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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뮈스는 왜 초현실주의 공간에 빠졌나

자크뮈스 팝업 스토어

Text | Doyeon Lee
Photos | Jacquemus

온라인이 쇼핑의 주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한 지금, 패션 하우스는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감각적인 마케팅으로 패션업계에서 주목받는 디자이너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는 이번에도 발 빠르게 그 해답을 찾았다. 그가 꽂힌 건 오감을 자극하는 초현실주의 공간, 하이퍼피지컬 스토어다.





밀라노 팔라초 클레리치에 설치한 자크뮈스의 24/24 팝업 스토어.




하이퍼피지컬 스토어Hyperphysical Store는 최근 패션업계에 떠오르는 화두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쇼핑의 주요 플랫폼은 온라인이 되었고, 패션 하우스는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런 가운데 패션업계는 하이퍼피지컬 스토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았다. 이는 오감을 깨우는 공간 디자인과 자동화 시스템 등을 갖춘 초현실주의 매장을 의미한다.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가 지난해부터 선보이고 있는 24/24 팝업 스토어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24/24’는 24시간 쇼핑할 수 있는 무인 자판기를 설치한 팝업 스토어다. 새로운 컬렉션 출시 시점에 맞춰 파리, 밀라노, 런던 3개 도시에서 한시적으로 선보였다. 도시는 다르지만 각 팝업 스토어의 디자인 테마는 하나다. 바로 초현실적 분위기. 공간 내외부를 뉴 컬렉션의 키 컬러로 뒤덮고 매장 안에는 동일한 컬러의 제품을 진열한 자판기를 빼곡히 설치했다. 특히 지난 2월 선보인 밀라노 팝업 스토어는 주변 건축물과 대비를 이루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1653년에 지은 바로크 양식의 궁전 팔라초 클레리치Palazzo Clerici 안뜰에 화이트 큐브 박스의 스토어를 설치했는데, 마치 고대 유적지에 착륙한 UFO를 보는 듯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 남부의 수영장 탈의실을 모티브로 한 자크뮈스의 런던 팝업 스토어






지난 5월 런던 시내 세 곳에 오픈한 팝업 스토어는 규모뿐만 아니라 경험의 폭 또한 확장해 한층 진화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팝업 스토어에는 ‘르 블루Le Bleu’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에 걸맞게 세 공간을 욕실과 물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세 공간 중 프랑스 남부의 수영장 탈의실을 모티브로 한 스토어는 오감을 자극하는 몰입형 공간으로 완성했다. 파란색 타일과 샤워 시설, 타월 등으로 꾸민 내부에는 사람들의 허밍과 걸음 소리가 들리고, 천장의 전등은 곧 꺼질 듯 깜박인다. 곳곳에 놓인 비누와 치약은 시트러스와 허브 향을 솔솔 풍긴다.




팝업 스토어의 아이디어는 전 세계 럭셔리 시장의 한계를 깨기 위한 것이다.”




오와 열을 맞춰 늘어선 샤워실과 캐비닛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들었다. 한 샤워실은 수증기를 뿜어내는가 하면, 다른 샤워실은 문을 열려는 순간 누군가 안에 있는 듯 문을 잡아당겨 사람을 놀라게 한다. 또 어떤 샤워실 안에는 자크뮈스의 밤비노 백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장난기 가득한 이 공간을 디자인한 랜덤 스튜디오는 “남프랑스의 무더운 여름에 대한 향수와 브랜드 고유의 위트를 불어넣었다”라며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휴가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디자이너 자크뮈스가 팝업 스토어를 통해 보여준 번뜩이는 상상력과 감각적인 디자인은 패션업계에 새로운 촉수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는 24/24 팝업 스토어를 오픈하면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건 단순히 구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경험과 콘셉트를 위해 만들었다. 팝업 스토어의 아이디어는 전 세계 럭셔리 시장의 한계를 깨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환영받는 기분으로 들어서서 걷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 무엇을 하든 멋진 경험을 하길 바란다.





보테가 베네타의 팝업 스토어. 더 메이즈. 브랜드를 상징하는 트라이앵글과 패러킷 그린 컬러로 디자인한 미로




하이퍼피지컬 스토어의 잠재력을 탐구하는 브랜드는 자크뮈스뿐만이 아니다. 멀리 갈 것 없이 가까운 서울에서도 그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그랜드 하얏트 호텔 외부 주차장에 16m 길이의 미로 ‘더 메이즈The Maze’를 설치한 보테가 베네타와 성수동 한복판에 동화 속 유리 궁전을 연상케 하는 콘셉트 스토어를 오픈한 디올 등이 있다. 두 곳 모두 오픈하자마자 인증샷의 성지로 떠올랐다.



이처럼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패션 브랜드는 제품보다는 ‘신박한 경험’을 파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더 초현실적이고, 더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 온라인 세상에서의 결핍을 메워주는 공간이라면 과감한 투자를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브랜드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장소인 오프라인 매장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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