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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도 집도 아닌 아트 컬렉터의 그곳

갤러리스트 아멜리 뒤 샬라르

파리에 이어 뉴욕에 새로운 예술적 거처를 마련한 아멜리 뒤 샬라르. 그녀의 ‘아멜리 메종 다르’는 갤러리도, 집도 아닌 예술과 디자인이 자연광처럼 투과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예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간과 어우러지고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다.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설치미술과 라이브 퍼포먼스, 창작 워크숍, 디너 파티 등 아트 컬렉터의 삶을 경험할 수 있다.




©Gaelle Le Boulicaut



프랑스 파리의 아침 9, 아멜리 뒤 샬라르Amélie du Chalard의 집은 변신을 시작한다. 아이들이 뛰놀던 공간은 갤러리스트 사무실이 되고, 가족이 대화를 나누던 거실은 아트 컬렉터의 수장고가 된다. 그녀의 집이자 일터인아멜리 메종 다르Amélie, Maison d’Art는 살림 사이사이에 회화,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150여 명 작가의 작품이 자리한다. 벽에 정갈하게 걸린 작품만이 아니라 계단 옆, 식탁 위, 소파 주변 등이 모두 작품으로 둘러싸여 있다. 작품들은 특정한 전시 공간에 갇혀 있지 않고 일상의 풍경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이곳에 찾아온 손님은 익숙한 갤러리의 틀을 벗어나 예술과 교감하는 새로운 방식을 경험한다. 벽에 갇히지 않은, 일상과 맞물리는 예술은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의 생각도 태도도 변화시킨다.


저희 집에 온 손님 중에는 미국 컬렉터들도 있었어요. 그들은 한결같이 갤러리의 도시 뉴욕에도 이런 공간은 없다고 말했죠.” 샬라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이자 예술가들에게 가장 역동적인 무대 중 하나인 뉴욕 소호 지역에 자신의 집처럼, 아트 컬렉터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에 문을 연 아멜리 메종 다르 뉴욕점은 갤러리가 모여 있는 거리가 아닌 주거 지역에 위치한다. 뉴욕 머서 스트리트Mercer St 85번지는 본래 예술가의 집이었다. 10년 이상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뉴욕 건축가 키스 번스Keith Burns와 파리에 기반을 둔 건축가 테스 왈라벤Tess Walraven, 니케 보그리네크Nike Vogrinec가 협력해 집도 갤러리도 아닌, 그 이상의 예술 감도를 지닌 새로운 개념의 예술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차분한 인상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본모습이 드러난다. 4.3m 높이의 천장 아래로 자연광이 쏟아지고,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가 벽과 바닥을 타고 흐르면서 그림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현관문을 열면 마주하는 벽에서는 아티스트 릴리 델라로크Lili Delaroque의 세라믹 조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몇 걸음 더 내디디면 디자이너 린데 프레이아 탕엘더르Linde Freya Tangelder 스튜디오(Destroyers/Builders)의 유려한 곡선 벤치에 이어 뉴욕 소호의 건축 유산을 상징하는 코린트식 기둥 구조의 거실이 나타난다. 작품 수장고는 아티스트 엘로이 슐츠Eloi Schultz가 조각한 나무 목재 문 너머에 있다. 작품을 걸 수 있도록 만든 맞춤 선반 레일, 아티스트와 협업해 만든 대리석 바닥,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황동 커튼은 예술이 어떻게 일상 속에 가볍게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이는 인테리어 요소뿐 아니라 전시 일부로 기능하며, 빛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며 공간 분위기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이곳에서 예술은 벽에 걸리거나 바닥에 놓이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빛나고, 흐르고, 공간과 함께 숨 쉬는 유기체로 자리한다.














All of the pictures above ©Gaelle Le Boulicaut



은행원으로 근무하다 갤러리스트가 되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어머니는 예술가였고 아버지는 미술 컬렉터였어요. 자연스럽게 예술과 함께 성장했지만 금융 전문가로 커리어를 시작했죠. 하지만 은행원으로 일하면서도 예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어요. 퇴근 후나 주말이면 갤러리를 찾고, 틈틈이 작품을 모았어요. 그런데 제 주변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도 많았지만 갤러리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왜 예술은 일부 사람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되어버렸을까, 갤러리는 왜 이렇게 차갑고 폐쇄적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어요. 그리고 결국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기로 했죠.


