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고 여행하는 것도 비거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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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친환경, 오가닉, 재생, 비건

먹고 자고 여행하는 것도 비거니즘

영국 런던 힐튼 뱅크사이드 외

요즘 비거니즘은 음식만큼이나 패션, 디자인, 여행과 친밀해졌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쓰레기장에서 동물성 재료를 대체할 재료를 찾고, 화장품 제조자들은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거나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크루얼티프리cruelty-free 제품을 연구하느라 분주하다. 비건 호텔에는 “물은 텀블러로 마시고, 재활용 쓰레기는 따로 버려주세요!”라는 지침이 있다.





최근 1년간 비거니즘은 트렌드처럼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은 물론 여행법도 변화시켰다. 인구 대비 채식주의 음식점이 많은 미국 포틀랜드, 태국 치앙마이, 베트남 호찌민, 독일 베를린 등 친환경 여행지가 급부상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인트레피드 트래블처럼 소규모 환경 운동 여행 패키지나 채식 미식 투어를 개발한 여행사도 생겨났다. 구글에서 ‘비거니즘 여행법’을 검색하면 이런 말이 등장한다. “동물원, 수족관 방문하지 않기”, “코끼리 쇼를 보거나 코끼리 트레킹 체험하지 않기”, “채식주의 식당을 찾아주는 웹 해피카우 활용하기”, “불필요한 이동으로 인한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베지 비자 같은 여행 정보 사이트를 탐색해 미리 계획 짜기”, “가능하면 비건 호텔에서 숙박하기”.










영국 런던의 힐튼 뱅크사이드Hilton London Bankside 호텔에는 비건 스위트룸이 있다. 이곳을 꾸민 건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닌 푸드 디자인 그룹 봄파스 & 파르Bompas & Parr다. “우리는 비거니즘이 건강 이슈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일어나는 삶의 화두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비건 인테리어의 핵심은 편의와 아름다움만큼 환경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다. 이 말은 선입견을 깨뜨리는 소재와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봄파스 & 파르는 버섯 균사체를 길러 나무나 가죽을 대신하거나 지구온난화에 대비해 녹지 않는 얼음을 개발한 곳이다.

봄파스 & 파르는 파인애플에서 추출한 피냐텍스Piñatex라는 신소재를 개발해 이용했다. 파인애플잎에서 섬유질을 추출해 고무 성분을 제거한 것인데 가죽보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통기성이 뛰어나다. 호텔 키는 플라스틱 카드 대신 피냐텍스 조각을 사용한다. 객실 내 침실, 소파, 책상 등은 가죽, 울, 양모 소재를 없애고 피냐덱스로 덮었다. 베개와 이불은 오리털 대신 유기농 순면과 메밀로 채웠다. 객실 바닥은 카펫 대신 대나무로 만든 100% 재생 가능한 석회석 바닥재를 깔았다. 욕실에는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샴푸, 린스, 샤워젤이 배치되어 있고, 미니바에는 천연 과일과 견과류로 만든 스낵과 건강한 음료가 가득하다. 객실 청소를 할 때도 독성이 없는 윤리적 제품을 사용한다.




비건 인테리어는 식물성 소재 개발이 첫 단추다. (중략) 많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이 3D 프린팅 기술과 DNA 분자구조 변경 기술을 이용해 인조가죽을 제작하는 데 뛰어들고 있다.




비건 인테리어는 식물성 소재 개발이 첫 단추다. 특히 비윤리적 동물 학대와 가공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히는 가죽을 대체하기 위해 피냐텍스, 단백질 가죽, 버섯 가죽, 해파리 가죽, 와인을 만들고 버리는 포도 껍질 등으로 만든 와인 가죽 등 여러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많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기업이 3D 프린팅 기술과 DNA 분자구조 변경 기술을 이용해 인조가죽을 제작하는 데 뛰어들고 있다. 쓰레기를 활용하는 이들도 있다. 플라스틱을 살균 처리 후 녹여서 가느다란 실을 만들어 직조에 활용하는 식이다. 페인트 또한 순수 석회로 만든 천연 재료 페인트를 개발 중이다. 발색이 약하고 건조 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지만 유독가스를 배출하거나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폐기물을 남기지 않는다.

