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공간 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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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공간 큐레이션

김선아 , 윤광준

Text | Bora Kang
Photos provided by 미호, 을유문화사

언제부터인지 예쁜 곳, 멋진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 단순히 SNS에 근사한 사진을 올리려는 마음을 넘어, 좋은 공간을 향유하고 그로써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성수동의 대림창고를 좋아하는 사람과 회현동의 피크닉을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서 상대에 대한 호감을 저울질하기도 한다. 공간이 취향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좋아하는 카페나 갤러리에 대해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공간이 왜 좋은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모든 취향이 그렇듯 공간에 대한 취향 또한 그것이 좋은 이유를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우리가 안목 있는 저자의 공간 큐레이션을 다룬 아래 두 책에 주목하는 이유다.

건축가 김선아의 <여기가 좋은 이유>(미호 펴냄)는 20곳의 익숙한 장소를 통해 좋은 공간의 이유를 탐색하는 일종의 ‘공간 독후감’이다. 저자는 빛, 구조, 콘셉트, 비움 등 다양한 공간적 특징을 짚어가며 마치 영화평론가가 영화 속 숨은 의미를 설명하듯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의 비밀을 야금야금 풀어낸다.




ⓒ 김선아


ⓒ 김선아




‘성수’를 담은 디테일의 정수, 오르에르

“성수동에서 진행된 공장 리모델링의 대부분은 지난 시간의 흔적을 최대한 그대로 남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여기 원래 공장이었어. 근데 우리가 다르게 쓰고 있는 거야. 신기하지? 신기하지?’라고 힘껏 소리치는 공간이 많은 반면, 오르에르는 그렇게 뽐내지 않아도 은연중에 티가 나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어느덧 성수동의 랜드마크가 된 카페 오르에르의 힘을 디테일에서 찾는다. 곡선이 많은 옛 가구, 일명 ‘도기다시’라 불리는 테라조 바닥, 패턴 벽지로 마감한 벽, 따뜻한 전구색 조명과 나무 창틀 등이 합쳐져 마치 옛날 주택 같은 오르에르만의 온기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건축가의 눈으로 찾아낸 좀 더 은밀한 ‘한 끗 차이’도 존재한다. 저자는 평평하면서도 입체감이 살아 있는 황동 간판, 복도 콘크리트 바닥에 시공한 얇은 황동 띠, 문손잡이부터 냅킨 문진까지 몽땅 황동색으로 통일한 공간의 섬세한 디렉팅을 오르에르가 다른 공간과 차별되는 결정적 매력으로 꼽는다.




ⓒ 김선아




아이들이 뛰노는 정원, 카페 진정성

좋은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이 인생의 낙인 저자는 평소 눈여겨보던 카페가 공사를 끝내고 본점을 오픈했다는 소식에 김포공항까지 가서 차를 빌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달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카페 문이 열리는 순간, 커피 바가 공간의 중심에 자리 잡은 특이한 구조에 먼저 주목했다. 이는 ‘카페의 작업 공간을 구석으로 몰아 최대한 좌석을 많이 마련하고, 더러워지기 쉬운 작업 공간은 숨기고 싶어 하는 일반 카페 인테리어와 대치되는 부분’이다.

바깥 풍경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너른 창은 사람들로 하여금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게 만드는 요소다. 마당에 조성된 잔디 정원은 ‘운동장보다는 작고 아파트 뒤뜰보다는 큰 공간’, 요컨대 아이들이 뛰어놀기 딱 좋은 크기다. 실내에서 유리 벽 너머로 아이들 모습이 훤히 보이니 부모 입장에서는 안심이다.




ⓒ 김선아




서울이 지닌 시간의 단면, 눅서울

저자는 “좋은 리모델링이란 오랫동안 한 장소의 단면들을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후암동 골목에 삐죽 튀어나온 트리하우스 ‘눅서울’을 향한 찬사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지은 적산 가옥을 리모델링하고 그중 일부를 게스트하우스로 재해석한 이 협소 주택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게 한다. 손때 묻은 베틀로 만든 나무 손잡이가 그렇고, 정겨운 다듬이판으로 대신한 입구 발판이 그렇다.

오래된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건축주는 80년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건물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기로 결정했다. 총 11장의 벽지를 떼어낸 끝에 드러난 흙벽 일부를 그대로 두고, 천장에 지나가는 전선을 노출한 것도 그래서다.



