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이든 고장 났지만 버리지 못한 물건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어서 혹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용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똑같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수리상점 곰손은 스스로 수리하는 법을 알려주고, 그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까지 넓혀준다.
고장 난 물건을 고쳐서 사용하기보다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익숙한 시대. 서울 망원시장 골목길에 있는 ‘수리상점 곰손’은 스스로 물건을 수리하고 수선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구멍이 뚫리거나 찢어진 옷을 수선하는 방법, 떨어진 경첩을 다는 방법 등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수리부터 아이폰 배터리 교체와 같은 고난도(로 보이지만 사실은 간단한) 기술까지. 수리상점 곰손에 오면 세상에 못 고치는 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수리상점 곰손은 수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배우는 곳이에요. 처음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곰손은 곰손지기 6명(금자, 깡, 무민, 밍키, 성연, 혜몽)이 운영하는 곳이에요. 저희는 망원시장의 일회용품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제로 웨이스트 숍 ‘알맹상점’에서 독서 모임도 함께 했어요. 그때 <리페어컬처>라는 책을 읽었는데, 한국에도 이렇게 수리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에 힘을 합쳐 곰손을 결성했죠.
곰손지기는 수리상점 곰손 운영뿐 아니라 수리 워크숍을 직접 진행하더라고요.
곰손지기는 수리와 수선 분야로 나뉘어요. 수리 팀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간단한 수리 워크숍을, 수선 팀은 바느질, 재봉틀 사용법 같은 수선 워크숍을 진행해요. 유용한 워크숍을 위해 직접 수리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요.
수리 기술을 배우면서까지 수리상점 곰손을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리 문화를 전파하려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간단한 수리 기술을 가르쳐주는 곳이 주변에 없더라고요. 또 수리는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있었고요. 그런데 곰손지기들도 전문가가 아니거든요. 다만 먼저 용기를 내서 시작한 것뿐이에요. 곰손을 결성한 후 아이폰 배터리 교체 워크숍을 열었는데, 공고가 나가자마자 정원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많았어요. 수리와 수선에 관심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많은데 그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고 우리가 해보자고 생각한 거죠.
이곳에 들어오면서 ‘일회용품 출입 금지’라는 푯말을 봤어요. 혹 수리상점 곰손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나요?
규칙은 아니고, 곰손을 시작하면서 세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첫째,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쓰레기 발생을 막는다. 둘째, 전문적 기술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나누는 공간이 되자. 셋째, 다른 생명을 해하거나 다양성을 해치는 프로그램은 최대한 지양하자.
아이폰, 우산, 자전거 수리법을 알려주거나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는 수선법 등에 관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더라고요.
수업 아이디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개인의 고민에서 시작해요. 우산 수리 워크숍은 우산을 수리하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도 수리해주는 곳이 없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복지센터에서 우산 수리 수업을 하는 선생님을 힘들게 찾아내 진행했죠. 그런데 한 번으로 끝내기가 아쉬워서 4주간 우산 수리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우산 수리 양성 과정’을 개설했어요. 워크숍 참여자가 아이디어를 줄 때도 있고, 공익 활동을 하는 분들과 협업해서 워크숍, 전시, 강연을 열기도 해요. 지금은 여러 가지를 실험하면서 좋은 방법을 찾아가고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가장 인기 있는 워크숍은 무엇인가요?
우산 수리 워크숍도 인기인데, 한번은 우산 수리를 맡기러 대구에서 오셨어요. 사연을 들어보니까 우산을 수리하고 싶은데 주변에 수리하는 곳이 없고, 겨우 찾았더니 신청 마감이 되어서 서울 올라온 김에 수리상점 곰손을 찾아오신 거예요. 이처럼 사람들은 수리해서 쓰고 싶어 하는데 주변에 수리하는 곳이 없는 거예요. 앞으로 저희처럼 생활 기술을 가진 곰손이 늘어나 지역 곳곳에 수리하는 곳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워크숍 참가자 연령대가 궁금해요. 주로 어떤 분들이 오나요?
주로 20~40대 여성들이 참여하는데, 한 그룹은 알맹상점을 이용하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고, 다른 그룹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수리 기술이 궁금한데 혼자서는 어려워하는 분들이에요. 신문이나 잡지에서 곰손에 대한 기사를 보고 찾아오는 어르신들도 있어요. 몇몇 분은 수리점인 줄 알고 오래된 물건을 들고 오세요. 그러면 정중하게 “여기는 기술을 배워서 스스로 수리할 수 있게 하는 곳입니다”라고 설명하죠.
수리를 배우러 오는 분들과 추억이 담긴 물건을 고치러 오는 분들 사이에 차이가 있나요?
