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SPACE|가드닝, 공동주택, 친환경

독일 소시민들의 공동 할당 정원

베를린 보른홀머 가르텐 단지

Text | Dongmi Lee
Photos | Dan Mihai Pitea, CC BY-SA 4.0, Dongmi Lee

정부 땅을 서민에게 저렴하게 장기 임대해주고 정원으로 쓸 수 있게 하는 클라인가르텐 단지. 독일에는 이런 작은 정원 단지가 현재 120만 개 달한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정원 단지인 보른홀머 가르텐은 올해 125주년을 맞아 일반인에게 개인 정원을 오픈하고 그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베를린 북쪽, 프렌츨라우어베르크와 베딩 지역 사이에 위치한 보른홀머 가르텐Bornholmer Gärten은 베를린에 있는 클라인가르텐Kleingärten 단지 중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500여 개의 작은 정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보른홀머 가르텐은 정원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이곳을 지나다니는 동네 사람에게도 소중한 쉼터이자 산책길이며 개방된 공동의 정원이다. 각종 새와 나비, 벌이 모여드는 자연의 터전이자 야생 여우와 너구리가 사는 집터이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이 대규모 정원 단지가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여전히 남아 있고, 125년 동안 그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식물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진 요즘,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정원을 빌리려는 대기자가 계속 늘고 있다.





뮌헨 슈바빙 지역의 클라인가르텐 단지




클라인가르텐은 작은 정원이란 뜻이다. 150년 전 독일 킬Kiel 도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직접 채소나 과일을 재배해 먹을 수 있게끔 작은 땅을 나눠준 것이 시초였다. 클라인가르텐은 슈레버가르텐Schrebergarte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교육자이자 의사였던 슈레버 박사의 이름을 땄다. 하지만 그가 직접 정원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슈레버 박사는 아이들이 늘 위험한 거리가 아닌 정원에서 뛰어놀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의 사후 가족들이 그를 기리는 광장과 정원을 만들었고, 식물을 직접 키우고 체험하는 정원이 나중에 아이와 부모들의 교육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작은 정원을 슈레버가르텐이라 부르게 되었고, 1919년에는 할당 정원 및 소규모 임대 규정법률이 제정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클라인가르텐 운영의 기초가 되었다. 클라인가르텐은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감자와 채소를 공급하는 농지로 쓰이다가 전쟁 이후 꽃도 가꿀 수 있는 정원이 되었다.





1년 전 정원을 얻은 마이클 집의 실내 모습




주 정부, , 철도국 등 국공유지의 땅을 빌려 정원으로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클라인가르텐은 개인 소유가 아니다. 단지마다 소속 협회가 있고 이 협회들을 도와주고 관리·감독하는 지역 협회가 따로 있다. 이 때문에 정원을 가꾸는 데에도 여러 규칙이 따른다. 정원 면적은 베를린의 경우 보통 350㎡로, 정원 안에 있는 집 규모는 24㎡를 넘을 수 없다. 정원의 1/3 공간에는 과일과 채소 등 작물을 재배해야 하고, 1/3 공간은 원예나 어린이 놀이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정원 내에서 바비큐는 허용되지만 캠프파이어는 할 수 없고, 튜브형 물놀이장 설치는 가능하지만 땅을 파서 수영장을 만들지는 못한다. 클라인가르텐 초기에는 정원을 가꾸고 잠시 휴식하는 용도로만 허용했기 때문에 집은 창고로만 썼다. 상하수도 시설과 화장실, 전기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집 안에 부엌이나 화장실, 작은 거실을 만들 수 있고 전기도 들어온다. 드물게는 주거용으로 허가받은 집도 있으나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클라인가르텐의 울타리는 누구나 정원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낮게 설치되어 있다. 단지를 지날 때마다 그때그때 피는 꽃, 4월엔 벚꽃과 라일락, 5월엔 수국과 유채꽃, 6월엔 장미와 라벤다, 양귀비, 접시꽃 등을 만날 수 있는 이유다. 그 만발한 꽃을 구경하고, 수십 년 된 나무를 보고, 정원에 나와 식물을 손질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한다. 가끔 정원에서 딴 사과나 자두, 베리, 꽃을 바구니에 담아 밖에 놔두는 경우도 있다. 같이 나누고 즐기려는 마음이다. 집 밖을 나다니기 힘든 코로나 시대에 이런 개인 정원의 존재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좁은 아파트에 갇혀 있지 않고 작은 정원에서 자연을 느끼고 휴식을 취하며 답답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인가르텐은 주로 은퇴한 노인,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 다문화 가족 위주로 먼저 할당됐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이나 아이들이 정원을 가꿈으로써 정신적·육체적 휴식을 얻고, 자연을 직접 배우며, 커뮤니티의 연대감도 가질 수 있다. 아이에게는 자연의 놀이터가 되고 사회로부터 점점 소외되는 노인에게는 소중한 귀농 경험과 소속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대단위 공동체 정원은 도시 기온을 3~4℃씩 낮추고, 적절한 습도와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도 톡톡히 한다. 클라인가르텐이 독일 국민의 반 이상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말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보른홀머 가르텐 안에는 주택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큰 규모의 집도 몇 채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클라인가르텐을 갖고 싶어 한다. 문제는 대기자가 너무 많다는 것. 베를린의 경우 기본 3~4년을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 한번 빌린 정원은 임차인이 다시 내놓을 때까지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정해진 임대 기간이 없으니 내놓는 경우가 드물다. 개인 매매나 양도는 불가능하지만, 정원 일을 할 수 없게 된 노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허용된다. 요즘은 친구들끼리, 혹은 두세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가든 셰어링이 늘어나는 추세다. 1년 전부터 친구와 함께 정원을 가꾸는 카타리나는 아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거의 매일 정원에서 오후 시간을 보낸다. 코로나19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 없었던 기간에는 더욱 고맙고 유용한 공간이었다.




정원을 가꾸며 삶의 질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에요.”




정원을 가지려면 처음에 집값과 매년 정원 임대비를 내야 한다. 집은 협회의 중개와 절차에 따라 적정한 금액을 전 주인에게 주고 사는 것인데, 한화로 보통 300만 원대다. 정원 임대비는 매년 40~60만 원 정도. 베를린 같은 대도시에서는 70만 원 정도로 좀 더 비싸지만, 정원의 가치를 돈으로 따지자면 150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정원을 관리하는 협회는 모두 비영리단체로 운영한다. 클라인가르텐 단지 안에는 협회가 운영하는 비어 가든도 있다. 보른홀머 가르텐 내 비어 가든은 정원 손질 후 한잔하는 장소로, 가든 커뮤니티 사람들의 사랑방으로, 동네 사람들이 애용하는 싸고 맛있는 맥줏집으로 인기가 많다. 이번 125주년 행사를 위해서 보른홀머 가르텐 비어 가든은 콘서트장으로 바뀌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정원을 오픈해 커피와 케이크를 대접하며 지역 사람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정원을 가꾸며 삶의 질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 가치를 나누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죠.”




RELATED POSTS

PREVIOUS

집을 떠나 집을 생각하다
호텔 그라피 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