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을 찾는 방문객들은 관광 명소를 여행하지 않는다. 명동, 성수동, 을지로…. 동네를 여행하고 그곳만의 분위기를 느끼고자 한다. 분명 좋은 현상이지만 단점도 있다. 각 동네는 고정된 이미지로 소비되고, 때로는 진짜 매력이 감춰진다. 그래서 유튜브 채널 아이고바트를 운영하는 바르트 판 헤뉘흐턴은 서울의 467개 동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역사, 문화, 사람을 살펴보고 숨겨진 이야기를 전달한다.
유튜브 채널 아이고바트iGoBart 혹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본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어요. 언제, 왜 한국에 왔는지부터요.
국제 비정부 기구인 ‘CARE 네덜란드’에서 예멘 프로그램 책임자로 일하다 2017년에 그만두고 6개월 동안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여행했어요. 인생에서 잊지 못할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여행지 중에는 당연히 한국도 있었죠. 다양한 한국 음식을 먹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한국의 음주 예절도 익히면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이후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제가 한국에서 가장 편안했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계속 여행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어요.
유튜브 영상을 보니 서울을 포함해 한국의 곳곳을 여행하며 한국전쟁 참전 용사를 만나고, 심지어 아버지와 북한 여행도 다녀왔더라고요. 한국에 관한 내용의 유튜브를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구직 중이었는데 전처럼 딱딱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업은 시작이 복잡하고, 시간도 걸리고요. 그러던 중에 ‘유튜브에서 비디오를 만들어 올리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튜브 광고를 봤어요. 마침 영상 제작법도 온라인으로 교육한다고 해서 쉽게 시작했어요.
한 영상에서 ‘포기할 뻔했다’는 고백을 듣고, 유튜버로서 자리 잡고 성공하는 데 시행착오가 많았구나 싶었어요.
처음엔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아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를 자주 등장시켰어요. 그러다 보니 계획과 달리 국제 커플 채널로 알려지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런 채널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콘텐츠를 만들어 실험했어요. 북한, 네덜란드, 한국전쟁 참전 용사, 브이로그 등 주제를 다양하게 다룬 덕분에 ‘Welcome to my Dong’ 시리즈를 기획할 수 있었죠. 제가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콘텐츠이자 사람들에게 배움을 전하는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까지 수백 번 시행착오를 거쳤어요.
제일 재밌게 본 콘텐츠는 서울의 467개 동을 돌아다니는 ‘Welcome to my Dong’ 시리즈예요. 서울의 동네를 직접 돌아다니면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데 그 동네 주민만 알 수 있는 내용을 공개하기도 하죠.
관광객으로서 반드시 봐야 할 서울의 명소를 다 보고 나면 서울을 완벽하게 봤다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실제로는 못 본 것이 더 많아요. 저도 그랬어요. 집 근처에서 우연히 오래된 전통 시장을 발견했는데 그곳에 다방과 작은 홍등가가 있더라고요. 집 가까이에 그런 곳이 있는지 몰라서 좀 놀랐어요. 그리고 호기심이 생겨서 역사와 이유를 찾아보니까 아무런 단서가 없더라고요. 이게 ‘Welcome to my Dong’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계기예요. 숨겨진 장소를 탐험해서 덜 알려진 동네의 모든 걸 알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죠. 도시에는 분명 그곳만의 역사, 이야기, 문화, 음식이 있는 동네가 있어요. 단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죠. 시리즈를 생각한 건 6년 전인데, 그때만 해도 서울이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 도시인 줄 몰랐어요. 재작년에 제가 알던 오래된 건물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는 걸 보고 급박함을 느껴 ‘Welcome to my Dong’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도시의 행정구역 중에서 왜 동에 초점을 맞췄나요?
대학에서 인문지리학을 전공한 덕분에 자연과 주변 환경이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도시 문화와 개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느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 도시를 더 작은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은 정말 큰 도시라서 시 단위로 볼 경우 놓쳐버리는 이야기가 많아요. 하지만 동으로 나누면 역사적, 문화적, 현대적으로 깊게 설명할 수 있죠. 동을 나눈 경계와 이름에도 다 이유가 있거든요. 또 작은 규모로 탐험하는 게 재밌어요.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지’ 싶을 정도로 동의 역사, 문화, 뒷이야기까지 많은 걸 알더라고요.
한국인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전 이야기에 관심이 있고, 배우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영상을 찍기 전에 찐 동네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모든 매체를 찾아보고 읽어요. 그런데도 실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저를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300개 정도 남은 동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중에는 특별한 역사나 배경이 없는 곳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91개 동을 돌아다녔는데 모든 동네에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각 동을 서로 다른 이유로 좋아해요. ‘Welcome to my Dong’ 시리즈를 하면서 깨달은 점은 뭔가를 찾고 싶은 사람은 어디서든 재미있고 특별한 걸 찾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단, 나에게 흥미로운 것이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하죠.
“어느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 도시를
더 작은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바라봐야 해요.
서울은 정말 큰 도시라서 시 단위로 볼 경우
놓쳐버리는 이야기가 많아요.