평소에도 수리해서 물건을 사용하는 분들은 수리가 일상이기 때문에 감정의 고조가 크지 않죠. 일상에 또 다른 일상을 더하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사연과 추억이 담긴 물건을 수리하러 올 때는 무게감이 느껴져 더 집중해서 수리하게 돼요. 곰손에서 고치지 못하는 물건은 기부받아 재활용하는데, 첫 월급을 받아서 산 우산을 보내주신 분도 있어요. 의미 있는 물건이라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가치 있게 사용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우리에게 보내주셨어요. 그런 물건은 잘 분해해서 다른 물건을 만드는 데 사용해요.
저도 소중한 추억이 있어서 고장 나고 망가졌는데도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있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못 버리는 물건이 많죠. 소중한 물건이긴 하지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무용지물인 거예요. 하지만 재활용해 다른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면 새로운 쓸모가 생겨나는 거죠. 이처럼 고장 난 물건을 재활용하는 건 물건의 가치를 더 쓸모 있게 만들고, 추억마저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곰손이 그 역할을 하고 있고요.
수리상점 곰손이 추구하는 건 ‘셀프 수리’, 즉 고장 난 물건이 있으면 바로 공구를 들고 뚝딱하고 고치는 삶이다. 수리가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되는 것. 그래서 소비를 줄이고, 물건에 쓰임새를 계속 부여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 곰손이 생각하는 수리이고 수선이다.
곰손은 셀프 수리, 즉 스스로 물건을 고치는 삶을 추구하는데, 남에게 수리를 맡기는 것과 스스로 고치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요?
내가 스스로 수리한 물건은 사연이 깃드니까 특별한 물건이 되죠. 또 수리 과정을 겪으면 더 이상 그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게 되고, 나중에 고장 나면 내가 다시 수리하면 되니까 수명도 더 늘어나죠. 경제적, 환경적 이유 외에도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자기 효능감도 길러진다는 점에서 셀프 수리는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촉박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셀프 수리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 거죠.
수리는 사람의 심리에도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군요.
또 다른 이점은 수리와 수선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그를 바탕으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에요. 워크숍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도 엄청 가까워지고, 어떤 사람들은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해볼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도 해요. 이제까지 몰랐던 사람들이 우산 수리 워크숍으로 만나서 함께 배우다가 따로 공동체를 만들기도 하고,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기도 해요. 우리 곰손지기들이 보고 싶었던 모습이에요.
“수리하기 힘든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해요”
수리가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는 셈이네요.
수리상점 곰손은 단순히 수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수리하기 힘든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해요. 이제 수리와 수선을 취미로 볼 것이 아니라 기업, 정책, 법률에서도 수리와 수선을 당연하게 여기고 권리를 지켜줘야 해요. 미국, 유럽에서는 10년 전부터 수리권을 요구하면서 서서히 바꿔나갔거든요. 우리나라는 내년 1월부터 관련 법규가 시행되지만, 내용이 부실해서 수리권을 보장할 조건이 마련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유럽과 미국의 법 내용을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해서 국가에 제안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혼자 수리해보려고 해도 분해조차 안 되는 제품이 많더라고요.
셀프 수리를 하다 보면 제품들이 얼마나 수리하기 힘들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어요. 멀티탭 고장은 내부 스위치 부분만 살짝 손보면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분해가 안 되니까 수리를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버리고 새것을 사야 해요. 그래서 워크숍 할 때, 수리가 가능한 제품의 구조도 알려드려요. 그러면 나중에 물건을 살 때 수리가 가능한지 살펴볼 수 있고, 더 나아가 기업에 수리가 가능한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낼 수도 있으니까요.
셀프 수리가 어렵게 느껴지는 원인 중 하나는 다부지지 못한 손인 것 같아요. 괜히 잘못 건드려서 더 고장 내는 건 아닌지 걱정될 때가 있거든요.
저희는 금손이나 달인을 지향하지 않아요. 일상생활에서 자급자족하며 쓸모를 스스로 찾는 사람을 목표로 삼죠. 옛날에는 우산도 집에서 수리했고, 옷도 집에서 수선했잖아요. 엄청 복잡하거나 고난도의 수리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수리의 힘이 크네요.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잖아요.
수리라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확대해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리를 하게 되면 물건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관심을 두게 되고, 더 나아가 그 물건이 만들어지는 시스템과 물건을 만드는 사람까지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러한 태도는 환경을 지키고 검소한 생활을 지향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곰손이 전파사와 차별되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에요. 단순히 물건을 고치고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서툴고 느리더라도 수리라는 행위를 통해 자연, 세상, 공동체를 한번 돌아보고 나 자신의 자존감까지 높일 수 있다고 봐요.
본인도 수리를 통해 변한 부분이 있나요?
수리하면서 세상의 숨은 고수들을 존경하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에게 눈이 갔다면 지금은 상처 나고 고장 난 것들을 고치는 손을 가진 분, 우리 주변의 고수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앞으로는 그분들이 더 존경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해요. 기계가 뭐든지 다 해주는 세상이 되다 보니 대부분 자기 몸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수리는 자기 몸을 움직여야 하거든요. 그래서 수리하다 보면 세상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는 삶의 나침반이 생기는 것 같아요.
Text | Young-Eun Heo
Photos | Este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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