그것이 바로 자신의 집을 활짝 오픈한 것이었군요.

맞아요. 갤러리를 따로 만들기보다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을 활용하기로 했어요. 저희 집이야말로 아트 컬렉터 아카이브 그 자체이고, 집은 누구에게나 편안한 곳이잖아요. 부담 없이 드나들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님들은 단순히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공간과 어우러지는 순간을 경험하죠. 오후의 햇살이 닿은 캔버스, 음악이 흐르는 거실의 조각, 소파 옆에 놓인 드로잉 등 일상과 예술이 맞물린 풍경을 보는 사람들은 예술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고 집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어요.


갤러리는 특정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하고 교감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맞아요. 갤러리 문턱은 오히려 남의 집 담보다 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해요. “예술은 한 줌의 자연광처럼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존재다.” 빛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듯, 예술도 그렇게 감각과 생각을 확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예술 작품은 빛을 끌어들이려고 만든 작은 창과 같아요. 이런 철학이 결국 아멜리 메종 다르를 탄생시키고 국제적으로 확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이제 뉴욕점 이야기를 해보죠. 아멜리 메종 다르 파리점, 뉴욕점 모두 과거 예술가의 공간이었고 집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두 공간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뉴욕점은 1873년에 지은 370㎡ 규모의 스튜디오였어요. 오래된 선반, 철물점에서 사 온 체인이 매달린 메자닌 구조, 뉴욕 소호 지역만의 건축 디자인 역사를 대표하는 코린트식 기둥 등 독특한 요소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 흔적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집다운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파리점은 여러 개의 방이 연결된 구조라 조금 더 아늑한 느낌이 들지만 뉴욕점은 오픈된 로프트 스타일이라 탁 트인 개방감이 강해요. 같은 철학을 공유하지만 두 도시의 성격을 반영해 차별화했다고 볼 수 있죠.


큐레이션 측면에서는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요?

뉴욕점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인테리어와 순수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보통 미국의 파인 딜러들은 회화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도자나 조각 같은 장식 예술도 회화와 동등한 위치에서 소개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100여 명의 국제 예술가들과 협업하면서 건축적 요소와 영구적인 설치 작품을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여냈죠. 예를 들면 바닥에 대리석 모자이크 슬래브를 삽입하거나 릴리 데라로크의 세라믹 조각을 거대한 벽 일부로 제작하는 식이죠. 저는 이런 디테일이 공간을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작품처럼 만든다고 생각해요.








All of the pictures above ©Gaelle Le Boulicaut



개인적으로 당구대와 다이닝 공간이 마음이 들어요. 예술 작품이 과하지 않고 적당하면서 아늑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다이닝 룸도 단순한 기능적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곳으로 기능해요. , 바닥뿐 아니라 주방 가구 주변에도 작품을 전시할 수 있어요. 대형 테이블은 카운터와 동일한 고급 화강암으로 제작했고,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디너 파티를 열어요. 작품이 걸린 공간에서 식사하는 건 마치 예술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죠. 그리고 저녁이 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당구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당구를 치면서도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죠. 저는 이런 다층적 경험이야말로 예술이 일상 속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유럽 컬렉터와 다른, 미국 컬렉터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매달 일주일씩 뉴욕을 방문하면서 점점 더 흥미로운 차이점을 발견하고 있어요. 미국 컬렉터들은 작품을 직접 선택하기보다는 아트 어드바이저, 큐레이터, 인테리어 디자이너 같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작품을 선택할 때 훨씬 즉각적이에요. 유럽 컬렉터들은 오래 고민하고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국 컬렉터들은 한눈에 마음에 들면 바로 결정을 내리기도 해요. 직관적으로 작품과 연결되는 속도가 빠르다고 할까요.


뉴욕은 갤러리 간 경쟁이 치열한 예술의 중심지인데, 그 안에서 자리를 잡고 오래 운영하려면 어떤 점이 중요할까요?

