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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있는 공간에 대하여

비스포크 브랜드 레리치 대표 김대철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분위기는 내 건축의 모든 것이다.” 건축가 페터 춤토르의 말이다. 그는 새로운 작업을 맡으면 현장으로 달려가 그곳의 온기를 피부로 느끼고 그곳이 전하는 소리를 귀담아 듣는다. 건물의 소리와 온도, 재료와 구조에 대한 성찰이 충분히 이루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분위기’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분위기’가 없는 건물은 아무런 감동이 없다. 비스포크 브랜드 ‘레리치’를 이끄는 김대철 대표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대상이 수트일 뿐.








레리치 lerici는 무슨 뜻인가요?

15년 전 수트숍 오픈 준비하느라 이탈리아에 갔다가 우연히 레리치라는 작은 항구 마을을 방문했어요. 깎아지른 절벽에 은빛 철갑을 두른 파도가 그야말로 영화 <그랑 블루>의 한 장면 같더군요. 문득 수트숍 이름은 레리치로 할까 싶었죠. 브리오니 Brioni가 브리오니 군도의 홍보 포스터에서 영감을 받은 것처럼요.



쇼룸이 수트숍이 아니라 모던한 갤러리 같아요.

앤티크한 가구로 유럽의 클래식한 양복점을 재현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어요. 그보다는 컨템퍼러리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가구부터 옷걸이, 거울까지 전부 작가들에게 주문 제작했죠. 처음에는 구두랑 타이도 일부러 팔지 않았어요. 편집숍보다는 공방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지고 싶어서요.



단춧구멍 하나까지 손바느질로 처리하는 비스포크 양복을 내세우고 있어요. 기술문명이 정점에 오른 21세기에 굳이 이런 수고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트는 바느질과 기계 공정을 섞어서 공임을 낮추는 구조가 불가능해요. 그냥 다 바느질로 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예요. 다만 모든 손바느질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괜한 고생을 하는 셈이니까요. 레리치가 손바느질을 고집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예요.



흰 가운을 입은 장인들이 공방에서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방문객이 공방을 볼 수 있게 만든 건 의도적인 장치인가요?

네, 공방 유리창을 경계로 손님과 장인들 사이에 어떤 긴장이 일었으면 했어요. 실제로 공방 앞에 한참 앉아있다 가시는 분이 많아요. 자기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낱낱이 볼 수 있거든요.








“제 질문은 한 가지, “어떤 분위기를 갖고 싶으세요?”예요. (중략)

제가 생각하는 멋의 종착지는 ‘자신만의 분위기를 이루는 것’이거든요.”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는 좋은 질문이 필요하다고 믿어요. 그런 의미에서 고객을 인터뷰할 때 꼭 던지는 질문이 있나요?

제 질문은 한 가지, “어떤 분위기를 갖고 싶으세요?”예요. 고객에게 자신이 남에게 보이길 원하는 모습을 최대한 이야기하게 한 다음, 당신이 생각하는 게 이게 맞는지 제가 역으로 질문하는 과정을 거쳐요. 제가 생각하는 멋의 종착지는 ‘자신만의 분위기를 이루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인터뷰가 오래 걸려요.



테일러로서 생각하는 옷의 본질, 좋은 수트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집의 본질, 좋은 집의 조건과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에게 옷과 건축(집)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라서요. 건축은 언뜻 외면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면의 영역이에요. 집 구조가 바뀌면 생활방식도 바뀌잖아요. 보이지 않는 작은 부분들을 건드려서 사용자의 내면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반대로 옷은 외면의 영역이에요. 대상을 조형적으로 아름다워 보이게 만드는 게 첫째예요. 그 과정에서 비율, 밸런스, 대칭 같은 개념들이 중요해지죠. 클래식 수트는 특히 그렇고요. 어떤 면에서는 집이 더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용자의 다양한 내면에 부합하는 집을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훨씬 복잡한 일이니까요.










“건축은 언뜻 외면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면의 영역이에요. 집 구조가 바뀌면 생활방식도 바뀌잖아요.

보이지 않는 작은 부분들을 건드려서 사용자의 내면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지금 살고 계신 집 분위기는 어떤가요?

38평짜리 오피스텔인데 실평수는 아주 작아요. 대신 물건 두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내부는 엄청 간결해요. 메이플 나무 바닥에 기역자 월넛 테이블, 푹신한 소파, 침대가 전부예요. 그리고 한쪽 바닥에는 책들이 쌓여있어요. 장식용은 아니고요. (웃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서 그날그날 마음이 가는 책을 읽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아요.



옷은 맞춤이 가능하지만 집은 이미 만들어진 것들 중에서 선택하는 구조잖아요. 까다롭게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천편일률적이라 일컬어지는 한국의 주거 공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이를테면 집을 ‘테일러링’하는 것도 가능한 개념 아닐까요?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세 가지라고 봐요. 바닥, 벽, 천장이요. 질 좋은 바닥에 벽이랑 천장만 담백해도 공간이 살아요. 그런데 그런 집이 많지 않죠. 한국의 아파트들은 자꾸 안에 뭔가를 채우려 하니까요. 값비싼 대리석을 깔거나 장식을 더하는 식으로요. 그보다는 구조나 재료에 더 신경 쓰면 좋겠어요. 공간이란 건 틀만 잘 마감해도 그 자체로 아름답거든요. 나머지는 사용자가 취향에 맞게 채우면 되고요. 덜어내는 게 정말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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