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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의 서재

목수 김윤관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파주에 있는 그의 60평짜리 작업장 옆에는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간이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목수인 김윤관은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공예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5년여간 책과 씨름한 끝에 그가 닻을 내린 미학은 ‘조선 클래식’. 한국의 목수 중 그처럼 자신이 만드는 가구의 미학을 스스로 규정한 경우는 보기 드물다. 그들의 손에 연장만 쥐어질 뿐 책이 들려 있지 않은 까닭이다. 그는 누구나 자기만의 서재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들어오자마자 ‘여긴 정말 목공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낭만적인 공방이 아닌, 치열한 노동의 현장이랄까요?

쇼룸처럼 정돈된 작업장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일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사색에 잠기는 것도 경계하는 편이에요. 제게 이곳은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장소라서요.



목수로서는 드물게 ‘조선 클래식’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지닌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그게 저에게는 약이자 독이기도 해요. 이름만 듣고 고루한 디자인일 거라 짐작하는 분이 많거든요.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건 조선 목가구의 형태가 아닌 정서예요. 나를 담백하게 만들고 공간을 경쾌하게 바꾸는, 조선 공예품의 절제된 아름다움이요.



일간지에 공예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고, 서재에 대한 책을 출간하는 등 저술 활동에도 힘써왔어요. 목수로서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있나요?

저는 공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다만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유익해야 한다는 직업적 의식은 갖고 있습니다. 무인양품 아트디렉터인 하라 켄야가 쓴 글 중에 ‘욕망의 에듀케이션’이라는 말이 있어요. 상품의 성패는 시장이 가진 욕망의 수준에 의해 좌우된다는 입장인데요. 저 또한 장기적으로 제 직업을 이어가려면 목가구에 대한 대중의 미의식을 ‘에듀케이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일환으로 글도 쓰고 책도 내는 거죠.




김윤관 제공


김윤관 제공




“내게 서재와 공방은 별도의 공간이 아니다. 서재는 공방의 연장이며, 공방은 서재의 확장이다.”

- <아무튼, 서재> 중 -




<아무튼, 서재>라는 에세이집을 따로 펴낼 정도로 서재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목수의 서재라니,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맥락 없는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목수로 5년쯤 살다 보니 내가 과연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지더군요. 목가구를 만든다는 건 공예의 일부인데, 그때까지 공예에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요. 현대사회에 공예가 왜 필요한지, 사람들이 싸고 질 좋은 공산품을 마다하고 공예품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생활 속의 공예’라는 말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건지, 스스로 묻고 답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러자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고요. 서재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별 볼 일 없는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됐을 거예요.



“가구를 만드는 목수임에도 아직 나를 위한 가구는 만들지 못했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어요. 서재에 대해 책을 쓸 정도면 책상이나 책장쯤은 직접 만들어서 쓰고 계실 줄 알았거든요.

저도 제 가구를 비싸서 못 써요. 책상 하나 만드는데 보통 한 달 이상 걸리거든요. 목수 일로 먹고사는 저로서는 엄청난 수입을 포기해야 하는 셈인데 그렇게 사치 부릴 여유가 아직은 없어요. 이 컨테이너 서재는 얼마 전에 마련한 건데, 전시 끝나고 배송 중에 하자가 생겨서 못 파는 가구들만 가져다 놨어요. 이렇게나마 비로소 제 가구를 써보게 된 거죠. 써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웃음) 정식 서재는 헤이리에 따로 있고, 이곳은 공예랑 미술 관련 책만 주로 열람하는 목공예 연구소로 활용할 예정이에요.



당신이 상상하는 최고의 서재는 어떤 모습인가요?

제가 서재에서 책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텔레비전이에요. 100인치가 넘는 대형 텔레비전에 편안하게 등을 기댈 수 있는 8인용 소파, 싱글몰트위스키를 보관할 수 있는 드링크 캐비닛까지 갖춘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참, 성능 좋은 오디오 시스템도요.



의외네요. 당연히 가구 이야기가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요.

책상이나 책장도 물론 중요하죠. 근데 저는 서재의 목적이 꼭 공부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옛날 선비들도 사랑방에서 분재 한 그루 완상하며 술 마셨다고 하잖아요. 그거랑 제가 서재에서 <왕좌의 게임> 보면서 위스키 마시는 거랑 뭐가 크게 다를까 싶어요. 전 사람들이 서재라는 공간을 꼭 ‘책 서(書)’ 자에 국한시키지 않았으면 해요. 누군가에게는 프라모델 공방이나 오디오 룸이 최고의 서재일 수 있어요. 요즘은 놀 거리가 워낙 많으니까요.








“유럽에 가면 성을 살 수도 있는 값어치의 집에 살면서 각자의 공간이 없다는 건 너무 서글픈 일 아닌가요?”




누구나 서재를 가져야 한다는 말에 동의해요. 하지만 가정집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그런 공간을 구현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무조건 가능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강의 준비하면서 30~40평대 아파트 평면도를 유심히 봤는데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10억, 20억이 넘는 아파트인데 가족 누구도 자기 공간을 갖기 힘든 구조인 거예요. 20억이라니, 옛날로 치면 만석꾼보다도 재산이 많은 거거든요. 유럽에 가면 성을 살 수도 있는 값어치의 집에 살면서 각자의 공간이 없다는 건 너무 서글픈 일 아닌가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집 밖에 따로 작업실을 얻어서라도 서재는 꼭 사수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에서 가구를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공간이 아파트잖아요. 근데 요즘 아파트를 보면 목수가 끼어들 틈이 별로 없어요. 웬만한 가구는 다 기본 옵션으로 갖춰져 있으니까요. 그나마 식탁이나 소파 테이블 정도가 목가구의 자리인데, 전 아파트 회사가 이중 딱 한 품목만이라도 개별 작업자들과 협약을 맺어서 입주자들에게 옵션으로 제공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공예의 발전을 위해서라도요. 예컨대 1번 김윤관 목수의 식탁, 2번 홍길동 목수의 식탁, 3번 아르마니 까사의 식탁, 이런 식으로 선택지를 주고 이를 아파트 분양가에 포함시키거나 할인가에 제공하는 거죠. 사람들이 차 살 때는 옵션을 아끼지 않으면서, 공방에서 가구 사는 건 엄청 부담스러워하거든요. 아파트 회사에서 권하는 가구라면 입주자들도 그만큼 믿고 구매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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