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죽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영국 런던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워크숍을 운영하는 찰리 보로는 이에 대해 단호하다. 수백 년 전통을 가진 영국 가죽 장인들은 화학 성분 대신 자연에서 얻은 천연 타닌을 이용해 가죽을 무두질한다. 또한 지역에서 확보한 가죽을 사용함으로써 불필요한 운송을 줄이고, 전통적인 제작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을 실현한다.
바운더리 에스테이트Boundary Estate(런던 이스트엔드의 타워 햄릿 자치구에 위치한 주택 개발 단지)의 목가적 풍경과 콜롬비아 로드Columbia Road의 활기찬 거리가 만나는 곳. 오랜 시간 가구 제작자와 가죽공예가들이 모여 있는 이 동네 한가운데, 가죽 장인 찰리 보로Charlie Borrow가 운영하는 워크숍이 자리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깊고 진한 가죽 향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갓 손질한 가죽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흙 내음, 태닝 가죽이 은은하게 머금은 따뜻한 나무 향, 그리고 세월이 깃든 가죽에서만 느껴지는 깊고 기름진 향이 뒤섞인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이곳에서는 공기마저 묵직하다.
영국 브라이턴 출신의 찰리 보로는 작은 방에서 취미 삼아 가죽 소품을 만들며 가죽공예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영국 전역의 방직 공장, 무두질 공장, 주물 공장을 찾아다니며 전통 제작 방식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더 깊이 있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가죽 장인 제이슨 암스버리Jason Amsbury 밑에서 수련하며 본격적으로 가죽 장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2013년 마침내 공방을 열었다. 작업실이 위치한 지역은 소규모 제조업의 역사가 오래된 동네지만 지금은 제조업자 대부분이 떠나고 몇몇 가죽 공방만이 남아 있다. 소규모 업체들이 존재해야 주거 공간으로 변하지 않고 역사가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과 신념 때문에 찰리 보로는 일부러 이 동네의 가장 오래된 건물을 찾았다. 그리고 세월 속에 잊힌 디테일을 교회 또는 같은 시대에 지은 건물에서 가져온 가구와 조명으로 하나둘 복원했다.
런던에서 패션과 섬유 테일러링을 전공했지만 대학을 그만두고 폴스미스 매장에서 일하며 가죽공예의 길을 걷게 됐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구조를 연구하고, 조립하고, 분해하고. 그런 게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보니 기대했던 것과는 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중퇴하고 폴스미스 정장 부서에서 일하기 시작했죠. 언젠가 디자인 팀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덕분에 유명인 고객들의 피팅을 맡기도 했지만, 사실 제 관심은 늘 ‘어떻게 만들어지나’였어요. 그러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제 방에서 동료들의 맞춤옷을 만들어주기 시작했죠. 어머니 생일 선물로 큰 가죽 토트백을 만든 게 계기가 돼서 가죽 소품 컬렉션을 만들어 동료들에게 팔고, 그게 자연스럽게 사업으로 이어졌어요. 처음부터 브랜드를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만드는 게 좋았을 뿐이죠.
패션 테일러링과 가죽공예는 어떤 공통점 또는 차이점이 있을까요?
둘 다 손바느질이 중요하고, 섬세한 디테일과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죠. 하지만 서로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에요. 특히 가죽공예는 소재 자체가 단단해서 다루는 데 꽤 많은 힘이 필요해요. 그래서 작업할 때 온몸을 써야 하죠. 기술적으로 보면 오히려 목공에 더 가까운 느낌이에요.
처음 소유한 가죽 제품은 뭐였나요? 그 이야기를 좀 자세히 들려줄 수 있나요?
열다섯 살 때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첫 월급으로 눈여겨봤던 영국산 부츠를 샀어요. 그때의 뿌듯함이란…,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자주 신지는 않지만 작업실 한쪽에 걸어두고, 볼 때마다 가죽 제품을 처음 접했던 순간과 그때의 설렘을 떠올리곤 해요.
처음부터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특정한 제품, 소재, 스타일이 있었나요?
명확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직접 제작하고 가능하면 영국산 소재를 사용한다는 거였어요.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저에게 가장 중요했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디자인이 변했고, 브랜드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졌어요. 끝까지 변하지 않은 핵심은 하나예요. 좋은 가죽으로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
찰리 보로 워크숍에서 탄생하는 가죽 제품은 기계가 아닌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영국과 인근 국가 지역의 숙련된 장인들이 전통 방식 그대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제작하며, 견고한 마감과 섬세한 디테일을 더한다. 묵직한 소재와 노동 집약적인 제작 방식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의 작업 방식을 ‘구식’이라 평가하기도 하지만, 찰리 보로는, 이는 제품의 내구성을 높이고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가치를 부여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소재’다. 그는 ‘진정한 가죽공예는 소재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가죽의 특성이야말로 형태, 컬러, 질감, 디자인 그 자체라고 강조한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따르거나 시즌이 지난 제품을 할인 판매할 필요도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더 나은 소재를 발견할 때마다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발전하며, 이를 위해 제작 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샘플을 완성한다. 첫 번째 샘플을 완벽한 상태로 제작할 수 있도록 개발 과정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원하는 색상과 소재를 선택할 수 있으며, 핸들 길이 또는 포켓 구성을 조정하는 등 맞춤 제작도 가능하다. 또한 그의 제품을 구입하면 평생 수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가죽공예를 단순한 소비가 아닌 오랜 시간 함께하는 경험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찰리 보로의 철학이다.
단골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들은 주로 어떤 점을 좋아하나요?
