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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현대적인 한옥

백화점 바이어 여병희, 이소영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단독주택에 대한 꿈은 곧 한옥이라는 좀 더 구체적 목표로 바뀌었고, 다시 1년이 넘는 대수선 공사를 거쳐 지금의 소담한 신혼집이 탄생했다. 인사동에서 구입한 조각보와 뱅앤올룹슨 스피커, 단정하게 표구한 수묵화와 오리지널 세븐 체어가 어우러진 30대 부부의 젊은 한옥에서 ‘집은 삶의 보석 상자여야 한다’는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말을 새삼 떠올렸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보석 상자 뒤로 인왕산의 절경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어쩌다 한옥에 살게 되었나요?

(여병희, 이하 여) 전 사실 30년 넘게 단독주택에만 살아서 아파트의 장점을 잘 몰라요. 마침 아내도 단독주택을 원해서 결혼하기1년 전부터 주말마다 열심히 부지를 보러 다녔어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러다 문득 제가 나고 자란 삼청동 주택이 눈에 들어온 거죠.

(이소영, 이하 이) 처음에는 양옥집을 지을 계획이었어요. 한옥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행복작당’ 영향이 컸어요.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잡지에서 매년 개최하는 한옥 방문 행사인데, 그때 본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님 별장이 정말 감동이었거든요. 한옥도 이렇게 멋질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신혼이니까 집들이도 자주 했겠네요. 손님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여) 뒤주 같은 골동품이 있을 법한 집에 의외로 모던한 물건들이 있으니까 그런 점을 다들 신기해했죠. 일상에서 한옥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이영혜 대표님 외에도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비정상회담’ 출연자 마크 테토 등 주변에 유명인이 많이 사는데요. 그분들 집을 보면 대지면적 35평으로 표준화된 한옥을 여러 채 이어서 리모델링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저희 집 같은 일반 가정집 한옥을 볼 일은 드물죠.



많은 사람이 한옥의 낭만을 꿈꾸지만 결국 아파트의 편리성에 항복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여) 저희 둘 다 일본에 관심이 많은데요. 일본은 전통 주거시설을 참 유연하게 잘 풀어내는 것 같아요. 정부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건물에 미국 커피 브랜드인 ‘블루보틀’이 들어올 정도니까요. 얼마 전에는 교토에 다녀왔는데 전통가옥에서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인 랑에 운트 죄네 팝업스토어를 열더라고요. 맞은편 전통가옥에는 라이카 매장이 있고요. 한국에는 헤리티지를 잘 살린 공간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 세대에서 그런 일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었어요. 한 번 해보니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요.




“한국에는 헤리티지를 잘 살린 공간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 세대에서 그런 일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었어요.”












공간을 꾸미면서 특별히 의도한 분위기가 있나요?

(이) 물건이 밖으로 보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자질구레한 물건은 최대한 숨기는 방향으로 설계했어요. 색상과 소재는 최대한 심플하게 통일했고요. 남편과 저는 패션 관련 일을 오래 해왔는데 이 집을 계기로 리빙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 같아요.

(여) 집에 나무가 워낙 많아서, 가구는 최대한 컨템퍼러리 한 디자인에 소재도 스틸이나 유리 위주로 골랐어요.집이 전통 한옥인데 내부까지 오래된 고가구로 꾸미면 좀 올드 한 느낌이 날 것 같아서요. 소품은 아내랑 여행이나 출장 중에 틈틈이 구입한 물건이 대부분이에요. 인테리어 소품을 공부하면서 느낀 게 모든 디자인에는 오리지널이 있더군요. 지금이야 프리츠 한센이나 루이스 폴센 같은 유명 브랜드를 한눈에 알아보는 수준이 됐지만 전에는 원조 디자인에 대해 굉장히 무지했어요. 이제는 웬만하면 돈이 좀 들더라도 오리지널로 구입하려고요.



현관 현판에 적힌’하연재 夏燕齋’는 어떤 의미인가요?

(여) 모든 한옥에는 당호 堂號라는 걸 붙여요. 제가 어릴 때는 그런 문화가 없었는데 요즘 이 동네로 이사 오는 분들은 워낙 문화적 소양이 높으셔서 그런지 꼭 당호를 붙이시더라고요. 하연재는‘여름에 제비가 오는 집’이라는 뜻이에요. 반가운 손님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아내 영문 이름이 ‘Summer’라 특별히 ‘여름 한’ 자를 넣었어요. 저희 집에서는 아내가 제일 힘이 세거든요. (웃음)



한옥에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나요?

(이) 사실 단점도 많아요. 난방비가 많이 들고, 목조주택이다 보니 벌레도 좀 있고요. 남편이 마당에 식물을 기르고 싶어 하는데 제가 벌레를 워낙 싫어해서 결사반대하고 있죠.

(여) 평생을 북촌에서 살았지만, 한옥이 좋다는 말에는 별로 공감하지 않아요. 대부분 한국 전쟁 이후 급히 지은 거라 허술한 부분이 많거든요. 건축비도 비싸고 인테리어도 어렵고요. 한옥을 리모델링하면 국가에서 지원금이 나오는데 그만큼 지켜야 할 규칙이 매우 많아요. 아마 한옥을 소유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저희도 중간에 포기했을 거예요.








“가장 큰 테이블을 거실에 배치했어요. 차 마시고, 밥 먹고, 책 읽고, 생활의 거의 모든 활동을 여기서 소화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한옥살이의 즐거움을 들려주신다면요?

(이) 한옥 사는 재미는 마당이 큰 몫을 하는 것 같아요. 매일 빛이 바뀌는 마당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기쁨이 커요.

(여) 모든 공간이 모듈식이라 방과 방을 터서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어요. 용도 변경이 유연하죠. 지금 인터뷰하는 이 거실도 옆에 있는 폴딩도어를 열면 서재와 연결해서 더 넓게 쓸 수 있어요. 저희처럼 둘이 살다가 자녀가 생기면 마당에 마루를 깔고 천장을 덮어서 집을 넓히는 분도 있더군요.



집에서 각자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요?

(이) 거실이요. 퇴근 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서 일부러 가장 큰 테이블을 거실에 배치했어요. 차 마시고, 밥 먹고, 책 읽고, 생활의 거의 모든 활동을 여기서 소화하는 것 같아요.

(여) 저는 야외 테라스요. 전통 한옥에서는 보기 어려운 공간인데 마침 집이 경사진 곳에 있기에 축대를 이용해서3평 남짓한 공간을 야외 테라스로 만들었어요. 마침 옆집에 고등학교 선배가 살아서, 날씨 좋은 날에는 아내와 테라스에서 식사하다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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