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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열린 작업실

아티스트 허명욱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당신에게 작업실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작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이죠. 저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보여주는 공간이요. 물론 모든 작가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작업과 작업실이 완전히 별개인 작가도 많거든요.



용인에 있는 작업실이 무척 멋지더군요.

겉만 근사한 작업실은 의미 없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공간에서 우러나는 어떤 정취예요. 제 작업의 기운이 공간에 스며 들고, 그 과정에서 작업과 공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그게 저에게는 아주 중요해요.




“겉만 근사한 작업실은 의미 없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공간에서 우러나는 어떤 정취예요. 제 작업의 기운이 공간에 스며 들고, 그 과정에서 작업과 공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그게 저에게는 아주 중요해요.”










공간이 작품에 영향을 많이 주나요?

요즘 하고 있는 옻칠 작업이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색을 만드는 일인데, 결과물을 보면 그날의 제 기분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그래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색을 만들지 않아요. 최대한 좋은 기운만 작품에 담고 싶어서요. 산과 물로 둘러싸인 장소에 작업실을 차린 것도 같은 이유예요. 어찌 보면 굉장히 한국적인 정서죠. 작가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카페 ‘한남작업실’은 어떤 공간인가요?

용인에 있는 제 작업실의 축소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최근작인 옻칠 페인팅부터 실제 사용하는 공구들까지 거의 그대로 옮겨놨어요. 벽에 걸린 도면도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고요. 얼마 전에는 여기서 망치질도 했어요. 근데 손님들이 너무 시끄러워하시네요. (웃음)



작업실이 있는데 굳이 이런 공간을 마련한 이유가 궁금해요.

평소 SNS로 작업실 방문 문의가 많이 와요. 근데 작업실은 제 개인 공간이라 관계자 외에는 출입을 막고 있거든요. 번번이 거절하자니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누구나 쉽게 방문해서 제 작업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어요.그러던 차에 건축가 이성란 소장이 반가운 제안을 해왔어요. 한남동의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 했는데 공간 하나가 비어있으니 카페 겸 작업실로 운영하면 어떻겠냐고요. 최근 작업실 옆에 건물 두 동을 신축하면서 이성란 소장에게 설계를 의뢰했는데, 당시 제가 작업실에 온 손님들에게 직접 만든 옻칠 식기에 커피와 다과를 대접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셨던 모양이에요.







‘HMW ’라는 메뉴가 있던데 무슨 뜻인가요?

허명욱의 약자입니다. (웃음) 작업실에 온 손님들에게 제가 기본으로 준비하는 차림을 그대로 적용한 메뉴예요. 사람들이 실제로 제 작업실에 온 듯한 기분을 느꼈으면 해서요. 통영꿀빵이나 슈톨렌처럼 간단한 디저트를 옻칠 쟁반에 담아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가구와 식기로 카페를 채웠어요. 작품이 많이 상할 텐데 걱정되지 않나요?

저는 제 작품이 사람 손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닳아가는 과정을 보는 게 좋아요. 빈티지를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해요. 어릴 때 어머니가 깨끗한 운동화를 사주면 일부러 흙을 묻혀서 돌아오곤 했어요. 새 물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요. 오래된 물건 특유의 낡고 바랜 색감이 저에게 묘한 위안을 줘요.



사진, 공예, 회화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고 있어요.

제 모든 작업은 연결되어있어요. 남들은 경계를 허문다고 표현하지만 그게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에요. 저의 감성을 다양한 재료와 도구로 풀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영역의 작업을 하게 된 거죠. 제 첫 작업인 빈티지 미니카 시리즈와 지금 하고 있는 옻칠 작업도 기본적인 정서는 같아요.








빈티지 미니카와 옻칠을 관통하는 정서라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아요.

광고사진으로 먹고살다가 친구 보증 선 게 잘못돼서 빚더미에 앉았어요. 그때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작업이 빈티지 미니카예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모은 빈티지 미니카를 촬영한 뒤 사진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덧입히는 작업이었죠. 오랜 기간 부딪히면서 마모된 미니카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렇게 빈티지의 시간성에 몰두하다가 옻이라는 재료를 만났어요. 옻칠은 수십 번의 밑칠을 거쳐 완성되는데 하나의 색 아래 수많은 색이 쌓이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 밑 색이 배어 나와요. 낡을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빈티지 미니카처럼요. 옻칠 장인들은 이런 색 변화를 힘들어해요. 노란색을 의도하고 칠했는데 그게 고동색이 됐다가 또 겨자색이 되기도 하거든요. 자연에서 온 안료이기 때문에 그래요. 저에게는 오히려 그 점이 매력이었어요. 재료 자체가 시간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요.



최종적으로 꿈꾸는 작업실이 있다면요?

일종의 타운을 기획하고 싶어요. 작업실 근처에 비슷한 건물을 몇 채 더 지어서 레지던시로 운영하는 거죠.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술인 마을처럼요. 관객들이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만들고요. 서울 근교에 이런 마을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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