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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주방을 탑재한 술 파는 바

라꾸쁘' 공동대표 손기은, 홍지원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남성잡지 〈GQ〉에서 미식 관련 기사를 이끌어온 프리랜서 에디터 손기은, 단단한 팬층을 거느린 와인 강사 양진원, 와인 수입사 출신의 플로리스트 홍지원이 2인 1조로 돌아가며 바를 지킨다.




위스키와 리큐어는 물론 포트, 셰리, 마데이라 같은 주정강화 와인까지 빼곡하게 도열한 테이스팅 바 옆에는 술과 간단한 안줏거리를 파는 보틀 숍이, 너른 홀 한편에는 아일랜드 키친이 딸린 쉐어드 바 Shared Bar가 자리하고 있다. 풍성한 조리 시설과 수준 높은 글라스 웨어를 갖춘 쉐어드 바는 누구나 자기 집처럼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공유 주방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인터뷰는 당일 출근한 손기은, 홍지원 대표가 답했다.












여자 셋이 운영하는 바는 보기 드물어요. 어쩌다 세 분이 의기투합하게 되었나요?

(손기은) 지인들끼리 갖던 와인 모임을 통해 친해졌어요. 4년간 만남을 이어가면서 사적인 모임과는 별개로 셋이 업무상 도움을 주고받기도 했죠. 제가 진원 씨에게 와인 칼럼을 의뢰한다든지, 지원 씨가 저에게 새로 나온 와인을 소개해주는 식으로요. 그러다 문득 저희 셋 다 어떤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각자의 커리어를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이 절실하던 차였죠. 마침 제가 퇴사하면서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고요.



서울의 다른 바들과 구별되는 라꾸쁘만의 분위기가 있어요. 인테리어를 하면서 어떤 점을 가장 염두에 두었나요?

(홍지원) 유행하는 스타일은 의식적으로 배제하려 했어요. 특히 공사하다 만 듯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만큼은 피하고 싶었죠.

(손기은) 요즘 칵테일 바 특유의 부잣집 서재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시가를 입에 문 남자가 가죽 소파에 앉아 위스키 잔을 흔드는. (웃음) 그보다는 좀 더 밝고 경쾌한 분위기였으면 했어요. 그래서 내부도 최대한 컬러풀하게 꾸몄고요.







반원 모양 디자인이 여기저기 눈에 띄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손기은) ‘쿠프 coupe’라는 이름의 술잔이 있어요. 원을 반으로 가른 듯한 디자인이 특징인데, 이 잔에서 착안해 가게 이름을 정하면서 반원 모티브를 중심으로 인테리어를 풀게 됐어요. 잔의 기원이 뜻밖에 영감을 주기도 했죠. 쿠프의 유래 중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을 본떠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이처럼 여성스러운 잔을 내세우되, 술만큼은 전문적으로 다룸으로써 여자들이 운영하는 술집에 대한 편견을 뒤집고 싶었어요.

(홍지원) 칵테일부터 샴페인까지 다양한 술에 두루 쓰이는 잔이라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면 디캐프리오가 샴페인이 든 쿠프 글라스를 치켜 올리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플루트 형태의 잔이 나오기 전까지 실제로 많은 사람이 샴페인 잔으로 쿠프를 애용했다고 해요.








“‘쉐어드 키친’이 아닌 ‘쉐어드 아파트먼트’라고 할까요? 이를테면 에어비앤비에서 주방과 다이닝 공간만 따로 떼어 빌려주는 형태인 거죠.”




공간을 세 가지 섹션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각각 설명해주신다면요?

(홍지원) 일단 와인, 맥주, 전통주 등을 소매가로 판매하는 보틀 숍이 있고요. 술과 안주를 내는 일반적인 형태의 테이스팅 바, 그리고 아일랜드 키친이 딸린 쉐어드 바가 있어요. 쉐어드 바의 경우 자기가 원하는 술과 음식을 들고 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요. 주방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것도 가능하고요. 대신 1인당 6만 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그중 5만 원을 가게 안에서 술이나 안줏값으로 소진하는 게 규칙입니다. 뒷정리는 간단히 애벌 설거지만 해주시면 되고요.