뉴욕은 정말 경쟁이 치열한 도시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도시이기도 하죠. 그래서 차별화된 전략이 필수적인데 저는고객 경험을 핵심으로 봤어요. 저는 컬렉터에게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컬렉터가이 작품이 내 공간에서는 어떻게 보일까?’라고 자연스럽게 상상하도록 돕는 거죠. 그래서 작품 설치뿐 아니라 작가의 스튜디오 방문, 박물관 프라이빗 투어 같은 세심한 서비스도 마련했어요. 특정 작품을 보고 싶을 경우 사전 예약을 받기도 해요. 컬렉터가 원하는 작품을 미리 준비해 보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컬렉팅, 신진 작가 발굴, 새로운 작품 실험 및 의뢰까지 모두 직접 진행하나요? 자신만의 특화된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 전부 제가 해요. 저 스스로가 아트 컬렉터이기 때문에 컬렉터의 시선, 태도,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해요. 이곳만의 특별한 프로그램 중 아트 룸이 있어요. 공간을 컬렉터의 집 그대로 꾸미고 그 안에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거죠. 초보 컬렉터든 경험이 많은 컬렉터든 상관없이 예약을 하면 이 공간에서 작품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요. 또 건축가들과 협업해 컬렉터의 취향과 공간에 맞춰 작가들에게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작품을 의뢰하기도 해요. 아티스트를 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있어요. 작가들이 아를Arles, 카마르그Camargue, 알피유Alpilles의 광활한 풍경을 바라보며 창작에 몰두하도록 돕죠.


컬렉터층도 굉장히 다양할 것 같은데요.

처음 컬렉팅을 시작하는 젊은 컬렉터부터 경험이 많은 컬렉터까지 다양해요. 어떤 분은 구체적인 조언을 원하고, 또 어떤 분은 이미 원하는 작품을 정확히 알고 있죠. 공통점이 있다면 사랑할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다는 거예요. 투자적 측면도 고려하지만 대부분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지요. 가능하면 컬렉터들이 함께 만나고 교류하도록 도와줘요. 자신의 취향을 알려면 타인의 취향을 넘보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디지털과 인쇄 매체를 활용해 갤러리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다양한 컬렉터들이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컬렉터 커뮤니티 형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협업해서 예술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도 한다고요.

, 주로 개인보다 기업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해요. 예를 들면 두바이의 도체스터 컬렉션Dorchester Collection, 베니스의 놀린스키Nolinski, 런던의 디 에머리The Emory 등 럭셔리 호텔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디올 부티크 같은 명품 브랜드, 로펌이나 투자 펀드 본사 같은 기업 공간의 예술 프로젝트도 맡고요. 공간에 맞는 작품을 큐레이팅하는 것은 물론, 건축적 요소와 어우러지도록 맞춤형 설치 작업도 함께 진행하죠.



단순히 유명 작가나 유행하는 스타일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과 경험에 맞는 작품을 찾는 이가 많아져요.”



요즘 예술 시장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자본이 유입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자본이 많아지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어요. 예술이 점점 시장 논리에 종속되면서 본질이 흐려질 위험이 있거든요. 처음 컬렉션을 시작할 때는 순수한 취향과 감각을 따르던 컬렉터도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의 흐름에 영향을 받아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예술이 자본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자본과 예술을 저울질하지 않는 것이 저의 목표죠.


아멜리 메종 다르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고 느끼나요?

, 확실히 변화가 있어요. 이제 예술은 단순히 수집하거나 투자하는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공간을 풍요롭게 만들고 감정적인 연결을 형성하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어요. 과거에는 인테리어와 예술을 구분하고, 목적 또한 감상과 투자로 나누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개인의 기호와 가치가 제일 중요한 요소가 되었어요. 단순히 유명 작가의 작품이나 유행하는 스타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과 경험에 맞는 작품을 찾으려는 컬렉터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거죠. 예술이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감정적이고 내면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이 집은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나요?

그럼요. 뉴욕 갤러리는 겉으로 보기엔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이지만, 거리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어요.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어요. 다만 특정 작품을 보고 싶다면 사전 예약을 권장해요. 컬렉터가 원하는 작품을 미리 준비해 맞춤형 전시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저는 방문객이 단순히 예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개인마다 차별화된 분위기, 풍경, 전시를 생각해요. 심지어 문을 열면서 나누는 인사나 대화 또한 상대를 배려해서 선택하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아직 한 번도 갤러리에 가보지 못한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어요.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 속에서도 충분히 예술을 만날 수 있거든요. 중요한 건 자신만의 예술적 취향을 발견하고 그것을 믿는 거예요. 어떤 장르든, 가격이든, 형태든 상관없어요. 당신의 공간과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면 그것이 곧 예술이라 믿으세요.



Text | Anna Gye

Photos | Amelie Maison d'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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