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완성한 쉼표 같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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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완성한 쉼표 같은 집

그래픽 디자이너 이아리, 기획자 김한성 부부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디자인 스튜디오 바톤 Baton을 이끄는 이아리, 김한성 부부는 지난해 겨울 서촌에서 망원동으로 이사했다. 8년의 전세 생활 끝에 마련한 첫 보금자리. 한 달에 걸친 공사 끝에 완성한 집은 디자이너다운 발상으로 충만하다. 각자의 취향이 녹아든 작업실, 안방에 가벽을 세워 마련한 옷방, 배관을 그대로 드러낸 천장, 나왕합판으로 구현한 서재와 주방까지. 거실 가득 들어오는 정오의 햇살 속에서 두 사람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반려묘인 구루와 모모는 나른한 표정으로 한낮의 평화를 만끽한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안단테로 흘러가는 듯했다.







한 직장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각자의 업무를 말씀해주신다면요?

(김한성, 이하 김) 저는 기획자로, 아내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아내의 몫이고요. 전 리서치를 같이 하거나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등 프로젝트 매니징 전반을 담당하고 있어요.

(이아리, 이하 이) 남편이 서포터 역할을 해주는 셈이에요. 제가 디자이너로서 최대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주는 거죠. 한편 전 늘 그걸 부수고 나가려는 사람이고요. (웃음)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다투지는 않나요?

(김) 논쟁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필요할 땐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늘 이기기만 해도 문제고, 아내가 늘 이기기만 해도 문제죠. 저희는 작업자와 클라이언트 사이에 있는 만큼 비교적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해요. 결국 필요한 것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바와 저희만의 색상 사이에서 균형을 적절히 맞춘 결과물이니까요.



인테리어 역시 두 분이 함께 조율한 결과인가요?

(김) 그렇기는 한데 아내가 워낙 감각이 좋아서 거의 맡기다시피 했어요. 디자인부터 소재까지 아내가 직접 만들고 결정했죠.

(이) 결혼 후8년 동안2년 단위로 전셋집을 옮겨 다니면서 미래의 집에 대한 상상을 많이 했어요. 덕분에 원하는 그림이 아주 분명했고요. 시공과 설계는 샤우 Shawoo 박창우 실장님에게 의뢰했는데 실장님이 목공 팀까지 연결해주셔서 일이 한결 수월했어요. 다행히 생각대로 잘 나온 것 같아요.








평소 공간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나요?

(이) 어릴 때부터 평면도 보는 걸 좋아했어요. 평면도를 보면서 각각의 공간을 머릿속에 그리는 게 재미있었죠. 이 집은 일반적인 한국 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더 매력적이었어요. 집마다 구조가 다르다는 점도 신기했고요.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이 둘이나 있어서 다른 집에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둘 다 우리 집과 구조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이 집은 일반적인 한국 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더 매력적이었어요. 집마다 구조가 다르다는 점도 신기했고요."




방마다 베란다가 있는데 왜 확장하지 않았나요?

(김) 반려묘인 구루와 모모의 영향이 컸어요. 고양이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확장 안된 집만 골라서 봤어요. 베란다마다 펫도어를 달고, 현관에 중문을 설치해서 고양이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정감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 했고요.



일명’나홀로 아파트’라 불리는 단독형 아파트예요. 관리비나 시세 차익 면에서 단점이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결정할 때 망설임은 없었나요?

(이) 처음부터 오래 살 집을 찾으려 했고, 원하는 그림과 너무 잘 맞아떨어졌던 터라 다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2년마다 전셋집을 옮겨 다니는 게 엄청 스트레스였거든요. 그리고 처음부터 아무 정보 없이 온 건 아니에요. 회사 선배의 초대로 우연히 이 아파트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망원동에 이런 집이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죠. 그 후에 집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집이 생각나서 이사 오게 되었죠. 창밖에 펼쳐진 운동장 풍경이 꼭 일본 같더라고요.



집을 꾸밀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 따뜻한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둘 다 나무를 좋아해서 나왕합판 소재를 많이 사용했는데, 워낙 저렴하고 실용적이라 굳이 고급 소재를 찾을 이유가 없었어요. 조명은 대부분 간접 조명을 썼고, 가구도 베이지색 위주로 골랐고요. 나무 문 중 일부는 상단에 작은 유리를 달아서 바깥 풍경이 살짝살짝 보이게 만들었어요. 특히 주방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플라타너스가 참 예뻐서요.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데, 아무래도 카페 같은 상업공간에서

주로 하는 인테리어다 보니까 남들 눈에는 좀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식탁을 거실에 둔 게 독특해요. 배관을 노출한 천장도 가정집에서는 흔치 않은 풍경이고요.

(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데, 아무래도 카페 같은 상업공간에서 주로 하는 인테리어다 보니까 남들 눈에는 좀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김) 저희가 직장이 같다 보니 집에서도 일상과 업무가 섞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인지 집다운 집에 대한 고정관념이 별로 없어요. 반대로 일하는 공간이 꼭 전형적인 사무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실제로 사무실도 이 집이랑 꽤 비슷해요.



집을 꾸미다 보면 시공이나 설계 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가 많잖아요. 혹 의도와 다르게 나온 것이 있나요?

(김) 거실 천장을 노출하는 건 계획에 없던 부분이에요. 원래는 천장에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하려 했는데 이 집은 유난히 천장 깊이가 얕았어요. 고민 끝에 아예 천장을 뜯어서 에어컨을 노출하기로 했죠.



저 같으면 포기했을 것 같아요. 보통은 그럴 때 그냥 스탠드형 에어컨을 선택하잖아요.

(이) 부피가 큰 물건이 거실을 차지하는 게 싫었어요. 너무 높거나 위압적인 물건은 최대한 줄이려 했거든요. 이참에 냉장고도 작은 거로 바꿨고요. 신혼 때 멋모르고 양문형 냉장고를 샀는데 저희가 요리를 즐겨 하지 않으니까 냉장고가 점점 서랍이 되더라고요.








훗날 이사할 집은 어떤 모습일까요?

(김) 마당 있는 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제가 시골 출신이라서요. 현실적으로 그런 집이 저희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서 살던 집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있어요.

(이) 제 꿈은 막연하면서도 정확해요. 47살에는 웰시코기와 시바견을 키우면서 살고 싶다. (웃음) 그러려면 마당 있는 집이 필수겠죠? 저야말로 깡시골 출신이라 그런 집이 익숙하거든요. 아빠가 동물을 너무 좋아하셔서 마당에 닭, 오리, 오골계, 청둥오리, 다람쥐, 토끼가 막 돌아다녔어요. 나이가 들면 다시 한번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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