쉐어드 바의 운영 방식이 재미있네요. 요즘 공유 오피스, 공유 차량에 이어 공유 주방이 대세잖아요.

(손기은) 어찌 보면 쉐어드 바도 공유 경제 개념에서 출발한 기획이라 할 수 있어요. 저희 셋이 커버하기에는 업장 규모가 너무 커서, 남는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했거든요. 회의 끝에 손님들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공유형 주방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죠. 바에서 주방을 공유한다는 콘셉트가 좀 낯설어서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손님이 많았어요. 지금은 너무들 알차게 이용해서 탈이지만요.



본래 공유 주방은 하나의 주방을 여러 창업자가 나눠 쓰는 사업 모델이잖아요. 그간의 공유 주방이 사업자 중심이었다면 라꾸쁘의 공유 주방은 사용자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손기은) 일반적인 공유 경제에서 이야기하는 공유 주방하고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고 봐요. 저희는 손님들이 술집을 공유하는 개념에 가까우니까요. ‘쉐어드 키친’이 아닌 ‘쉐어드 아파트먼트’라고 할까요? 이를테면 에어비앤비에서 주방과 다이닝 공간만 따로 떼어 빌려주는 형태인 거죠.



라꾸쁘의 공유 주방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뭘까요?

(홍지원) 요즘 홈 파티가 유행이잖아요. 배달 시스템도 워낙 잘 되어있고요. 이런 흐름이 저희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번은 단체 손님이 회식 예약을 잡았는데,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미리 구입해서 저희 가게로 배달해두시더라고요. 배달 음식으로 포틀럭 파티를 여는 분들도 있고요.

(손기은) 홈 파티의 수고를 덜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인 것 같아요. 아무리 작은 파티라도 집에서 하면 설거지가 어마어마하게 나오잖아요. 술잔도 인원수만큼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요.







“아마추어 요리사가 자기 집 주방을 벗어나 이곳에서 자신의 요리를 지인들에게 판매해보는 거죠. 본래 라꾸쁘는 술 좋아하는 사람들의 놀이터 같은 공간이니까요.”




그간 쉐어드 바를 이용한 손님 중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요?

(홍지원) 멜론만 네 통 가져온 손님들이요. 스페인에서 직접 사 온 프로슈토를 곁들여서 아주 맛있게 드시고 가셨어요.

(손기은) 마지막 해장까지, 그야말로 본전을 뽑고 간 애주가들이 있었어요. 조개찜을 하고 남은 조개를 라면에 넣어 드시는 걸 보고 고수가 왔구나 싶었죠. (웃음)



‘놀이터처럼 즐거운 멀티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원데이 클래스, 시음회 대관 등의 행사를 꾸준히 기획 중이고요.

(손기은) 대표적인 게 위스키 클래스와 와인 클래스예요. 위스키 클래스는 한 달에 한 번 제가 직접 진행하고요. 위스키에 대해 알고 싶지만, 막상 바에 가는 건 망설여지는 분들에게 바텐더와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스킬을 가르쳐드리고 있어요. 양 대표님이 하는 와인 클래스는 고정 팬이 많아서 한 달에 두 번 진행하고 있고, 홍 대표님의 플라워 클래스도 곧 시작할 예정이에요.



최근에는 셰프를 초청해 태국 음식 쿠킹클래스를 열기도 했네요.

(손기은) 이번 행사를 레퍼런스 삼아 앞으로 다양한 분들을 초청해보려고 해요. 일종의 팝업 다이닝 형식으로요. 프로페셔널 셰프도 좋지만 저희가 관심 있는 건 집에서 요리를 즐기는 열정적인 ‘홈 쿡’이에요. 아마추어 요리사가 자기 집 주방을 벗어나 이곳에서 자신의 요리를 지인들에게 판매해보는 거죠. 본래 라꾸쁘는 술 좋아하는 사람들의 놀이터 같은 공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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