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박이 버섯과 무지개 동물들로 가득한 거실 한가운데, 거대한 말 조각상이 우뚝 서 있다. 방 안의 시계, 의자, 조명, 소파, 책상 등 모든 물건은 화려한 코바늘 뜨개로 감싸여 있다. 마치 동화 속 세상을 한 땀 한 땀 엮어낸 듯한 이 환상적인 풍경은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독특한 감각을 선사한다. 코바늘로 꿈과 현실을 직조하는 아티스트 알레산드라 로베다의 집이다.
아티스트 알레산드라 로베다Alessandra Roveda의 작업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19년 밀라노 디자인 박람회에서 미쏘니 홈과 함께 한 전시였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코바늘 뜨개 작품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 미쏘니 특유의 지그재그 패턴과 대담한 컬러를 입은 가상의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집 안에 들어서면 잔디 위를 뛰노는 토끼와 선인장, 그리고 주방과 거실의 일상용품까지 모두 코바늘의 섬세한 터치로 새롭게 태어났다. 텔레비전, 와인병, 기타, 소파, 자전거까지. 이 공간의 모든 것이 알록달록한 코바늘 뜨개로 감싸여 있어 마치 마법에 걸린 듯했다. 사실 이 무대는 로베다가 실제로 살고 있는 밀라노 외곽 트루카차노의 집을 그대로 옮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로베다는 수년 전부터 코바늘로 자신의 세상을 하나하나 엮어나가고 있으며,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으려는 바람이 담겨 있다. 로베다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저절로 미소를 지으며 “맞아, 그때 그랬지”라며 따스한 순간을 회상하곤 한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로베다는 어린 시절부터 광고, 패션, 디자인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밀라노 공과대학교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후 영국 엑서터에 있는 예술 및 디자인 대학에서 수학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로마와 밀라노를 오가며 파올라 콜롬바리 갤러리Paola Colombari Gallery와 협업해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로마 테니스 국제 대회와 승마 대회 설치 작업을 맡고, 아마존 스튜디오가 제작한 이탈리아 로맨틱 코미디 영화 <스틸 패뷸러스Still Fabulous>의 소품을 제작하며 영화 세트와 코바늘 작업 사이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혼자 완성했다고 믿기 힘들 만큼 방대한 예술 작품으로 가득한 당신의 집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제 작업으로 가득 찬 이곳은 19세기 후반에 지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농가로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현재 제가 사는 집이에요. 코바늘 뜨개로 감싼 많은 물건은 대부분 다락방과 헛간에 있던 것입니다. 수년 전 우리 가족이 사용했던 일상용품인데, 그 물건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과거와 현재가 제 작업을 통해 이어지는 거죠. 이 집은 벽이 두껍고 천장이 높아서 거대한 오브제나 샹들리에를 걸 수 있어요. 또 흰 벽과 가구를 캔버스처럼 사용하지요.
보통 먼저 배우게 되는 대바늘뜨기(knitting : 길쭉한 바늘 1쌍으로 하는) 보다 실로 만든 고리와 고리를 이어서 만드는 코바늘뜨기(crochet)를 주로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도 처음에는 대바늘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 표현 방식이 점점 달라졌죠. 코바늘은 어디서나 손쉽게 작업할 수 있고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니기에도 편하죠. 다양한 형태를 표현하는 데는 대바늘보다 코바늘이 유리했어요.
코바늘뜨기를 통해 집 안 사물을 이렇게 행복이란 감정으로 채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할머니와 함께 코바늘뜨기를 시작하던 때가 기억나요. 처음엔 친구들과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모자를 만들었죠. 그러다 낡은 스툴의 덮개를 만들면서 물건의 외관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순간, 코바늘로 제 손끝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래된 물건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부서진 것을 다시 아름답게 만드는 과정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작은 코바늘로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그 작업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어요.
화려한 컬러 덕분에 더욱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맞아요. 화려한 컬러 때문에 동화적인 분위기가 강하죠. 사람들이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보이는 반응은 커다란 미소와 놀라움에 ‘O’ 자로 벌린 입이에요. 저는 그 반응이 정말 좋아요. 유머와 기쁨, 놀라움이 담긴 동심으로 돌아가 느끼는 행복은 정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죠.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철들려고 노력하지만 유치함과 천진난만함은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근력처럼 키워야 할 힘이라고 생각해요.
컬러는 어떻게 선택하나요?
