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며 동서로 나뉜 역사를 따라 서로 다른 건축 풍경을 빚어냈다. 서베를린은 이상적인 알트바우 아파트와 여유로운 공원을 선보인 반면, 동베를린은 플라텐바우라는 독특한 양식과 함께 도시 개발의 상징을 남겼다. 이런 건축적 다양성은 창조자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준다. 이러한 매력에 건축가 아기 쿠친스카는 베를린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창문을 내다보면 내 머리는 서베를린에, 엉덩이는 동베를린에 속해 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 베르나우어 슈트라세Bernauer Straße라는 거리에 살던 한 주민의 이 말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다. 베를린이 품은 분열과 갈등, 그리고 역사의 잔상을 생생히 드러내는 증언이다. 동서 베를린의 접경 지대였던 이 거리의 아파트에서는 건물은 동베를린에 속해 있으나 창문 밖으로는 서베를린이 보였다. 동독인이 서베를린 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밧줄을 타고 내려가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이곳의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건축가 아기 쿠친스카Agi Kuczynska는 과거의 시간을 느끼며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쿠친스카는 바르샤바 공과대학교와 밀라노 공과대학교를 졸업한 후 스톡홀름을 비롯해 유럽 곳곳에서 건축 현장을 누비며 경력을 쌓았다. 그녀가 베를린 미테를 새로운 보금자리로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 도시는 과거와 현재가 한데 얽히며 끊임없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에너지가 넘쳤기 때문이다. 다국적 사람들이 뒤섞여 자유롭게 일하고 살아가는 이곳의 활력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베를린은 도시 자체가 건축 박물관 같다. 서쪽에는 19세기 말부터 1930년대 사이에 지은, 높은 천장과 원목 마루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우아함을 간직한 알트바우Altbau가, 동쪽에는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 사회주의 시대의 흔적이 담긴 플라텐바우Plattenbau가 존재한다. 거기에 실용성을 중시한 현대적인 노이바우Neubau와 공장, 병원, 행정 건물을 개조한 로프트형 아파트까지, 베를린의 건축은 시대와 이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때 동베를린의 플라텐바우는 회색 도시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기피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과거의 무게를 품은 채 독특한 역사적 스토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작가 제시 사이먼Jesse Simon은 이러한 플라텐바우의 매력을 사진으로 기록해 베를린의 또 다른 얼굴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쿠친스카 역시 몰개성적이라 여겼던 동부의 이런 아파트에서 가능성을 엿보았다. 그녀에게 이것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베를린에서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에요." 그녀의 말처럼 베를린은 오래된 시간의 상흔과 창조적 열망이 맞물리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도시다. 그녀는 그 한가운데에서 벽과 벽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고 있다.
건축과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며 바르샤바와 밀라노에서 학위를 받고 스톡홀름, 파리 등 여러 도시에서 경력을 쌓다 독일 베를린에 정착했어요. 베를린을 최종 목적지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유를 찾아서 왔어요. 베를린은 사람들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시거든요. 이를테면 한여름에 호숫가에서 나체로 수영하는 사람과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에서 도시의 개방적인 문화를 느낄 수 있죠. 누구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곳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이런 자유는 20세기의 가장 큰 갈등과 상처를 억지로 복구하지 않고, 오히려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베를린은 역사를 기억하고 성찰하면서도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시라고 할 수 있어요. 빈곤, 이주민 문제, 대안 운동 같은 사회적 갈등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함을 포용하는 도시는 드물죠.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 자유, 그리고 자기표현에 대한 열정으로 특별한 매력을 발산하는 곳으로,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로 도시를 즐길 수 있어요. 이런 분위기가 딸아이에게도 큰 교육이 될 거라고 확신했어요. 또 베를린은 바르샤바와 가까워 친구와 가족과의 유대를 이어가면서도 다문화적 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완벽한 장소였죠.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전 베를린 시장은 당시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라는 구호를 내세웠어요. 그런데 이제는 높은 임대료와 물가 때문에 이 말도 과거형이 되었다고 해요.