‘Welcome to my Dong’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은 사람이다. 자신처럼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외국인이 등장해 동네에 숨겨진 비밀을 소개할 때도 있고, 진짜 그 동네에 사는 주민이 동네에 관해 설명할 때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라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시청하게 만든다. 바로 이 지점이 외국인이 서울을 탐험한다는 콘셉트를 넘어 계속 영상을 보게 만드는 아이고바트 채널의 힘이다.
동네 주민에게 직접 그 동네에 관해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을 때는 ‘카더라’가 아닌 진짜 동네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동네는 사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지루한 동네였는데,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친절하고 따뜻한 할머니를 만난다면 갑자기 그 동네에서 보낸 시간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아져요. 이처럼 동네를 만드는 건 사람이기 때문에 주민들과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해요. 종종 그들과의 대화를 영상에 다 담지 못하지만 저에겐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죠.
‘Welcome to my Dong’ 시리즈는 요즘 여기저기서 말하는 소위 ‘힙한’ 서울이 아니라, 숨겨진 어두운 면도 보여주죠. 이렇게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기록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동네의 현재 모습을 기록하고 보관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제 영상을 통해 장소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영원히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K-팝, K-드라마, K-푸드 같은 피상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거예요.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한국에는 탐구할 것이 많고, 모든 것이 동일한 위치에 있었으면 해요.
사실 한국인인 저도 그런 과대 홍보를 보면 의심스러워요.
‘한국은 대단해’라고 말하는 수많은 매체에 지쳤다고 할까요? 때로는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어요. 제 목표는 동네에 관한 솔직한 견해와 경험을 전달하는 거예요. 좋든 나쁘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동네에 관한 감상은 제가 현장에서 겪은 경험에 달려 있죠. 물론 동네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릴 수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제 목표는 그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열린 마음을 갖고, 한국인들이 도시의 알려지지 않은 구석까지 자랑스러웠으면 해요.
한국에서 지낸 지 7년이 다 되어가요. 그럼에도 한국과 서울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나요?
제가 네덜란드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에 제가 자란 곳과 지금 사는 곳 사이에는 항상 작은 차이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문제없어요. 이러한 차이에서 에너지를 얻고 삶에 대해 배우니까요. 한국은 두 번째 고향이 되었어요. 네덜란드에서 가족,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면서도 한국이 그리워질 때가 있거든요.
동네에 관해 이야기하는 분이니까 지금 사는 동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전 합정동에서 오래 살았어요. 그다음엔 상수동, 성산동을 거쳐 지금은 보문동에 살아요. 조용하고, 주요 랜드마크와 가깝고, 전보다 거주 공간이 넓어서 시리즈 제작에 더 집중할 수 있어요.
시리즈 제작도 그렇고, ‘이동’이 본인 삶의 주요 테마인 것 같아요.
제 삶은 항상 이동하고, 새로운 환경에 있는 것도 좋아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밤에 성북천을 따라 청계천까지 달리거나, 동묘 골목길을 걷는 거예요. 경복궁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도 좋아해요. 한국에서 지낸 지 7년이나 되었어도 경복궁의 아름다운 문을 볼 때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1년 365일, 하루의 반을 돌아다니고 세상을 탐험하는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냉장고를 열어 음식과 음료수를 마음껏 꺼내 먹고, 아내를 안은 채 시간을 보내고, 네덜란드 친구들과 게임하고,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네덜란드 노래를 부르는 곳이에요. 이런 추한 모습은 저와 아내만이 볼 수 있죠. 제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이라서 그렇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린 바르트는 자신이 커서 이렇게 세계를 여행하고, 특히 한 도시를 구석구석 탐험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전혀요. 저는 흐라버Grave라는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10대까지 대도시로 나가 세상을 탐험하는 것보다 고향에서 친구들과 익숙한 것을 하며 사는 것을 꿈꿨죠. 삶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면서 삶의 가치관도 변했나요?
엄청나게 바뀌었어요. 시리즈 시작 시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이게 바로 의미 있는 영상을 만드는 일의 장점이자 아름다운 점인 것 같아요. 영상을 제작하면서 세상뿐 아니라 저 자신도 가르치고 있어요. 그 덕분에 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당신처럼 세상을 탐험하며 호기심을 충족하고 새로운 걸 알고 싶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들에게 도움이 될 한마디를 해준다면요?
탐험은 제 꿈이 아니었어요. 원래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방법을 찾고 싶었죠. 탐험을 기대한 분들께 죄송하네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탐험이 일의 중심이 된다면 책임감이 수반된다는 점이에요. 저는 탐험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탐험한 적이 없어요.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주 40시간이 넘도록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려고 했고, 5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그 일을 통해 수익을 내서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아냈어요. 그런 입장에서 꿈을 따르되 결코 쉽게 포기하지 말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열심히 일하고, 최고의 사람에게 배우고,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찾으세요. 그래야 꿈을 이룰 수 있어요.
Text | Young-Eun Heo
Photos | Este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