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로렌 블랙 라벨 스타일’로 꾸몄다는 그의 보문동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갈고닦은 한 남자의 취향과 기호를 엿보았다.
김창규는 라이프스타일 업계의 소문난 재주꾼이다. 10년 동안 패션·시계 전문 잡지 기자로 일하는 동시에 세트 스타일리스트, 광고 일러스트레이터, 팝 아티스트로 크고 작은 외도를 꾀한 그는 독립 후 콘텐츠 회사를 운영하며 남자의 취향에 대한 유튜브 채널을 오픈하는 등 심상찮은 이력을 이어가고 있다.
거실과 주방만 촬영을 허락했는데, 다른 방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남들한테 보여줄 만한 상태가 아니라서요. 거실을 제외한 다른 공간은 인테리어를 거의 안 했는데, 실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내버려 둔 것도 있어요. 공간이 편할수록 집중이 잘 되거든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잖아요. 남자의 스타일과 취향에 대한 강의도 자주 하시고요. 근사한 서재나 작업실에 대한 갈증이 있을 법한데요.
프리랜서가 된 후에도 공간을 따로 얻지 않았어요. 직장보다 집에서 더 능률이 오르는 편이라서요. 왜 대학생 자취방 같은 분위기 있잖아요. 전 그런 데서 오히려 일이 잘돼요. 거실에만 힘을 준 이유도 비슷해요. 일하다 나왔을 때 전혀 다른 무드의 공간이 펼쳐졌으면 했거든요. 집 안에 집 같지 않은 근사한 휴식 공간이 있었으면 했어요.
청화백자부터 사슴뿔 박제까지 예사롭지 않은 소품이 많은데, 인테리어를 하면서 특별히 참조한 사조나 스타일이 있나요?
처음부터 ‘랄프 로렌 블랙 라벨 스타일’이라는 정확한 목표가 있었어요. 아내와 제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브랜드 라인이죠. 돈이 더 있었다면 랄프 로렌 홈에 아예 통째로 인테리어를 맡겼을 거예요.
“거실에만 힘을 준 이유도 비슷해요. 일하다 나왔을 때 전혀 다른 무드의 공간이 펼쳐졌으면 했거든요. 집 안에 집 같지 않은 근사한 휴식 공간이 있었으면 했어요.”
특정 패션 브랜드의 스타일을 인테리어에 적용하다니, 역시 잡지 에디터 출신답네요. 근데 랄프 로렌 블랙 라벨 스타일이 정확히 뭔가요?
아메리칸 헤리티지의 정수가 브룩스 브라더스라면, 랄프 로렌은 그보다는 영국 스타일을 동경하는 미국 사람이 이를 재해석한 결과물에 가까워요. 이 정체성을 축으로 다양한 라인을 전개하고 있죠. 더블 알 엘(RRL)이 미국식 컨트리 라이프를, 퍼플 라벨이 영국적 색채의 하이엔드 감성을 대변한다면 블랙 라벨은 뉴욕 여피족의 모던한 취향에 랄프 로렌 특유의 클래식한 뉘앙스를 얹은 느낌이에요. 블랙 라벨의 카탈로그를 보면 이름 그대로 무채색 위주의 공간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그중 번쩍거리는 금속, 1950~60년대풍 가구처럼 특징적인 요소들을 그대로 적용했어요. 산호초, 청화백자, 사슴뿔 박제, 위스키 액세서리 등 랄프 로렌이 인테리어를 제시할 때 즐겨 쓰는 오브제들을 포인트로 더하고요.
아내분이 플로리스트이고 감각이 남다르신 거로 알아요. 인테리어를 하면서 두 사람의 취향이 부딪힌 적은 없나요?
