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의 인더스트리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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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의 인더스트리얼 하우스

피에트 하인 에크 외

Text | Angelina Gieun Lee

내 집의 인테리어 디자인 스타일을 인더스트리얼로 잡았다고 가정하자.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그와 비슷한 느낌을 차용하지만, 스타일만 흉내 내서는 인더스트리얼 본연에 다가가기 어렵다. 그 대신 그냥 실제 공업 시설로 사용된 건물을 집으로 탈바꿈 시켜 보는 건 어떨까. 좀 더 과감히 말이다.




단독 주택인 그린 하우스 전경, ©Thomas Mayer




기존 주거 용도로 설계한 건물을 개보수 해도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그런데 다른 용도로, 심지어 공업 시설이었던 건물을 집으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발상은 생경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겸 건축가 피에트 하인 에크 Piet Hein Eek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가 동료 건축가 이기 데커스 Iggy Dekkers와 협업해 완성한 RAG 및 그린 하우스 Green House는 공업 시설로 사용된 공간을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각각 공동 주택과 단독 주택으로 변신시킨 사례다.




공동 주택인 RAG 전경, ©Thomas Mayer



RAG로 탈바꿈하기 이전, 필립스의 생산 공장 단지 내 배수 및 배기 펌프 시설로 사용된 후 폐허가 된 모습, 사진 제공 Eek en Dekkers




“입주자는 인더스트리얼 콘셉트를 제대로 구현한 집에서 살고 싶어 했는데, 흉내만 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RAG와 그린하우스로 사용된 건물은 한때 필립스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운영하던 생산 공장 단지 내에 있던 부대 시설이었다. 폐허가 된 건물은 분양을 통해 입주자를 모았고, 입주자 각자의 니즈를 받아 기존 공간에서 가용한 자재와 기술적 한계를 감안해 그 균형점을 찾고자 했다. 이에 대해 피에트 하인 에크는 “제 작업을 관통하는 철학은 내게 주어진 모든 요소를 활용해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라며, “RAG와 그린 하우스 프로젝트도 그 연장선에 놓인 것이죠. 입주자는 인더스트리얼 콘셉트를 제대로 구현한 집에서 살고 싶어 했는데, 흉내만 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기존 용도를 갖고 있던 공간인 만큼 안전 상태, 내장재, 가능 기술 등의 ‘주어진 요소’는 그런 조건을 모르거나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니즈를 요구하는 의뢰인과 마찰을 빚을 여지를 준다. 거기에 공용 건물의 주변 환경 또한 주거 목적을 위한 쉽지 않은 장애 요소다.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의뢰인의 목소리는 가장 존중해야 할 대상입니다. 대립하거나 타협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마땅한 것이죠”라고 피에트 하인 에크는 말한다.




RAG 내부 모습, ©Thomas Mayer


RAG 내부 모습, ©Thomas Mayer




철거하지 못한 계단에 맞추어 공간 구획을 하다 보니 6개의 대형 공간과 4개의 소형 공간으로 나뉘어 공간 구성이 다양해진 것이다. 그 결과 입주자의 니즈를 투영해 공간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필립스 공장 부지 내에 있던 배기 및 배수 펌프 시설을 활용해 당초 목표한 콘셉트를 구현한 공동 주택을 짓고자 했고, 입주자의 니즈를 반영하되 각각의 프라이버시 또한 보장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예컨대 공동 주택인 RAG의 경우 피에트 하인 에크와 이기 데커스는 건물 가운데를 과감히 뚫어 복도 공간을 만듦으로써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처음 예상한 입주 가구 수는 줄어들었지만 자연스럽게 거주 공간 사이에 거리가 형성되어 입주자의 프라이버시 노출을 방지할 수 있는 효과가 생겼다. 또 자연 채광과 미적인 요소도 확보할 수 있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내부 계단은 있던 그대로 두었다. 흥미로운 것은 제약으로 인해 생긴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 것이 오히려 의뢰인의 니즈에 더 부합된 결과를 만들어 낸 것. 본래 규모가 동일한 8개 주거 공간을 분양하려고 했는데, 철거하지 못한 계단에 맞추어 공간 구획을 하다 보니 6개의 대형 공간과 4개의 소형 공간으로 나뉘어 공간 구성이 다양해진 것이다. 그 결과 입주자의 니즈를 투영해 공간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피에트 하인 에크는 집에 대해 이렇게 밝힌다. “제가 생각하는 집은 들어서는 순간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는 공간이에요. 제가 살기 위해 현재 프랑스 마발레 Mavaleix에 짓고 있는 집도 제 디자인 철학에 따라 새로운 건물을 짓는 대신 기존에 있던 물레방앗간을 활용하고 주변의 자연환경을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머릿속에 그리던 집을 현실로 이끌어 내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낸 다음 행동에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한 동력은 내 앞에 주어진 여건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될 것이다. 때로는 현실과 내 이상이 대립각을 세울 수 있지만, 이를 포용함으로써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결과를 얻어 그 이상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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