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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안정을 주는 남산맨션

패션 브랜드 커뮤니케이터 이윤아

Text | Eunah Kim
Photography | Siyoung Song

소월길 초입에 홀로 우뚝 솟은 남산맨션은 과거 호텔로 사용되던 시설로 16층 높이, 122가구가 사는 48년 된 독특한 아파트다. 패션 하우스의 브랜드 커뮤케이션을 담당하는 이윤아 씨는 약 3년 전 이곳에 이사를 왔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이촌동 한강맨션을 거쳐 이번에도 오래된 아파트 건물이 주는 특유의 안정감에 마음이 끌렸다. 이윤아에게 집은 철저한 ‘로그아웃’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남산맨션은 워낙 감각적인 분들이 저마다 개조를 해서 사는 곳이라 ‘문을 열기 전에는 매력을 상상할 수 없는 집’이라고도 불립니다. 이곳의 매력을 어떻게 발견하게 됐나요?

대학교 다닐 때 남산1호 터널을 거의 매일 지나다녔어요. 지나갈 때마다 산 쪽에 혼자 산장처럼 솟아있는 건물을 보면서 되게 특이하다고 생각해왔죠. 어느 날 우연히 아는 언니가 이곳에 거주하는 ‘히스토리 바이 딜런’의 류은영 작가님 댁에 놀러 가는 데 함께 가자고 해서 와봤더니 바로 이곳이었어요. 그분의 집은 한국에서 절대 볼 수 없는 그런 느낌이더군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살아보고 싶은 집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6개월을 기다려 겨우 한 세대가 매물이 나왔는데, 세입자가 집 공개를 원하지 않아 집을 보지 못하고 계약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다행히 고층이어서 채광은 보장이 될 것이고 구조는 어차피 공사해서 들어갈 것이었기에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오래된 아파트라서 특별히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나요?

신기한 게 그전에는 압구정 구현대아파트에 살았거든요. 1970년대 지어진 아파트죠. 그리고 여기로 오기 직전에는 이촌동의 5층짜리 한강맨션에 살았고요. 옛날 아파트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게 있나 싶어요. 이전에 살던 5층 높이의 한강맨션도 아파트 높이만큼의 라일락 나무가 있는 그런 요소에 더 끌렸고요. 투자 수익이니 하는 것에 남편도 저도 밝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둘이 재밌게 살자 하는 게 늘 더 컸어요.



살아보면서 현실적으로 불편한 점은 어떤 게 있던가요?

건물 자체가 오래되다 보니 잦은 단수가 있고, 가끔 온수가 안 나올 때도 있고, 지하 주차장이 없어서 자동차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죠. 아파트를 유지하기 위해서 세대수별로 징수하는 관리비 명목의 금액도 높은 편이고요. 그래도 오래된 아파트가 주는, 낡은 데서 오는 편안함과 익숙함이라는 게 있어요. 요즘 아파트 벽과는 다르게 다소 무식하게 튼튼한 생콘크리트 벽이기도 하고. 그런 벽이 주는 여름의 시원함이 있고, 워낙 오래되다 보니 주변 나무들도 오래돼서 우거짐도 남다르고요. 오래된 아파트와 주변 동네가 주는 편안함이 있어서 새 아파트와는 견줄 수 없는 매력은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이곳에 이미 살고 있던 지인의 집을 보고 입주를 결심하셨다고 했잖아요. 다른 입주자분들도 특히나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이웃 주민들과는 어떤 교류가 있나요?

재미있게도 여기 와서 만난 친구들이 꽤 돼요. 그 친구들이 다 흥미롭고요. 각자의 색깔과 각자의 분명한 직업군이 있는 젊은 친구들인데, 저처럼 회사원인 분들보다 자기 일을 하는 이들이 많아요. 제일 친한 주민은 웨딩 컨설팅 회사 아틀리에 태인을 운영하는 친구고, 1세대 포토그래퍼 김욱 실장님도 여기 사시고요. 건물1층에 보마켓이라는 공간을 운영하시는 대표님도 다른 디자인숍을 운영하시는 분이기도 해요. 보마켓은 주민들이 간단한 생필품이나 식료품, 음료 등을 살 수 있는 슈퍼 같은 곳인데 장미라는 이름의 마스코트 같은 프렌치불도그가 상주하거든요. 어느 순간 하나의 상표가 돼서는 대동강 맥주랑 협업해서 장미가 그려진 라벨이 붙은 맥주도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가 하면, 언뜻 이런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옆에는 오래된 의상실도 공존하고 있지요.







“최고의 인테리어 소품은 채광이라고 생각해요. 무조건 ‘빛’.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높은 아파트를 선호하게 된 것 같아요.”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조건은 무엇이었나요?