맞아요. 냉정히 보면 베를린에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요. 그럼에도 과거 유럽의 허브 역할을 했던 런던과 비교하면 베를린은 여전히 서유럽에서 경제적으로 살기 좋은 도시입니다. 런던은 정말 부유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는 곳이지만, 베를린에서는 많은 돈이 없어도 충분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죠. 올해 베를린 캠페인도 도시의 이런 아이러니를 유쾌한 농담과 자부심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예를 들어 “오늘 파리와 밀라노에서 유행하는 건 어제 바르샤우어 거리에서 이미 보았던 패션이다”라는 식으로요.(웃음) 베를린을 여전히 섹시하게 만드는 것은 개방적인 사람들 덕분입니다. 그들이 이곳에 거주하는 한 베를린은 창조의 중심지로 남을 거예요. 영어와 폴란드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행정적 절차와 언어 장벽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어요. 그럼에도 저는 이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매일 새로운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저를 끊임없이 성장하게 만드는 특별한 곳입니다. 에너지만 있다면 하루 안에 밤새 파티를 즐기고, 예술영화 상영에 참석하며, 전기차를 공유하고, 환경 시위에도 참여할 수 있는 곳이죠. 베를린은 이렇게 다채로운 가능성을 품고, 저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듭니다.
주거 공간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방문했을 때 베를린의 주거 공간에서 다소 획일적이고 경직된 느낌이 들었어요.
건축물만 놓고 보면 다소 획일적이고 실용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욕실, 벽, 바닥 등의 마감재를 미리 선정해서 짓기 때문에 차후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개입할 여지가 제한적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도시의 오래된 건물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전쟁 이전에 지은 역사적 건물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담아낸 캔버스 같아요. 손길이 닿지 않은 오래된 마루, 수십 년을 버틴 벽돌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죠. 이런 공간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업 대상입니다. 오래된 건물은 종종 예기치 못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곤 하는데, 저는 이런 도전 속에서 더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나가며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런 점에서 베를린은 마치 이런 작업을 위해 존재하는 도시처럼 느껴집니다. 베를린은 제가 사랑하는 건축적 도전과 창의적인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완벽한 무대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생활한 경험에 비추어 독일만의 독특한 인테리어 스타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베를린에서는 독일 고유의 스타일을 따르는 경우가 거의 없어 특정한 스타일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본질적으로 기능성과 단순함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실용성을 중심으로 한 철학이 디자인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우하우스 운동에서 시작된 이러한 전통은 미스 반데어로에의 건축에서 그 정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독일 디자인은 내구성을 중시합니다. 여기서 내구성이란 단순히 물리적 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머무르고, 그것이 얼마나 삶의 일부로 스며드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의 미니멀리즘이나 이탈리아의 화려함과는 결이 또 다른 독일 디자인은 그 단순함 속에서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녹아드는 힘이 있습니다. 바우하우스는 1920년대에 독일에서 시작되었으며, 전쟁으로 디자이너들이 덴마크로 이동하며 영향을 주었죠. 아르네 야콥센, 폴 헤닝센 같은 디자이너들이 바우하우스 스타일에 기반한 덴마크 모던 스타일을 발전시켰어요.
주택이 아닌, 베를린 중심 지역인 미테의 오래된 아파트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역사적으로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여러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영향을 받으며 독특한 도시 경관을 형성해왔습니다. 베를린의 거리를 걷다 보면 거리마다 각기 다른 유럽 시대의 건축양식과 그 영향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러한 다양성은 베를린에서 주택의 유형과 건물의 특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히 가격, 유행 또는 투자 가치를 고려하기보다는 역사적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테 지역을 선택했어요. 과거에는 분단의 상징이었던 이곳이 지금은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활기 넘치는 다문화 지역으로 변모했습니다. 저는 매일 이 지역을 산책하며 과거의 아픔이 어떻게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지를 느낍니다. 베를린의 복잡한 역사와 다층적 정체성을 매일 경험하는 장소이기 때문이에요. 또한 이는 제 고향인 바르샤바와도 닮았습니다. 전쟁과 상처를 극복하고 재건한 도시라는 점에서 베를린과 바르샤바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집니다. 이 아파트는 제가 두 도시를 연결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죠.
리모델링 과정은 어떻게 진행했나요?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2009년에 소규모로 개발한 건물로, 각 층에 세대가 단 하나만 있는 구조였습니다. 프라이버시가 완벽히 보장된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죠. 그런데 급하게 이사해야 했기 때문에 제가 꿈꾸던 전면적인 리모델링은 할 수 없었고 표면적인 변화만 줄 수밖에 없었어요. 먼저 오래된 바닥 표면을 갈아 거친 나뭇결이 드러나게 했습니다. 모든 작업은 빠른 시간 안에 최대한 변화를 주도록 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제 머릿속에 있는 큰 비전을 지금 당장 실현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을 천천히 완성해가는 과정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5년 후 이 아파트는 지금의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캔버스가 될 거라 믿어요. 리모델링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변화를 넘어, 공간에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쏟아 의미를 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다림과 과정조차도 저에게는 한 편의 소설 같아요. 그 이야기는 매일 조금씩 쓰이고 있죠.
