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3층에는 홍콩 영화 속 카페 신 촬영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망우삼림, 4층에는 <슬램덩크>를 사랑하고 콘솔 게임기를 즐기던 1990년대 남학생의 방 같은 20세기인쇄사무실이 있다. 분위기는 서로 다르지만 윤병주라는 한 사람이 만들고 운영하는 곳이다. 그는 어릴 적 서랍 속에 챙겨둔 애장품을 중심으로 방 하나하나의 세계관으로 확장하는 중이라고 했다.
을지로3가역 11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있네요. 사거리 코너 건물이라 손님들도 쉽게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연히 찾은 자리인데 잘 만난 것 같아요. 여기가 거의 을지로 중간에 해당하는데, 창밖을 한번 보시겠어요? 을지로 동쪽 끝인 동대문 방면에도, 서쪽 끝인 시청 방면에도 고층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어요. 을지로가 변해가는 게 느껴지죠. 을지로가 곧 강북의 테헤란로가 되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 봅니다.
왜 을지로로 왔나요?
종로나 중구 쪽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느꼈는데, 마침 이곳 월세가 다른 동네보다 싼 편이었어요. 지내보니까 월세가 껑충껑충 뛰지 않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겠더라고요. 뇌피셜이긴 하지만 건물이 오래된 것도 한몫하고, 구도심이라 건물주가 이 동네 토박이인 경우가 꽤 있어요. 1층 상가 대부분은 30~40년씩 장사해 온 분들 몫이라 저희처럼 새로 온 사람은 2~4층에 세를 드는데, 위층의 세를 올리려면 오래 알고 지내온 1층도 함께 세를 올려야 하니까 건물주들이 한 번 더 재고하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망우삼림, 20세기인쇄사무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2018년 10월에 필름을 현상하고 스캔해 주는 현상소로 망우삼림을 오픈했어요. 그리고 위층을 또 임대해 2023년 11월에 20세기인쇄사무실을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사진을 찍으면 인화해서 앨범에 꽂으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티셔츠, 후드, 가방 등에 프린트할 수도 있잖아요. 과거의 것을 현대에 어떻게 다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것 같아요.
망우삼림은 오픈하자마자 ‘홍콩 영화 분위기의 현상소’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여러 잡지에 소개되었어요. 인테리어를 직접 다 했다고요.
제가 디자인 능력이 뛰어난 건 아닌데, 하고 싶은 게 굉장히 많아요.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건 좋아하는 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였는지 상가를 계약하면서 오래전부터 꿈꿔온 것들을 하나씩 실현해 보자고 다짐했어요. 인테리어를 계획할 당시 예술가병에 걸린 것처럼 지독하게 한 콘셉트에만 집중하고 싶었는데, 그 콘셉트를 홍콩 영화 분위기로 설정했어요. 어릴 때 본 <중경삼림> <천장지구> <화양연화>의 분위기가 마음 한편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거든요. 언젠가 내 공간을 갖게 되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보는 게 오랜 소원이었죠.
“공간은 한 사람에 관한 단서가 모인 곳 같아요.”
새로 문을 연 20세기인쇄사무실 인테리어는 어떤 콘셉트였나요?
인생에 추억이란 게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 망우삼림의 맥락을 그대로 가져가기보다는 ‘나는 이런 것도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어요. 그러다 ‘20세기’란 주제에 꽂혔어요. 저는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이고 처음 접하고 빠져든 1970~1990년대의 영상, 음악, 책 등을 아직도 좋아해서 그런 것들을 손님들과 같이 추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 있는 가구, 기기, 소품은 평소 수집한 것이겠군요?
맞습니다. 저는 늘 어떻게든 빈티지 숍만 찾아다녀요. 맛집, 관광지 이런 데에는 관심이 없고, 여행을 가더라도 가고 싶은 빈티지 숍과 또 다른 빈티지 숍 사이를 여행 동선으로 정해요.
오래 꿈꿔온 로망을 바탕으로 애장품을 펼쳐놓았군요. 마치 윤병주 개인의 방 같네요.
실제로 한 6개월 정도 여기서 살다시피 했어요. 망우삼림을 갓 열었을 때는 돈도 없고 직원도 없어서 혼자 일을 많이 했거든요. 일이 끝나면 새벽 3시였어요. 그때는 오전 10시에 문을 열었는데, 여기서 자고 아침 8시에 일어나서 근처 목욕탕에 가서 씻고 다시 일을 시작했죠. 그때 산 팬티만 해도 한 200장은 될 거예요.(웃음) 빨래도 못 하고 그냥 매일 새로 샀거든요. 근데 그 시간이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고 다시 생각해도 정말 소중해요. 그래서 망우삼림은 제가 낳은 자식 같아요. 비슷한 의미로, 여기 물건들 역시 다 아끼죠. 그 증거가 바로 이 유리장이에요. 유리가 없어야 손님들이 보기 편할 텐데, 저에게 너무 소중한 것들이니까 잘 관리하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죠. 디스플레이해놓고도 햇빛 때문에 색이 바랄까 매일매일 노심초사하고 있어요.