고객들은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고, 거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작업실과 매장을 개방된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단순히 진열된 제품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와 가죽을 직접 만져보고 원단을 살펴볼 수 있도록요. 어떤 고객은 기존 디자인을 살짝 조정해 맞춤 제작을 원하고, 또 어떤 고객은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함께 만들어가길 원해요. 고객이 제작 과정의 일부가 될 때, 그 제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이게 바로 제 브랜드만의 차별점이자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이죠.
매장 인테리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이런 스타일로 해야겠다고 정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동안 모아온 물건과 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면서 공간을 만들어갔죠. 저는 ‘살아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너무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보다는 사람들이 들어왔을 때 마치 오래 알고 지낸 곳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그래서 작업실에는 세월이 묻어나는 나무 가구가 많아요. 오래 사용하면서 생긴 흠집이나 마모된 흔적이 공간을 더 진정성 있게 만들어주죠. 다행히 건물 자체의 분위기가 좋았어요. 오래된 나무 바닥과 균형 잡힌 천장 구조 덕분에 클래식한 느낌이 살아 있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 디테일은 교회나 비슷한 시대에 지은 건물에서 가져온 가구와 조명으로 복원했어요.
작업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구나 제작 과정이 있을까요?
손바느질을 좋아해요. 기계 바느질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지만, 손바느질은 더 단단하고 내구성도 뛰어나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죠. 가끔 제 안의 사업가가 “이봐, 재봉틀 좀 쓰라고!” 하고 소리치지만, 손바느질의 만족감을 이길 순 없어요. 예를 들어 제가 만드는 홀컷 토트wholecut tote 가방은 기계를 사용하면 반나절이면 완성되지만, 손바느질로 하면 하루 종일 걸려요. 하지만 정성과 시간이 들어간 만큼 더 탄탄하고 특별한 가방이 되죠. 방식에 따라 가격도 달라지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가벼운 가죽을 사용한 기계 바느질 버전도 만들어요.
“그동안 모은 물건과 시장에서 발견한 것을 자연스럽게 배치해 살아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앤티크 가죽 제품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겠어요.
그럼요. 특히 영국과 유럽의 군용 가죽 제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군용 제품은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기능성이 뛰어나며, 무엇보다 내구성이 엄청나거든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제작한 가죽 제품은 장인 정신과 내구성의 정수를 보여줘요. 그런 물건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발견한 흥미로운 소재는 무엇인가요?
영국 군수업체에서 묵직하고 거친 질감이 매력적인 플랙스flax, 그리고 군용 텐트에 쓸 만큼 가볍고 튼튼한 립스탑ripstop 원단을 발견했어요. 이것을 일반 가죽과 섞어서 사용하면 기존에 없던 색다른 제품을 만들 수 있죠.
좋은 소재 다음으로 멋진 결과물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뭘까요?
디테일이죠. 가방 하나를 만든다고 해도 손잡이 길이, 본체 크기 등 비율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작은 차이가 쌓여서 제품의 균형을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가죽 제품, 가죽 장인에 대한 오해 중 바로잡고 싶은 것이 있나요?
비싼 가죽이면 무조건 품질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유명 브랜드 중에서도 저품질 가죽을 사용하면서도 비싼 가격을 매기는 경우가 많아요. 대량생산을 위해 가죽 표면을 강하게 가공해 매끈하게 만들고 두꺼운 페인트로 코팅한 다음 인위적인 텍스처를 입히는 식이죠. 이렇게 만든 가죽 제품은 구매한 날 가장 예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품질이 떨어져요. 반면 장인이 공을 들여 구매하는 이의 모습, 태도, 기호를 고려해 만든 제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멋스러워지고, 개성이 생기면서 소유자와 닮아가죠.
영국 사람들은 특히 가죽 제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영국에서는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동안 가죽을 만들어왔어요. 제가 협업하는 무두질 공장은 무려 1000년 동안 같은 부지에서 운영했고, 현재 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영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가죽을 생산하지만, 특히 두껍고 묵직한 가죽이 유명해요. 영국 소는 원래 가죽이 튼튼해서 안장, 가구, 신발 밑창, 여행용 가방 같은 내구성이 중요한 제품에 많이 사용하죠.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영국산 부츠일 거예요. 특히 영국 가죽 신발은 역사가 굉장히 오래되고 전 세계적으로도 수요가 많죠. 그래서 가죽 산업 규모는 예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가죽 장인이 중심이 되어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요. 그리고 이들은 단순한 가죽 메이커가 아니라,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제품을 완성하는 ‘레더스미스lathersmith(가죽 대장장이)’라 불러야 해요. 단순히 가죽을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가죽을 다듬고 바느질해 하나의 제품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사람이죠.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죽 산업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환경과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죽을 무조건 비판하는 건 가죽이라는 소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오직 인근 지역에서 나온 육류 산업의 부산물을 활용한 식물성 무두질 가죽만 사용합니다. 영국 데번 지역에 있는 타닌 가죽 가공 공장은 오크 껍질과 샘물만을 사용해 오크 바크 태닝oak bark tanning 가죽을 생산하죠. 화학물질은 전혀 들어가지 않아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가죽을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소재’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강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대량생산 가죽 가공 방식 때문이에요. 전통적인 방법으로 무두질한 가죽은 환경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아요. 또한 저는 불필요한 재고를 쌓아두지 않아요. 주문이 들어온 후 제작하는 방식을 고수하면서 원자재 낭비를 줄이고, 고객에게 맞춤 제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더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 믿습니다. 이렇게 하면 환경도 보호하고, 고객도 정확하게 원하는 제품을 얻을 수 있죠.
Text | Anna Gye
Photos | Kane Hu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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