윤광준의 <내가 사랑한 공간들>(을유문화사)은 삶의 안목을 높여주는 공간 큐레이션을 제안하는 책이다. 글 쓰는 사진작가인 저자는 남다른 안목과 조예를 바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공간 20곳을 추리고, 각 공간이 지닌 아름다움의 실체를 인문적·미학적 시선에서 섬세하게 분석한다. 미술, 음악,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아우르는 저자의 폭넓은 관점은 이따금 건축가, 디자이너 등 한 분야의 전문가가 발견하지 못한 공간의 색다른 매력을 찾아낸다.




ⓒ 윤광준




빛과 식물이 있는 지하 공간, 녹사평역

저자가 꼽은 아름다운 공간 중에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적인 장소도 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이 대표적이다. 본래는 서울시청 이전을 전제로 지하철 11호선의 환승역으로 계획되었다가 시청 이전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크게 완공된, 과정의 역설 때문에 오히려 특색 있는 역으로 남게 된 곳이다. 저자는 내부를 비운 원통형 설계에 먼저 주목한다. 돔형 아트리움이 설치된 국내 유일의 지하철역이라는 것이다. “녹사평역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은 하늘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효과에서 나온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빛의 각도가 실내의 그림자를 이동시킨다. (중략) 빛으로 생기는 공간의 생동감이란 기대 이상이다. 2층 난간에 서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자면 지구가 매우 빠른 속도로 돌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

한편 금속과 유리로 만든 기다란 에스컬레이터는 영화에 나오는 미래 도시를 연상케 한다. 거대한 원통 속에 에스컬레이터로 중첩된 직선의 풍경이 흥미롭다. 공간에 빛이 닿아 생긴 지하 건물 바닥의 무성한 식물 또한 지하철역이라는 의외의 공간과 맞물려 생경한 감흥을 자아낸다.




ⓒ 윤광준


ⓒ 윤광준




물에 비친 미술관, 뮤지엄 산

“산의 지형을 거스르지 않는 건물 배치가 인상적이다. 능선을 따라 건물이 길게 이어져 마치 산과 하나인 건물 같다.”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뮤지엄 산SAN’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안도 다다오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안도는 주변 환경과 조화로운 자연 친화적 접근을 바탕으로 하되, 한국의 정서와 미감을 존중해 전매특허인 노출 콘크리트 대신 인근의 돌을 캐내 벽에 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강원도 원주에서만 나는 돌이 뮤지엄 산의 가장 큰 건축적 특징을 만들어낸 셈이다.

또한 건물 주위에 물을 끌어들이는 안도 특유의 건축 기법도 볼 수 있다.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미술관 건물은 빛과 물결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표정을 바꾼다. “수면에 하늘이 비치면 건물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다. 자연의 일부가 된 건축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중략) 어지간히 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아름다움을 지나치지 못한다. 건축이 예술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 윤광준


ⓒ 윤광준




폐허의 아름다운 변신, F1963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에 있는 F1963은 옛 공장을 개조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F1963의 F는 공장(Factory)을, 1963은 현 위치에 고려제강 수영 공장이 완공된 연도를 뜻한다. 고려제강은 쓰임을 다한 공장 부지에 호텔이나 상가를 짓는 대신 옛 공장이 지닌 가치를 보존하기로 마음먹었다. 작업용 철판을 그대로 적용한 바닥재, 실재했던 공장 느낌을 생생하게 전하는 천장의 목제 트러스, 테이블을 대신한 낡은 철제 작업대 등이 그 흔적이다.

건물 안에는 F1963이 직접 운영하는 도서관과 전시장 및 공연장으로 사용하는 석천홀을 비롯해 카페 ‘테라로사’, 막걸리 브랜드 복순도가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등 다양한 매장이 입점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은 카페 테라로사다. 저자는 이곳의 흡인 요소로 공간의 독특함을 꼽는다. “관행과 상식의 믿음이 깨지며 풍기는 후련함이 있다. 서로 널찍하게 앉아도, 오래 앉아 있어도 눈총을 주지 않는다. 혼자 있어도, 여럿이 있어도 즐겁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신기하다.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는 장소로 이곳을 선호하는 이유일 것이다.” 전문 큐레이터가 엄선한 예술 서적으로만 채운 도서관 또한 F1963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저자는 “공간은 보는 게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철학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경험하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무엇을 할까’라는 선택이 ‘어디서 어떻게’로 옮아간 지금, 우리가 아름다운 공간들을 부지런히 경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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