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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조차 남기지 않기 위해 머무는 곳

춘천 의림여관

Text | Sanghee Oh
Photos | Jeayoon Kim

춘천에 있는 의림여관은 ‘사전적 정의 그대로’ 여관이다. 건물이 자연의 일부인 듯 밤나무 사이에 넌지시 놓인 이 여관에는 ‘아름다운 숲속 나그네의 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예전부터 누군가가 오갔던 듯 자연스럽고 입구부터 늘어선 콘크리트는 마치 일부러 사유의 시간을 내주는 듯한 여백이 느껴진다.






‘일정한 돈을 받고 손님을 묵게 하는 집’. 여관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여관, 여인숙, 모텔, 호텔, 민박…. 부르는 이름은 많지만 모두 여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사실상 여관의 의미는 근대에 들어 좀 더 낭만적, 역사적으로 변모했다. 한국 현대미술계 거장인 이응로 화백, 서양화가 나혜석 화백이 머물렀던 수덕여관(충청남도 예산)은 전시 공간 겸 템플스테이로 활용하고,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한 보성여관(전라남도 보성)은 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다. 과거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드나들던 발걸음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서울 보안여관은 복합 문화 공간이 되었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의림여관은 ‘사전적 정의 그대로’ 여관이다. 하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하다. 건축물이 자연의 일부인 듯 밤나무 사이에 넌지시 놓인 이 여관에는 ‘아름다운 숲속 나그네의 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예전부터 누군가가 오갔던 듯 자연스럽고 입구부터 늘어선 콘크리트는 마치 일부러 사유의 시간을 내주는 듯한 여백이 느껴진다. 대지 면적이 1652㎡인 이곳은 크게 호스트가 머무는 공간과 게스트가 머무는 객실 180㎡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비밀스러운 곳’이기를 바라는 건축주의 바람대로 객실은 서로 멀찍이 떨어진 딱 2개의 독채로만 구성했다. 대지 면적과 비교해보면 절반 이상을 자연에 내준 셈이다.








이는 건축·공간 디자인을 맡은 100A 어소시에이츠의 철학이 드러난 지점이기도 하다. 이전에 한 인터뷰에서 100A 어소시에이츠의 박솔하 공동 대표는 “공간이 비었을 때 본연의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곳 역시 그러한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채우고 만들어서가 아니라 비워둔 날것의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의림여관은 ‘건축한다’는 개념보다는 ‘위안慰安을 위한 경계를 만든다’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는 것이 100A 어소시에이츠의 얘기다.



“‘건축한다’는 개념보다는

‘위안慰安을 위한 경계를 만든다’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



회색의 콘크리트와 붉은 대문, 객실을 이루는 목재 등 건물이 두드러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재를 선택했다. 특히 검푸르스름한 빛을 띠다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붉은빛을 띠는 대문의 열연강판 소재부터 창밖 숲을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용한 붉은 목재까지, 모두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담아내며 변하는 특징이 있다.










의림여관에 들어오면 외부에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고,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객실의 게스트와 호스트가 마주치는 일이 없다. 어찌 보면 ‘일부러’ 더한 단절감이다. 건물 외벽에는 창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주된 특징으로, 이 역시 일상의 스트레스나 소음을 완벽히 막아보려는 물리적 혹은 상징적 장치다. 하지만 답답하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객실 한쪽과 욕실에 통창을 내고 그 바깥으로 조성한 숲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객실 바닥에는 평상을 두어 편안하게 외부를 감상할 수 있다. 이 평상은 나무와 눈높이가 맞게 섬세하게 디자인되었다.







이곳의 주방 또한 조금은 남다르다. 각 객실마다 실외 주방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데, 휴식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만 원하면 여행객들이 편하게 요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로 처음부터 기획했다. 주방 시설이 갖춰진 숙박 시설의 경우 휴식과 요리, 식사 공간의 경계가 모호할뿐더러 각각의 장소가 온전하고 정갈한 곳이 흔치 않은데, 그런 점을 보완해 원하는 경우 공유하되 그렇지 않을 경우 각자 독립된 식사도 가능하도록 선택의 여지를 넓혔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잠시나마 고립되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 이곳은 객실이 단 2개라는 점이 아쉽지만(예약이 쉽지 않을 것이기에) 단 2팀의 방문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단절과 고요함을 선사한다. 핸드폰을 10분 이상 손에서 놓는 일조차 어려운 우리에게 이곳은 진짜 쉬는 법을 제안한다. 공간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지만 제대로 쉴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의림여관은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여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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