그렇게 아끼는 것들을 여기에 둔 이유는 뭘까요?
함께 보는 즐거움인 것 같아요. 손님들이 이것을 보고 신기하다고 할 때보다 “나 이거 알아”라고 말할 때 더 좋아요. 누군가가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안다고 했을 때 여러 에너지가 방출되거든요. 그러면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죠.
어릴 때부터 방을 아기자기하게 잘 꾸미는 스타일이었나요?
네. 물건 모으는 걸 좋아해 방 꾸미는 것에도 상당히 공을 들였는데, 문제는 그게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는데 계절마다 가구를 옮기셔서 저는 나름대로 상당히 고통을 받았거든요. 이사도 자주 다녔고 방도, 가구 위치도 매번 바꾸셨어요. 그래서 저는 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앨범이 어디 있는지 몰라요. 아마 이사 다니던 통에 잃어버렸을 거예요. 게다가 4살 어린 동생이 제가 정리한 책상을 어지르고 만들어놓은 장난감을 부수는 걸 지켜봤으니 어릴 때부터 욕망이 커질 수밖에 없었어요. ‘독립하면 내 물건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겠다’, ‘모두 다 지키겠다’고요.
‘내 공간’에 대한 강한 의지가 느껴지네요. ‘이 정도까지 꾸며봤다’고 할 만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가 군대에서 별명이 대장장이였어요. 왜냐하면 관물대까지 개조해 썼거든요. 안에다 작은 스피커를 설치해 놓고 몰래 챙겨 온 CD 플레이어를 연결해서 관물대를 큰 스피커로 만들었죠. 물론 선임과 합의를 봤습니다. 당신 것도 설치해 줄 테니 제 것도 봐주십시오.(웃음) 아무튼 그렇게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고 개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사진가로서 개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죠.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나요?
대중적으로 알려진 연작으로는 이태원 이슬람 사원 일대의 사람과 그들의 공간을 기록한 ‘우사단’(2013), 그리고 화성(Mars)을 탐사하는 방법을 차용하거나 흉내 내며 경기도 화성시를 기록한 ‘화성’(2011~2014)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업 스타일을 굳이 하나로 말하라면 ‘우사단’ 작업에 가까워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관심이 있거든요. 그래서 집 같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공간에서 그 사람의 모습을 찍는 게 흥미로워요.
그럴 때 집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제 성격이나 관심사가 이 공간의 인테리어에서 드러나듯 공간은 한 사람에 관한 단서가 모인 곳 같아요. 그 공간에는 어떠한 글도 없지만 보는 사람이 상상하게 만들죠. ‘저 사람은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할까’, ‘저런 걸 좋아하네’ 등등. 거기서부터 지금껏 전혀 몰랐던 이야기를 새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남의 집에 방문한 경험이 많을 것 같아요.
정말 많죠. 오랜 친구의 집부터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의 집까지.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하나만 말해보자면, ‘우사단’ 작업을 할 때 아프가니스탄 청년 다웃의 집에 간 적이 있어요. 할랄 고기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정육점에서 일하는 친구였는데, 종종 그 가게에 놀러 가서 수다를 떨다가 집에 초대받았어요. 그의 집 풍경은 왠지 익숙한데 생경했어요. 하얀 벽지에 노란 장판, 오래된 나무틀의 창문이 있는 전형적인 우리네 빌라였는데, 그는 방에 오리엔탈 스타일의 카펫과 두툼한 요를 깔고 비스듬히 누워서 생활했거든요. 자기 고향 집에 있듯이요. 그때 ‘이게 바로 이태원의 모습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어쩌면 가장 작고 개인적인 집, 그의 방에서 그 지역을 이해하게 된 것이죠.
이곳의 두 공간은 무엇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좀 낯간지러운 표현일 수 있는데, 저는 망우삼림을 제 영혼과 같다고 생각해요. 상가 계약부터 오픈까지 매 과정이 처음 겪는 일이었고, 그것을 어떠한 전문 업체의 도움 없이 혼자, 때로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어요. 그래서 망우삼림에 대한 기대는 돈을 벌겠다는 포부보다 내 영혼을 앞으로도 잘 지키자는 바람에 가까워요. 대신 20세기인쇄사무실은 이 영혼을 보호하는 완충재 역할에 가깝죠. 손님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돈도 잘 벌어 3층을 지속시키는 데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현재 집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영혼이 여기 있으니 집은 온습도가 잘 유지되는 저의 수장고라고 할까요.(웃음) 저는 집에 관리자 행세를 하러 갑니다. 끝끝내 저 혼자 보관하고 싶은 물건들과 ‘오늘 잘 있었니?’ 하고 인사하고 돌보는 데에 기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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