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 옆에 가족 도서관 둔 공예 디자이너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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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옆에 가족 도서관 둔 공예 디자이너의 집

공예 디자이너 스티븐 벅스

우리는 단 한 번의 클릭으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정보의 조각을 만난다. 그러나 그 조각들이 어떻게 얽히고설켜 있는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지를 깨닫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물들이 맥락을 잃고 흩어지는 순간, 우리는 그것들이 하나의 커다란 지적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을 잊고 만다.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디자이너 스티븐 벅스는 이러한 세상의 단절된 정보를 넘어 자신의 도서관에서 고요하게 책과 책 사이를 넘나든다.




(왼쪽부터) 공예 디자이너 스티븐 벅스, 그와 함께 일과 삶을 공유하는 파트너 말리카 레이퍼



디자이너 스티븐 벅스스티븐 벅스 맨 메이드Stephen Burks Man Made’(stephenburksmanmade.com)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파트너 말리카 레이퍼Malika Leiper, 아들 안와르Anwar와 함께 살고 있다. 그를 만나러 갔을 때는 마침 그가 스웨덴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브루노 마트손Bruno Mathsson 레지던시 수상자로 선정되어, 그가 설계한 집에서 6주간 머물다 온 것이다. 10개국이 넘는 나라, 6개 대륙 장인들과 협력해 공예 작품을 선보여온 그에게 이번 스웨덴 체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스웨덴 목재 장인과의 협업과 노르딕 건축을 직접 체험한 시간은 그에게 또 다른 의미로 남아 있다.


벅스는 그곳에서 가져온 책, 오브제, 메모를 자신의 집 1층 가족 도서관에 조심스럽게 놓아두었다. 그의 집은 과거 빵집이었던 건물을 복층으로 개조한 곳이다. 1층 침실 옆에 위치한 도서관은 책장으로 빽빽이 채워져 있어 마치 책으로 이루어진 작은 도시 같다. 벅스가 이탈리아 디자인에 관한 잡지를 넘기다 갑자기 생각난 듯 옆 책장에서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에 대한 책을 꺼낸다. 그는 이탈리아의 급진 디자인 운동에 대한 호기심으로 곧 10권이 넘는 책을 꺼내고, 구체적인 정보를 찾아 책장 사이를 헤맨다.


우리가 궁금한 것이 생길 때 핸드폰으로 검색하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다. 그러나 검색 결과는 종종 정보의 파편 속에서 길을 잃고 중요한 본질을 놓치기 일쑤다. 독서는 결론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독서는 의도치 않은 경로를 따라가며 예상치 못한 지식을 만나고, 상상의 여정을 떠나는 과정이다. 그래서 도서관의 책들은 알파벳 순서로도, 주제별로도 정리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무작위로, 의식의 흐름대로 놓여 있어 뜻밖의 발견으로 이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갑자기 마음을 끄는 문장이 나타나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지도가 점점 넓어진다. 이곳에서 그는 나무 대신 숲을 보는 시야를 터득하면서 사물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아의식 또한 확장된다. 그렇게 그는 책 사이에서 잠을 이루고, 그 복잡한 세상의 이야기 속에서 평온을 찾는다.










1층 가장 좋은 자리에 책장이 놓여 있네요. 이 책들 다 읽었나요?

다 읽었다고 말하기는 좀 어려워요. 사실 대부분 읽다 말았죠. 그래서 책을 보기만 해도 너무 설레요. 저 책 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무슨 정보가 담겨 있을까. 그리고 이 책이 또 어떤 멋진 책으로 나를 안내해줄까. 독서는 단순히 내용을 읽는 게 아니에요. 책을 통해 새로운 표지, 멋진 이미지, 기억에 남을 문장을 수집하는 거죠. 책장을 넘기는 순간조차도 새로운 영감이 되니까요. 사람들이 책을 다 읽으면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지만 저는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다 읽느냐가 아니라 그 책을 어떻게 맛보느냐에 달려 있거든요.


직접 디자인한호라이즌책장이 눈에 띄네요. 책을 수직으로 꽂았을 땐 몰랐는데, 가로로 눕혀두니까 책이 마치 예술 작품처럼 보여요.

맞아요. 이렇게 두면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의 책들이 서로 섞여서 아주 독특한 풍경을 이루어요. 우리 가족은 각기 다른 시기를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 배울 점도 많고, 이 책들이 저절로 서로의 생각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 이 사람이 요즘 이런 걸 읽고 있구나하고 말이죠. 이렇게 책장이 자연스럽게 합쳐지면 각자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대화로 이끌 수 있죠. 책과 책 사이의 연결성도 이렇게 쉽게 파악할 수 있죠. 호라이즌 선반은 단순한 책장이 아니에요. 창가 진열대이자 선반이자 파티션 역할을 하는 구조로 공간에 따라 높이와 넓이를 직접 구성할 수 있어요. 연구해봤더니 책들 사이에 5cm 정도 간격을 두면 98%의 책을 이런 방식으로 진열할 수 있더라고요.


요즘 읽고 있는 책 세 권을 소개해주세요.

