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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의 90년 된 극장 살려낸 감독

뮤직비디오 감독 ‘팀 에렘’

모두가 손안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시대. 영화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만 극장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1943년에 문을 연 영화관 비오 리오는 뮤직비디오 감독 팀 에렘에 의해 단순한 상영관을 넘어 감각과 경험이 살아 숨 쉬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영화가 사람들을 다시 모으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극장의 스크린을 다시 밝히고 젊은이들을 이끌고 있다.






집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 이렇게 많은 콘텐츠에 둘러싸인 지금, 우리는 정말 영화를 보고 있는 걸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영화를 고르느라 평균 20분을 허비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다음 날로 미루는 일도 많다. 선택의 자유는 때로 피로를 낳는다. 하지만 영화관은 다르다. 정해진 시간에 자리를 예매하고 어두운 상영관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방해받지 않는 환경에서 오직 화면과 소리, 감정에 빠지며 머릿속을 비우게 된다.


드레이크, 토브 로, 메이저 레이저 등과 작업한 뮤직비디오 감독 팀 에렘LA에 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왜 고향 스톡홀름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까?’ 요즘 LA에서는 1940년대 고전이나 컬트 영화를 보려고 청년들이 줄을 선다.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브레인데드가 만든 독립 영화관 브레인데드 스튜디오Braindead Studios는 영화, 미술, 음악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엮어 상영 자체를 이벤트처럼 만드는 곳으로, 그 장소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쿨해지는 기분이 든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운영하는 뉴 베벌리 시네마New Beverly, 비스타 시어터Vista Theater 역시 할리우드 감독들이 사랑하는 공간이다. 많은 감독이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길 바라는 장소로, 매주 쿠엔틴 타란티노의 큐레이션 리스트를 기다린다.


미국에서 느꼈던 확신과 고집으로 팀 에렘은 고향 스톡홀름으로 돌아오자마자 1943년 설립된 이후 문을 닫았던 동네 영화관 비오 리오Bio Rio의 새 주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영화관이 영화 자체를 넘어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웃고, 숨을 고르고, 때로는 울기도 하는 문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오 리오는 블록버스터부터 인디 영화, 1940년대 고전 영화까지, 개봉 시기와 상관없이 다양한 영화를 상영한다. 콘서트나 무대 공연 생중계, 다큐멘터리 상영과 함께 클래식 포럼도 열고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내부에는 호텔 엣 헴의 전 수석 셰프 엘리아스 크바르닝이 이끄는 리리 레스토랑과 시끌벅적한 분위기 대신 침묵과 몰입을 유도하는 바 또한 관객들의 발길을 이끈다.


팀 에렘은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에도 왜 여전히 영화관이 필요한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결국 함께 보는 경험이잖아요. 누군가 웃기 시작하면 그 웃음이 퍼져나가요. 같은 장면에 놀라고 박수 치면서 우리는 잠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낍니다. 팬데믹 이후 지금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건 그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 아닐까요?” 영화가 끝나고 천천히 불이 켜지는 순간, 우리는 같은 장면을 통과한 사람들이 된다. 그래서 영화관은 여전히 필요하다. 스트리밍 시대일수록, 21세기 디지털 시대일수록 사람과 사람 간의 공감, 우리가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감정 언어를 찾기 위해 서로 가까이 존재해야 한다.








비오 리오의 프로그램이 꽤 독특하다고 들었어요.

우리는 최신 블록버스터뿐 아니라 인디 영화, 그리고 1940년대 고전 영화까지 상영해요. 개봉 시기나 장르에 구애받지 않아요. 그리고 단순히 상영만 하는 게 아니라 관객의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요. 예를 들면 아침에 브런치를 먹으며 영화를 보는브렉퍼스트 시네마’, 유아 동반 부모를 위한스트롤러 시네마’, 관객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싱 송 시리즈도 있어요. 단순히 우리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누구든 참여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어요. 영화관을 단방향이 아닌 살아 있는 플랫폼으로 만드는 거죠.


단지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아니라, 관객이 주체가 되는 시스템이네요.

맞아요. 비오 리오는누구의 영화관이 아닌우리의 영화관이에요. 저는 그렇게 사람들이 영화를 매개로 모이고,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서로 감정을 나누는 그런 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것을 프로그래머 루드비히 비외른과 시네마 총책임자 리카르드 오그렌이 현실화했고요. 우리가 만드는 건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다시연결될 가능성이에요.


이 정도면 관객들이 정말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혹시 실험적인 시도도 해봤나요?

얼마 전에 일부러 영화더 룸을 상영했어요. 비평가들 사이에선 최악의 영화로 꼽히지만, 오히려 그런 영화야말로 함께 보면 더 강렬한 감정을 만들어내거든요. 두 번의 상영 모두 매진됐고, 예매는 하루 만에 마감됐어요. 우리는 단순히 영화를 고르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을 열고 싶었어요. 개봉작이든 예전에 놓친 영화든 상관없죠. 이미 집에서 본 영화라도 극장에서 다시 보면 전혀 다른 감각이 느껴져요. 무엇보다 팬데믹 기간에 스무 살이 된 세대는 극장의 어둠 속에서 스크린을 보는 감각을 경험하지 못했잖아요.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해지는 비언어적 소통을 경험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비오 리오만의 특별한 큐레이션 취향이 있나요?

아니요. 우리의 취향을 내세우려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주체가 되어 사람들에게 이런 영화를 봐야 한다고 권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사람들의 감정에 귀 기울이려고 해요. 어떤 영화가 그들의 청춘을 붙잡았는지, 어떤 장면이 삶에 잔상을 남겼는지를 듣고 상영을 구성하죠. 이것이주노Juno’, ‘인터스텔라Interstellar’, ‘히트Heat’, ‘바비Barbie’,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Pink Floyd's the Wall’ 등 결이 전혀 다른 영화들을 이곳에서 함께 상영하는 이유라 할 수 있어요.