처음에는 집이 너무 차갑게 느껴질까 걱정하더라고요. 지금은 다행히 만족해하고 있지만요. 아내랑 처제가 ‘도버 더 플라워 부티크’라는 꽃집을 운영하는데 실은 그곳 인테리어도 제가 했어요. 잡지 기자로 일하면서 세트 스타일링을 병행한 데다, 인테리어 디렉팅 경험도 꽤 있어서 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초반에 두 사람이 엄청나게 불안해했던 기억이 나요. 새하얀 벽에 몰딩까지 황금색으로 칠했더니 클래식하다 못해 느끼함이 철철 흘렀죠. 나중에 가구 들어오고 완성된 모습을 보고 나서야 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라고요. 근데 제가 거실까지 이렇게 꾸미니까 아내 말이, 퇴근하고 왔는데 계속 회사에 있는 느낌이라고. (웃음)
나만의 인테리어 팁 하나만 알려주신다면요?
우리 집에는 소파를 제외하면 비싼 게 하나도 없어요. 청화백자 여섯 점도 인천 차이나타운이랑 청계천 돌아다니면서 하나하나 발품으로 모은 거예요. 거실에 있는 장식장은 을지로에 있는 업체에 주문 제작했고요. 원래는 이보다 더 클래식한 분위기를 원한 터라 가구도 전부 원목으로 하고 싶었는데 예산이 받쳐주질 않았어요. 원목은 잘못 쓰면 나뭇결에서 싸구려 태가 확 나잖아요. 그런 태를 감추고 싶어서 가구는 검은색으로 통일하고, 대신 월넛으로 된 소파 프레임을 까맣게 칠했어요. 가끔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할까요.
“저에게 손님 초대는 접대 성격이 짙어요. 비즈니스로 신세 진 분들에게 대접하는 의미죠. 타인에게 제가 사는 공간을 보여준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니까요.”
소확행이 유행하면서 남에게 방해받지 않는 휴식 공간을 뜻하는 ‘케렌시아’ 같은 개념이 다시금 부상하고 있어요. 남성 취향을 말할 때 자주 거론되는 남자의 동굴(맨케이브)도 비슷한 개념이고요. 아까 작업실이 따로 필요 없다고 하셨는데, 나만의 공간에 대한 생각도 그와 같은지 궁금해요.
전 혼자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외로움을 워낙 많이 타서요. 온종일 혼자 있느니 차라리 싫어하는 사람이랑 단둘이 한 공간에 있는 게 더 좋을 정도예요. 다만 집 밖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제가 미대를 졸업하고 한때 그림으로 먹고살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유명 작가가 아니다 보니 전시를 해도 그림이 잘 안 팔렸고, 상업 미술을 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전업 기자가 된 후로 그림 생각을 잊고 살았는데 요즘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생겼어요. 집 근처에 작은 방을 얻어서 화실로 써볼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에요.
집에 친구들을 자주 초대하는 것 같아요. 남에게 집을 보여준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손님 초대는 접대 성격이 짙어요. 비즈니스로 신세 진 분들에게 대접하는 의미죠. 제 인스타그램을 보고 나도 한번 불러 달라고 조르는 분이 많은데 사실 쉬운 결정은 아니에요. 타인에게 제가 사는 공간을 보여준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니까요.
집 안에 미니 바가 있는 걸 보니 술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듯해요. 술집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40대 초반에 저만의 바를 운영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27살 때 지금의 아내랑 일본에 놀러 갔는데 그때 오마카세 스타일 바를 처음 겪어봤어요. 디귿 형태의 작은 바였는데, 메뉴판 없이 마스터가 자신이 원하는 요리를 그때그때 만들어 파는 영업방식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손님들도 오랜 단골이 대부분이라, 가격도 묻지 않고 주는 대로 먹고 마시고요. 이제까지 제가 해온 모든 일은 바를 열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양한 주제를 전천후로 소화하는 바텐더가 되기에 잡지사 에디터만큼 유리한 직업도 없으니까요.
100평짜리 집에 산다면 해보고 싶은 인테리어가 있나요?
일단 구조부터 바꿀 것 같아요. 우리나라 집들은 안방이 필요 이상으로 크잖아요. 나중에 집을 짓는다면 안방은 꼭 콤팩트하게 만들자고 아내랑 합의를 봤어요. 집이 100평쯤 되면 저도 저만의 공간 하나쯤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벽 한 면에 중국식 장을 짜 넣고, 선반에 오리엔탈 한 도자기랑 새 박제도 막 올려놓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