최고의 인테리어 소품은 채광이라고 생각해요. 무조건 ‘빛’.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높은 아파트를 선호하게 된 것 같아요. 이전에 살던 한강맨션은 5층 건물이기는 했지만, 꼭대기 5층에 살았으니 앞뒤가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들이어서 채광은 최고였어요. 무조건 빛이 잘 드는 아파트가 1번인 것 같아요.



특유의 감각이 집에 고스란히 드러나요. 현재 패션 하우스에서 홍보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고 계시죠?

네, 대외적으로 브랜드가 커뮤니케이션하는 그 모든 것을 담당하는데 그 수단은 제품, 컬렉션, 행사, 셀레브리티 등 다양한 채널을 사용합니다. 예전에는 특정 브랜드 인스타그램 계정을 직접 운영한 적도 있어요. 이전 직장에서는 라이프스타일 멀티숍 홍보를 하기도 했고요. 스스로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계속 이쪽 일을 하다 보니 직간접적으로 배우고 파고들면서 나만의 취향이 생기게 된 것 같아요. 늘 핀터레스트나 인플루언서의 인테리어를 눈여겨보곤 했죠.



이사를 앞두고 리모델링을 하셨는데, 어떤 기준으로 인테리어를 계획했나요?

어떤 공간에서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낼까? 어떤 게 가장 우선순위일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방이라는 것은 잠만 자면 되겠더라고요. 굳이 클 필요 없고 힘줄 필요도 없다고 봤어요. 내가 잠을 잘 자고 잘 일어날 수 있는, 본연의 역할만 하면 되겠다고 판단해서 최대한 줄였어요. 저와 남편에게 방이 3개까지 필요가 없어서 하나는 들어내고 친구들 초대해서 와인 한잔하고 담소 나누는 다이닝룸 겸 라이브러리 공간을 만들었죠.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거실을 큰 공간을 할애했고요. 원래 부엌이 막힌 공간이었는데 개방형으로 개조해서 요리하면서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리고 화장실도 많이 바꾸었어요. 예전부터 벽지를 바른 건식 욕실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에, 중간에 벽을 하나 더 세워서 습기를 덜 머금는 방법을 찾아냈죠.









“저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철저하게 ‘로그아웃’을 시키는 공간이거든요. 집에 오면 외부 세계와 차단을 하고 철저히 휴식을 취하려 해요. 침실에 들어가면 저는 휴대폰을 절대 안 봐요.”




집 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어딘가요?

우리 집은 천장 조명도 없고 밤이 되면 최대한 어둑한 간접조명만 있어요. 집에 와서 일할 때가 있는데, 라이브러리 공간에서는 특히 몰입도도 생기고요. 저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철저하게 ‘로그아웃’을 시키는 공간이거든요. 집에 오면 외부 세계와 차단을 하고 철저히 휴식을 취하려 해요. 침실에 들어가면 저는 휴대폰을 절대 안 봐요. 알람을 위해 갖고는 들어가는데 웬만하면 안 들여다봐요. 휴대폰으로 뭘 하려면 다시 방을 나와서 하고 들어가요. 이렇게 습관이 들다 보니 저만의 스트레스 조절 방법이 생긴 것 같아요.



‘집’하면 떠오르는 원형적인 이미지나 감성은 어디서 영향을 받은 것 같나요?

어렸을 적부터 아빠 직장 때문에 해외를 돌아다니며 살았어요. 프랑스(파리), 카메룬(두알라), 미국(마이애미), 그리고 부모님은 벨기에로 가셨다가 상해로 이주하시기도 하셨고, 저는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로 공부를 하러 가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분명 여러 나라의 주거 형태를 보긴 한 것 같아요. 다행히 집이라는 공간은 저에게 늘 부모님과 대화를 하고 충전과 휴식이 있는 곳이었어요. 어릴 적 아프리카에 살 때는 엄마가 집에서 애플파이, 브라우니, 초코케이크 등을 직접 만들어주셨는데, 학교 끝나고 오면 늘 베이킹 냄새가 나곤 했어요. ‘집’이라는 곳에 오면 늘 왠지 엄마가 맛있는 걸 만들고 계실 것 같고 조금 후면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랑 하루 동안 있었던 일과 고민을 이야기하고. 그런 집에 대한 본질적인 이미지는 바뀐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나의 궁극적인 드림 하우스는 어떤 모습인가요?

남편의 공방이 경기도 광주 쪽에 있어요. 공방 특성상 기계도 많고 소음도 많다 보니 서울 중심지에는 있기가 힘들어서 집과는 거리가 있지요. 입지를 포기해도 되는 나이가 되면, 남편의 공방과 저희의 주거 공간이 한곳에 있을 수 있는 곳을 막연히 생각해요. 또, 고양이들을 너무 사랑하다 보니 길냥이들이 쉬고 갈 쉼터가 있는 자그마한 마당도 있었으면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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