건축 자체가 도시의 유산이라 크게 개조하지 못한다고 들었어요.

1934년에 지은 이 건물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간 캡슐이에요. 크게 손댈 수 없다는 건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행운이었죠.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공간이 사람을 환대하는 방법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일이었어요. 극장 뒤에 사일런트 바를 만들고, 무대와 벽을 조금씩 손볼 예정이에요. 최근엔 감독 숀 베이커가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는데가장 아름다운 극장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건축 요소 중 가장 애착 가는 부분이 있다면요?

입구에 다시 달린 간판 네온사인이에요. 영화관이 문을 닫고 간판이 내려간 이후 동네가 뭔가 허전해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간판을 다시 걸던 날, 지나가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죠. 영화관의 정체성은 결국 기억이니까요.


간판의 공연, 영화 이름 모두 알파벳을 하나하나 끼우는 식으로 조작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진짜 손으로 하나하나 바꾸는 건가요?

스태프들에게는 일종의 체력 테스트죠.(웃음) 손으로 글자를 끼워 넣어야 하는 오래된 방식이라 시간이 꽤 걸려요. 그래도 이 간판은 이 공간의 이름이자 상징이에요. 힘들어도 안 할 수는 없죠. 저는 나무 패널 벽의 둥근 모서리가 좋아요. 공간이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감싸 안는 느낌이 들어요. 곧 바닥 카펫도 바꿀 건데, 영화샤이닝The Shining’에 나오는 오버룩 호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그 자체로 명장면이 되겠죠.



영화관은 단지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보는 장소가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 한 조각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해요.”



혼자 와서 영화 보고 술 한잔 하고 갈 수 있는 곳이라 했는데, 영화관은 보통 혼자 오는 손님이 많지 않나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혼자서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기란 쉽지 않아요. 어둠 속에서 영화만 보고 조용히 가는 식이죠. 이곳은 누구와 함께든, 혼자든 하루 종일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에요.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게 사람들 틈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죠.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다면 이곳을 전체 대관할 수도 있어요. 여기서 첫 데이트를 하고 결혼기념일에 다시 이곳을 대관한 커플도 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분이 그 사람이 좋아했던 이 장소에서 추모식을 연 적도 있었고요. 영화관은 단지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보는 장소가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 한 조각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해요. 우리는 그런 경험을 잠시 잊고 살았고, 지금 그 감각을 되살리는 중이에요.


요즘 영화관은 대형 스튜디오와 알고리즘이 거의 모든 걸 결정한다고 들었어요.

영화관마다의 특색이 없어지고 개봉작은 쉽게 사라지죠. 하지만 몇 년 사이 인디 영화는 아주 멋지게 부활했어요. 네온Neon, 에이투포A24, 무비Mubi 같은 배급사는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어요. 우리도 최근 자체 배급을 시작했고 영화 제작 하고 있어요. 이제 영화관은 새로운 오디오 기술이나 세련된 인테리어 또는 프로그램보다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집중해야 해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화면이 아무리 좋아도 감정에 닿지 않으면 남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결국 큐레이션이 전부라고 봐요. 과거에는 큐레이션이 영화 관계자의 독자적 의도와 취향으로 정해졌지만 이제는 관객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아주 단순해요. 사람들의 감정에 귀 기울이고, 그 목소리를 상영표에 담는 일,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마련하는 것, 그게 전부예요.










당신의 뮤직비디오는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몰입감이 높습니다. 영화가 연출 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제 영상은 거의 본능처럼 영화에서 태어났어요. 어떤 건 화면의 질감에서, 또 어떤 건 이야기를 휘감는 공기 같은 것에서 시작되죠. 분명한 건, 저 역시 수많은 연출자들과 마찬가지로 스파이크 존즈의 흔적을 안고 있다는 거예요. 그는 뮤직비디오라는 짧은 호흡 안에서 영화적 밀도를 구현해낸 최초의 사람 중 하나니까요. 그리고 드니 빌뇌브. 그는 장르라는 경계에 갇히지 않고, 말없이 감정을 전할 줄 아는 연출자죠. 그의 영화는 마치 꿈처럼 천천히 번지고 문장 대신 여운으로 남아요. 그 밀도와 정적 안의 움직임, 저도 늘 그걸 좇아요.


공간 디자인과 영상 연출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완전히 다르지만 닮은 구석도 있어요. 영상을 만들 땐 모든 것이 의도지만, 이 공간은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낸 장면이죠. 세월이 벽에 스며들면서 생긴 무드는 어떤 렌즈로도, 어떤 조명으로도 연출할 수 없어요. 그건 그냥 존재하는 것이고, 인테리어는 그 시간의 흔적을 바탕으로 작업해야 해요.


스톡홀름으로 돌아온 뒤 당신의 감각이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속도가 달라졌어요. LA에선 매일 경쟁이었죠. 늘 뭔가를 증명해야 했고, 시간은 쉼 없이 앞으로만 달렸어요. 그러다 스톡홀름에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멈춰 서는 법을 배웠어요. 목적지가 아니라, 그 사이의 흐름 속에 머무는 법을요. 여전히 마음은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예전처럼 쓸려가진 않아요. 지금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영화관에 가길 망설이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축구도, 저녁도 집에서 즐길 수 있죠. 그런데 왜 밖으로 나갈까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집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거든요. 스크린이 켜지고 불이 꺼진 어둠 속, 낯선 이들과 함께 숨죽이는 그 순간, 초 단위의 시간 속에서 연결되는 느낌은 오직 영화관에서만 가능하답니다.



Text | Anna Gye

Photos | Kane Hu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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