첫 번째 책은 이사벨 윌커슨Isabel Wilkerson 예요. ‘미국 대이동(great migration)’에 관한 이야기인데, 최근 <뉴욕 타임스> 21세기 최고의 책 중 하나로 꼽았어요. 두 번째는 타네히시 코츠Ta-Nehisi Coates <The Message>인데, 아직 초반부만 읽었지만 그의 글에 푹 빠져들었어요. 그의 말투가 너무 매력적이에요. 마지막은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의 회고집이에요. 그가 대리석과 나무를 사용하는 방식이 제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줘서 정말 즐겨 읽고 있어요. 저는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았어요. 집에 책이 1000권 이상 있는데, 책이란 그 자체로 뇌를 확장시켜주는 아름다운 오브제 같아요.












Photographer : Brandon Forrest Frederick



책 말고도 집 안에 다양한 수집품이 있네요. 이건 다 어떤 물건인가요?

주로 제 작품과 관련된 것이 많아요. 저는 단순히 도면만 그리는 게 아니라 제작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거든요. 집 안에 있는 물건 대부분이 장인의 손길을 기다리거나 실험 단계에 있는 것들이에요. 예컨대 의자는 전부 자연산 야자잎 섬유로 만든 거예요. 나무에서 섬유를 직접 뽑아내서 손으로 찢고 물에 적셔서 비틀어 하나하나 엮었죠. 설명서도 없어요. 오직 손과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가장 아끼는 작품은 열아홉 살 된 아들이 어릴 때 만든 예술 작품들이에요. 지금은 천체물리학자가 되려고 공부 중이지만 그림 그리기를 정말 좋아했어요. 어릴 때 만든 작품들이 아직도 집 안 곳곳에 걸려 있어서 우리 집만의 특별한 느낌을 만들어줘요. 우리 집 자체가 스티븐 벅스 맨 메이드인 셈이죠.


전 세계 수공예 커뮤니티와 협업하며 그들의 고유한 기술을 디자인에 도입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철학은 아주 간단해요. ‘모두가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해요. 우리 모두 꿈을 꾸고, 주변 환경과 소통하고, 교육 수준이나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우리가 사는 환경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힐 수 있다고 믿어요. 20세기 유럽에서는 디자이너가 독창적인 천재처럼 여겨졌고, 사회와의 대화보다는 자신만의 목소리에 집중했죠.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공예의 전통이 중요한 시대가 왔어요. 전통을 단순한 영감의 원천으로 보는 게 아니라 협력자로 생각해요. 주류 디자인과 이 전통적인 지혜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것, 그것이 바로 21세기 디자인의 새로운 접근법을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어요.


스웨덴의 브루노 마트손 레지던시에서 지냈다고요. 유명한 디자이너가 살았던 집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브루노 마트손 레지던시의 목표는 국제적인 디자이너들이 스웨덴으로 와서 현지 산업과 연결되며 그의 유산을 발전시키는 거예요. 처음부터 브루노와 저희가 비슷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손을 통해 이루는 산업, 즉 공예를 중심에 둔 철학이죠. 그의 가구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가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고 스웨덴에 모더니스트 유리 하우스를 소개한 인물이라는 건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저희는 베르나모Värnamo에 있는, 브루노가 1955년에 설계한 집에서 6주 동안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지내면서 브루노의 건축적 비전과 자연과의 조화를 직접 경험했어요. 편안함과 기능성을 중시하는 그의 인체 공학적 가구는 정말 감동적이었죠.


브루노 마트손의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요?

집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브루노의 일상적인 의식, 특히 그가 먹던 음식을 통해 더 깊이 연결되려고 노력했죠. 당시 브루노의 생활 방식은 정말 전위적이었어요. 주로 생식을 하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어요. 심지어 대부분의 시간을 야외에서 자며 보냈고, 1950년대부터 이미 조깅을 했다니, 혁신적이었죠. 그처럼 자연과의 연결을 중시하는 삶이 가구와 건축으로도 이어진다는 점이 우리에게 큰 인상을 남겼어요. 이 개념은 오늘날에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진정 소중한 것은

내 집이 아니라 타인의

집 지붕 아래에서

발견된다는 거예요.

집을 떠나는 것이

때론 더 의미 있고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어요.”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면서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저와 제 파트너 말리카는 완전 유목민 생활을 하고 있어요. 팬데믹 이후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죠. 집이란 결국, 함께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이잖아요. 전 세계에 친구와 가족이 많아서, 말리카와 아들과 함께라면 어디서든 집이라고 느낄 수 있어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도 많이 배웠어요. 가장 큰 깨달음은, 진정 소중한 것은 내 집이 아니라 타인의 집 지붕 아래에서 발견된다는 거예요. 집을 떠나는 것이 때론 더 의미 있고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죠.


그렇다면 본인에게 집이란 어떤 공간인가요?

집은 그 자체로 프로젝트 같아요. 가족이 변화하면 집도 변화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무엇이 가능할지 상상하면서 변화하는 공간. 항상 미완성인 공간.


예술가들이 일정 기간 동안 당신의 집에 머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초대하고 싶은 예술가가 있나요?

친구인 시스터 게이츠Theaster Gates페드로 레예스Pedro Reyes와 집을 바꿔서 타인으로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제가 그들의 집에서 지낸다면, 어떤 풍경 속에서 그들의 영감이 탄생하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거예요. 집을 바꾸어 살아보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될 테니,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거예요. 게다가 두 예술가는 평범하지 않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의 독창적인 세계에 잠시라도 들어가볼 수 있다면 새로운 창의력의 불꽃이 튈지도 몰라요.



Text | Anna Gye

Photos | Matthew Williams, Stephen Bu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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