비건 호텔이 사람, 동물, 환경을 대등하게 고려하는 방식은 좀 더 예민하고 섬세하다. 호텔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왜 일탈을 위한 여행에서조차 환경을 고려해야 하는가? 왜 호텔에서조차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가? 비건 호텔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런 의문에 조곤조곤 답을 한다. 가족 대대로 스코틀랜드에서 비건 호텔을 운영해오고 있는 사오르사 1875 Saorsa 1875 대표 산드라 맥라렌스튜어트Sandra McLaren-Stewart는 이렇게 말한다. “손님 중에서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도 많다. 그들은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 또는 호기심으로 이곳을 찾는다. 그래서 호텔 직원들은 보다 엄격한 자세로 비거니즘은 생명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입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의 서비스는 비건주의 철학을 전달하고 함께 소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녀는 유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빵을 제공하는 ‘서비스’보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비거니즘에 맞춘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보다 스태프와 손님이 함께 실천하고 변화시키기를 바라는 것이다. 호텔은 손님에게 가구와 식기용품이 수리한 재활용품이며 대부분 가족 대대로 물려 쓴 제품이라는 것을 널리 알린다. 가능하면 침구를 깨끗하게 사용하고 적은 양의 쓰레기를 배출하도록 요구한다. 기존 호텔 서비스 관점에서는 ‘불편’과 ‘불만’으로 여길 사항도 이곳에서는 ‘협력’과 ‘보람’으로 전환된다. 전기 또한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기업체 것을 이용한다. 호텔 쓰레기는 농장 내 퇴비로 활용한다. 호텔 식자재 일부는 호텔 농장에서 수확한 것이다. 비건 호텔은 육류를 제외한 재료뿐만 아니라 비건 인증 마크를 획득한 식재료를 이용하는 것이 원칙. 욕실에는 공정 무역 인증을 받은 타월이 놓여 있고 재활용으로 만든 재생 휴지가 걸려 있다.

영국만큼 비건주의자 비율이 높은 나라가 독일이다. 친환경 가게가 가득한 프리드리히샤인Friedrichshain 거리에 위치한 알모도바 호텔Almodóvar Hotel은 손님이 함께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기를 원하며 객실 내에 절약 지침표가 있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적절한 실내 온도를 알려준다. 객실에는 냉장고가 없다. 대신 레스토랑에서 건강한 채식 메뉴를 즐기기를 권한다. 방은 천연 페인트, 나무, 돌 등을 이용해 소박하게 꾸몄다. 루프톱에는 바 대신 사우나가 있다. 별빛 아래서 땀을 흘리며 상쾌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불편’이 ‘혜택’이 되는 접근법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지속 가능한 럭셔리 호텔을 추구하는 원 호텔1 Hotel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미국, 파리, 중국 등 세계 곳곳에 위치한 5성급 원 호텔은 플라스틱 패키지를 줄이자는 의도로 욕실에 샴푸, 린스, 샤워젤 모두 대용량으로 비치해두었다. 객실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는 통이 따로 있다. 객실에 구비된 생수도 종이 팩에 들어 있다. 복도에는 아침에 근처에서 수확한 과일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텀블러에 물을 담아 갈 수 있도록 정수 시설을 설치해놓았다. 호텔 현관 고리에 걸어두는 방해 금지 표지판도 작은 돌멩이가 대신한다. 눈을 두는 곳곳에서 보이는 자연물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모두는 자연을 보호할 책임을 공유하고 있고, 원 호텔은 그 책임 의식을 호텔 원칙으로 삼았다. 풍요롭고 행복한 삶은 주변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호텔 디자인과 서비스는 타인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대화의 화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SH 호텔스 & 리조트 대표 아라시 아자바르진Arash Azarbarzin은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것만으로도 동물 보호, 환경 보존 등 지구와 상생하는 활동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는다. 인식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첫 번째 단계. 비건 호텔은 단지 비건주의자만의 여정이 아니라 비거니즘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 하룻밤 경험은 사람, 동물, 자연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지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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