름답거든요. 낮에 들어오는 햇살을 즐기는 것 못지않게 실내에 조명을 은은하게 밝히고 한강 너머 강남 야경을 조망하는 시간도 정말 좋아요. 그 순간은 커피보다는 술 한잔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와인을 취급하려면 안주가 별도로 필요할 것 같아 위스키를 골랐죠. 커피는 원래 좋아해요. 저희는 에스프레소 머신 말고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려 드리는데, 커피 내리는 방법도, 그 커피 맛도 클래식해 마음에 들었어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마하 한남은 소장 자신이 좋아하는 분위기와 방식과 음식을 경험해볼 수 있는 장소인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모아놓은 집합소니까요. 저는 한번 더 가보고 싶은 마음이, 예쁘고 신기한 인테리어보다 강력하다고 믿는데, 그런 이야기를 나눌 장소로도 최적화되어 있어요. 그래서 결국 저의 본업과도 연결되고요. 이 분위기가 좋아 저에게 일을 의뢰하는 분이 생기니까요. 마하 한남은 저의 카페 모델하우스인 셈이죠.



그 말이 정답이네요. 모델하우스! 이 카페는 건축가 김동현이 만들 수 있는 경험을 전시 중이군요.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디지털 플랫폼 에스아이빌리지(S.I.VILLAGE)와 협업해 지난 7월 한 달 동안 팝업을 연 적이 있어요. 접견실, 거실, 침실, 욕실 등 각 방에 적합한 향기를 추천하는, 일종의 향기 집이었죠. 그래서 팝업 전시 제목도 <잠향: 향이 잠긴 공간>이었어요. 디지털 플랫폼이 오프라인에서 고객과 만난다는 의미를 강조했는데, 저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결국 뇌리에 오래 남는 경험은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더라고요.










집 수리를 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특히 불에 탄 채 방치된 건물이었으니까요.

사람이 안 살면 건물은 힘을 잃는다, 결국 건물을 건물답게 하는 건 사람의 온기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인지 참 신기한 게, 집을 고치는 동안 전 집주인과 마주 앉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또 제가 이렇게 폐허가 된 건물을 여럿 고쳐봤는데 절대 진리가 있어요. 고장 난 곳은 제대로 고쳐야 뒤탈이 없다. 그게 누수이든 단열이든 구조 보강이든 간에요. 사람이랑 똑같아요. 병의 근원을 고치지 않고 좋은 옷만 입는다고 해서 건강해 보이지 않듯 결국 기본기에 충실해야 아름다운 것도 더 오래가는 법이더라고요.



작은 방 입구에 프러포즈할 때 만들었다는 집 모형이 있던데 건축가의 이상적인 프러포즈 아닌가요! 아내의 반응이 어떠했을지 궁금해요.

프러포즈할 당시에 돈이 없으니까 훗날 당신에게 이런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시나리오도 있어요. 우리가 함께 장을 보고 집에 도착했을 때를 가정했죠. 어떤 풍경을 보고, 어느 문으로 들어가, 이런 방을 지나 맛있는 밥을 지어 먹자는 메시지를 기반으로 집 끄트머리에 예식장 모형을 붙여 지붕을 열었을 때 프러포즈 반지가 나오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기획이었어요. 근데 아내가 T(사고형) 인간이라 반응이…. 저는 눈물 콧물 쏙 뺄 줄 알았는데그래서 집 키는 어디 있는데?”라고 묻더군요.(웃음) 제가 모형을 만들고 설계하는 모습을 늘 봐서 감흥이 덜했던 것 같아요.



귀여운 에피소드인걸요. 집을 설계할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본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해요.

요즘 클라이언트와 대화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제 집은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라 즐기고 노는 공간 같아요. 옛날에는 즐기는 건 다 밖에서 하고, 집은 온전한 휴식처의 의미였잖아요. 지금은 그 경계가 없어요. 요즘 요리, 빨래, 청소 등을 외주화한다는 표현이 자주 쓰이던데, 그 외주화는 결국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시간을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메울 것 같아요. 훗날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똘똘 뭉쳐놓은 게 집이 되겠죠. 마하 한남처럼요.










앞으로 어떤 공간을 더 만들고 싶나요?

사람이 머무는 공간에는 여러 유형이 있어요. 카페처럼 2~3시간 머물며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있고, 숙소처럼 24시간 머물며 신발을 완전히 벗고 잠도 자는 공간이 있죠. 저는 그런 거주 공간을 유형별로 하나씩 만들어보고 싶어요. 정원을 만든다면 화려한 꽃이나 비싼 수종의 나무를 심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바람을 온전히 마주하는 공간을 만들 거예요. 세월이 지나 그런 공간을 여러 곳 가진다면 김동현이란 건축가가 생각하는 거주의 종류를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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