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제가 원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어요.” 뉴욕 브루클린의 작업실에서 만난 아티스트 김민재는 투박하지만 솔직하고 매력적인 그의 의자를 꼭 닮았다. 건축에 대한 깊은 지식을 기반으로, 가구를 매체로 한 작업을 선보이는 그는 물리적 공간 그 자체보다 환경을 가꾸고 채워나가는 과정, 이를 통해 빚어지는 커뮤니티에서 더 큰 영감을 받는다.
브루클린 공장 단지가 언제부터 아티스트들의 작업실이 된 걸까요?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원래는 지상 4층까지 있는 엄청 큰 공장이었다고 해요. 아마 지금은 100명도 넘는 아티스트, 디자이너들이 이 건물에 모여 있을 거예요. 맨해튼 소호도 사실 1960~1970년대에는 공장 지대였고 그 이후에 이곳저곳에 공장형 스튜디오가 많아졌거든요. 친구들 2~3명이 먼저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저를 빌딩 매니저에게 소개해 줘서 들어오게 됐어요. 원래 저는 집 뒷마당과 지하실에서 작업을 했는데 먼지나 소음 때문에 힘들었거든요.
작업실에서 평소 일상은 어떤가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여행을 하거나 해외 레지던시에 머무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하고,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다 집에 돌아가요. 처음엔 모든 과정을 혼자 했지만 지금은 생산을 돕는 어시스턴트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초반엔 한 공간만 쓰다가 지금은 옆 작업실까지 확장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작업실 문과 커피 바, 그리고 가벽도 모두 직접 설치한 거예요.
김민재 작가가 뉴욕 생활을 한 지 8년이 지났어요.
첫 3년은 콜롬비아 건축 대학원에서, 졸업 후 3년은 지안카를로 발레 Giancarlo Valle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인테리어와 건축 작업을 했습니다. 전업 작가로 활동한 지는 이제 2년 반 넘었어요. 딱히 뉴욕이 집처럼 느껴지지는 않아요. 오히려 오래 생활할수록 제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더 와닿을 때가 있죠.
뉴욕은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섞여 살다 보니 서울에서보다 개인의 뿌리가 부각되는 도시예요. 특히 아티스트는 더 그렇죠. 간혹 그런 부분이 작업에 반영되기도 하나요?
저희 어머니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서양화가예요. 서양 미학을 다루면서 그것과 상반된 환경에서 지내시는 거죠. 반대로 저는 한국 사람이지만 외국 생활을 하면서 건축과 미술을 접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한국적인 부분이 배어 나왔던 것 같아요. 뉴욕이 아닌 어떤 곳에 있더라도 비슷한 미감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또 모르죠.(웃음)
작가님의 작업을 보고 한국적인 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스튜디오에 있는 갓도 다른 작품들과 이질감 없이 어울리네요.
여기 놓인 갓은 제 전시 설치에 쓰였거나 개인적으로 구입한 것들이에요. 2022년 12월에 열린 니나 존슨 갤러리 전시에서 처음으로 한국 아이덴티티에 대한 작업을 선보였거든요. 사실 그전까진 한국적인 부분을 제 작업에 의도적으로 개입시킨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한국’이라는 수식어가 종종 저를 설명하는 단어가 되기도 했고, 그래서 아예 제대로 이야기를 해보자 싶었습니다.
“집 안에서도 즐겁게 지내지만, 가장 몰입이 되는 건 언제나 환경을 새롭게 조성할 때인 것 같아요.”
2021년 LA 마타 갤러리Marta Gallery에서 연 전시가 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 첫 전시였습니다. 티와Tiwa 셀렉트와 마타 갤러리를 만난 것을 두고 ’마치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만난 기분’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의미였나요?
마타 갤러리를 설립한 벤자민 크리턴Benjamin Critton과 하이디 코르사본Heidi Korsavong, 그리고 티와 셀렉트의 오너인 알렉스 티아기-워커Alex Tieghi-Walker는 개인적으로도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들이에요. 같은 세대라는 동질감도 있고,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커리어를 시작했죠. 이미 너무 저명한 갤러리였다면, 함께 전시를 기획했을 때 제가 시작하는 단계에서 동등한 입장으로 일한다고 느끼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두 갤러리는 마치 함께 노는 것처럼 일하기 때문에 부담감도 적고, 같이 성장하는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전시를 열자마자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첫 2년 동안 열린 세 번의 전시를 통해 작가로서 인지도를 쌓고, 미디어의 주목과 잇따른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2년은 짧은 시간인데, 개인적으로 이 변화가 어떻게 느껴졌나요?