이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스테인리스 스틸 주방입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미니멀하고 순수한 미학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저는 작은 디테일이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믿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주방은 이런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에요. 특히 재생 코르크 소재로 만든 선반은 차가운 금속에 따스한 감성을 더하며, 주방을 단순히 기능적인 공간을 넘어 집의 중심으로 만들어줍니다. 복도는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공간으로 추억과 영화적 영감이 가득한 무대 같은 곳이에요. 옷장은 제가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 “서스페리아”에서 영감을 받아 직접 제작한 것으로, 제 삶과 작업이 스며든 디테일을 담고 있습니다. 방으로 향하는 복도 한쪽 벽에는 아티스트 야체크 코로지예프스키Jacek Kołodziejski의 작품이 걸려 있는데, 그 작품은 제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죠.
곳곳에 보이는 디자인 가구, 조명, 소품도 인상적입니다. 중요한 컬렉션 몇 가지만 소개해주세요.
거실에 놓인 르코르뷔지에의 클래식한 셰즈 롱을 정말 좋아해요. 천장에는 루이스폴센의 PH5 램프 한정판이 매달려 있죠. 침실 옆에는 창작과 업무를 수행하는 홈 오피스 공간이 있는데, 찰스&레이 임스 데스크와 비트라 의자가 놓여 있어요. 저와 함께 전 유럽을 다닌 동반자 같은 가구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프라마 책상 조명은 무드를 더해주고요.
"베를린에서 주택을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이 도시와 우리의 삶이 연결되는 특별한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39%만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독일에서 주택 소유가 많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독일에서 주택 소유가 적은 이유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합니다. 베를린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태어난 도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이고 저렴한 임대주택의 안전망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이런 흐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독일의 법적 구조는 임차인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두어 굳이 주택을 소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주택 소유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폴란드에서 자랐는데 폴란드는 주택 소유가 삶의 기본이라는 문화가 있어요. 폴란드에서는 87%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죠. 저와 남편은 처음부터 우리만의 공간을 가지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우리에게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가지는 것 이상을 의미입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캔버스를 얻는 일이자, 그 공간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꾸미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자유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고 있어요. 베를린에서 주택을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이 도시와 우리의 삶이 연결되는 특별한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이 아파트는 우리 가족이 베를린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요즘 주력하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시그너처 홈 액세서리와 조명 컬렉션 개발 작업에도 몰두하고 있어요.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쌓아온 디자인 철학을 작고 일상적인 사물에 담아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빛의 방향과 질감을 조절할 수 있는 조명을 설계하고 있는데, 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기능을 넘어 사람의 기분과 공간의 분위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이런 작은 물건 하나하나에 감각과 정서를 담아내는 작업은 제게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집이란 공간을 형성하는 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나요?
향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소나무 향은 어린 시절의 숲과 여름을 떠올리게 하고, 신선한 나무와 시멘트 냄새는 부모님이 집을 리모델링하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게 합니다. 요리는 집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입니다. 제가 살아온 폴란드, 이탈리아, 스웨덴에서 영감을 받은 음식은 단순히 한 끼 식사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과거의 추억을 현재로 끌어오고,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디자이너들과 비교해 당신만의 차별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고객과의 깊은 대화가 주축이 된다는 점이죠. 집은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캔버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프로젝트 첫 단계는 항상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고객의 취향, 삶의 방식,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공간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을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죠. 이렇게 모인 이야기는 스칸디나비아의 단순함과 이탈리아의 화려함이 조화를 이루는 제 디자인 철학 속에서 새롭게 탄생합니다.
오늘날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기술이나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가장 중요한 자질은 공감 능력입니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느끼고 싶어 하는지를 이해하고 구현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유연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동반합니다.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생기거나 직업의 변화로 공간에 다른 기능이 필요할 때, 디자이너는 그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한 디자인을 제안해야 하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베를린의 주거 공간은 어디인가요?
프라이 오토Frei Otto의 외코 하우스Öko Haus는 지속 가능성과 맞춤형 설계를 기반으로 한 사회 주택의 모범적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환경과 인간의 조화를 탐구하는 실험적인 공간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공공 녹지를 입체적인 정원 도시로 활용한다는 개념은 마치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융합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브란틀후버Brandlhuber의 테라센하우스Terrassenhaus와 브루넨슈트라세 9Brunnenstrasse 9 같은 프로젝트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브루탈리즘의 견고한 미학 속에서도 섬세한 디테일이 살아 숨 쉬는 이런 건물은 단순히 보기 좋은 구조를 넘어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살아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어요.
Text | Anna Gye
Photos | Nate Cook by Alicja T.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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