실을 선택할 때는 그 질감과 색상이 물건의 본래 모습과 잘 어우러지면서 동시에 반전의 재미를 줄 수 있는지를 살펴봐요. 색상으로 감정과 에너지를 표현하려 하고, 색이 주는 생동감이 제가 만드는 물건에 특별한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작업은 직감에 의존해요. 가능하면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요. 최대한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채워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예술가는 즉흥적으로 시작한 작업이 완성품이 될 때까지 힘을 빼는 데 몰두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가볍게 작업해야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리미, 그릇, 컵, 시계 등 주로 일상적인 물건에 집중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일상적인 물건을 주제로 삼는 이유는 그 물건들을 통해 사람들과 더 깊이 소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은 익숙하지만, 그것들을 예술로 변형시켰을 때 그 안에 숨겨진 새로운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런 변화가 저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죠. 물건을 선택할 때는 그 물건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지니고 있거나, 재해석했을 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특별한 의뢰가 없는 경우, 주로 버려진 물건이나 더 이상 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에 집중해요. 이런 물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의 과거 이야기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정말 흥미롭거든요. 그래서 새 물건보다는 오래된 물건에 작업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 이런 방식으로 물건이 새롭게 태어나면서 그 물건의 과거 이야기가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되는 과정이 매력적이에요.
주로 어디서 작업을 하나요? 혼자 작업하려면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어디서든 해요. 로마와 밀라노를 오가는 기차, 비행기, 자동차 안에서도, 친구들과의 나들이, 바비큐 파티, 심지어 식탁에서도요. 이탈리아의 끝도 없는 식사 시간만으로도 충분해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른다면요?
아마도 말일 거예요. 제 기법을 가장 대범하게 실험해본 작품이기 때문이죠. 말의 크기와 복잡함이 정말 도전적이었죠. 가장 최근에 작업한 다리미와 다리미판도 무척 재미있었어요. 결과가 정말 멋지게 나왔거든요. 코바늘이란 수단은 동일하지만 매번 오브제가 달라지니 새로운 모험을 하는 기분이죠.
당신의 작품은 인간적인 따뜻함과 친근감이 있어서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래서 더 소유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할머니 집이 생각나요!” 아마도 저는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할머니 같은 사람인가 봐요.(웃음) 제 작업이 사람들의 어린 시절과 연결된다는 점이 좋아요. ‘온 세상을 온기로 감싸고 싶다’ 같은 거대한 포부나 의도는 없어요. 저의 작업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에서 발현되는 것이거든요.
“제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단순히
사진을 찍고,
공유하고, 댓글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았으면 해요.
가끔은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고, 과거의
예술과 공예로 돌아가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여행했으면 하죠.”
다분히 개인적인 작업이라 하지만,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 대신 손끝에서 전해지는 진정성과 따스함을 느끼기를 기대하나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요즘은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니까요. 제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단순히 사진을 찍고, 공유하고, 댓글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았으면 해요. 가끔은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고, 과거의 예술과 공예로 돌아가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여행했으면 하죠. 남의 상상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 속에서요.
몇 년 전에 비해 집 안이 작품으로 더 채워진 거 같은데, 이렇게 몇 년 더 작업하다 집 안이 가득 차면 어떻게 할 건가요? 이사를 염두에 두고 있나요?
다행히도 이 농가는 넓어서 아직 사용하지 않은 방과 공간이 많아요. 그래서 당분간은 더 많은 작품으로 집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작업에 좀 더 몰두하면서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봐야겠어요. 이사보다는 집을 더욱 창의적인 갤러리로 변신시키는 쪽이 더 매력적일지도 모르죠.
당신의 행복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코바늘뜨기예요. 농담이 아니에요. 코바늘뜨기는 저에게 일이라기보다 평화와 균형, 그리고 사색의 시간을 선사해요. 행복을 느끼는 데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더 큰 행복을 기대하는 마음이에요. 어떤 일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편한 세상이 돼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런 예술 작업을 통해 행복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털어내는 셈이네요?
헤르만 헤세가 이런 말을 했죠. “그대가 행복을 추구하는 한 그대는 언제까지나 행복해지지 못한다. 그러니 소망을 단념하고 목표와 욕망을 잊어버리고 행복을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평화를 찾을 수 있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그냥 받아들이세요.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질 수 있어요. 겁에 질려 주저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좋아하는 일에 깊이 몰두하려고 노력하세요.
Text | Anna Gye
Photos | Paola ColombariGallery, Alicja T. Agency (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