연이어 전시를 마치고 나니 확실히 번아웃이 왔어요. 정신없이 달려오기만 하다가 작가로서 저의 커리어에 대해 조금 더 멀리 보게 된 계기가 됐죠. 그때까지는 저에게 들어오는 기회를 받아들이고, 진행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었거든요. 전시를 마치고 나서 제 작업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내가 이 그림을 얼마나 주도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양한 방향에서 기회가 왔을 때 최대의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쳇바퀴 돌 듯 소모되거나, 가령 트렌드와 맞지 않을 때는 소외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찾아왔습니다. 물론 주변에 비슷한 부담을 느끼는 동료들도 많다는 걸 알아요. 그럴수록 일부러 더 작업에서 안정감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상태에서 창작 활동을 가능케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주어진 공간 안에 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즐겨요. 예를 들면 첫 전시에서는 서부권에서 건축과 가구를 작업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괴리감을 표현하고자 했고, 두 번째로 뉴욕 매터Matter에서 어머니와 함께 한 전시에서는 지금까지 오게 된 저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표면적인 의도였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굉장히 신이 나요. 내가 어떤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어떤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가장 힘이 나죠. 일단 큰 틀이 잡히고 나면, 그 주제에 따라 작업을 이어갑니다. 제가 만들고자 하는 이미지나 효과에 대한 동력이 커서 다른 계산을 할 겨를도 없이 작업을 하게 되죠.
피렌체에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누메로벤티에서의 최근 한 달은 어땠나요?
전체적인 전시 주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당시 전쟁과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폭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뉴스를 통해 일련의 사건을 접하면서 내가 여기서 디자인 작업을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회의가 들었죠. 내가 만드는 피스들이 결국 아트 퍼니처, 럭셔리 아이템으로 소비되는 환경인데 너무 기분이 묘했어요. 그래서 그걸 주제로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구 작업을 위해 이런 공간을 이용하지만, 이곳을 통해 내가 느낀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고 표현할 수 있어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일반 작업도 재밌지만 제 감정을 담고 표현했을 때 더 만족감이 큰 것 같아요.
‘내가 사는 도시’, ‘나의 공간’ 같은 물리적 환경에 대한 큰 애착은 없는 것 같아요.
크게 개의치 않아요. 사실 이탈리아에 와서 한 달 동안 작업하라고 했을 땐 좀 막막하기까지 했죠. 그런데 일단 가면 또 새롭게 꾸려가는 재미가 있어요. 전시와 마찬가지로 작업실도 꾸밀 때가 제일 재밌거든요. 집도 그래요. 그 안에서 즐겁게 지내지만, 가장 몰입이 되는 건 언제나 환경을 새롭게 조성할 때인 것 같아요.
익숙한 곳보다 새로운 환경을 좋아하나 보네요.
둥지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요. 한 공간을 조성하고, 어떤 가구를 만들어 넣기까지 그 과정이 제일 재미있어요. 끝나고 나면 만족감은 있지만 시작할 때만큼 좋은 건 아니에요. 전시 공간이든 작업실이든 집이든 초기 단계에 작업 동기가 가장 불타오르죠. 군대에서도 그랬어요. 군대에는 예쁜 건물이 없잖아요. 어쩌다 새로 짓는 건물을 보면 계속 눈이 가는 거죠. 뼈대를 세우고 콘크리트를 붓는 과정을 보면서 ‘다음에 지나갈 땐 어떻게 되어 있을까’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런데 다 지어진 새 건물은 마감이 끝나고 나면 왠지 모르게 거기서 생명력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건축, 가구 작업을 하는 데 너무 최적화된 성향 아닌가요?
그런가요. 말하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웃음)
큰 애착이 없더라도 특정 환경에 있기 때문에 영향받는 요소가 있잖아요. 30대 아티스트로서 지금 뉴욕, 그리고 이 작업실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 있을까요?
누군가 제 작품을 보고싶다고 했을 때, 뉴욕에 스튜디오가 있다는 점이 상당히 편리하게 작용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니까요. 또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여기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친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창작자에게 생활적인 면에서 뉴욕이 괜찮은 도시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한다면 잘 모르겠어요. ‘이제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가 쇠퇴기에 있지 않나’라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눈 적도 있고요. 20대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품고 이 도시에 온다는 걸 알아요. 그럼 이 환경도 어느 정도 보답을 해줘야 하는데, 뉴욕은 너무 비싸고 살벌한 곳이거든요.
지금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은 어디인가요?
건축 학교를 다닐 때는 정말 힘들게 지냈고, 처음 건축 사무소를 다니면서 클라이언트를 위한 하이엔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제가 사는 삶과 달라서 괴리감이 컸어요. 당시 저는 할렘에서 살았고 그런 세상이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누군가의 부엌을 디자인해주면서 타일을 고르다가 집에 오면 흔히 말하는 ‘현타'가 오는 거죠. 하지만 제 작업을 시작하면서 저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감정적으로 소통이 되는 작품을 만들면서 어느 정도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환경을 조성하게 됐어요. 제가 만든 가구, 작품과 함께 있는 것도 편안하고, 저를 이해해 주는 클라이언트와의 대화도 편안해졌죠. 다른 나라에서 전시, 작업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같은 공감대, 같은 세계관 안에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에게 편안한 환경이란 특정한 위치나 공간보다는 제 작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 빚어지는 커뮤니티에서 온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