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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되는 상황을 재료 삼아

아티스트 박원민

Text | Anna Gye
Photos | Mineun Kim
Web www.wonminpark.com

그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만큼 반전 가득한 작품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경험이 없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인지할 수 없다는 것. 창조와 예술은 우연과 불규칙 속에서 ‘불쑥’ 등장한다고 말하는 그는 돌, 레진, 유리, 나무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해 고정관념을 흔드는 컬렉터블 디자인 가구를 소개하고 있다.








세계 각국으로 떠나보낼 작품 박스들이 하늘 높이 쌓여 있네요. 이곳은 어떤 장소인가요?

컬렉터블 디자인 작품을 소개하는 파리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의 창고이자 작업실이에요. 프린트 공장이었던 낡은 건물을 레노베이션한 곳이죠. 갤러리 오너의 어머니이기도 한 아티스트 잉그리드 도나의 작업실도 있는데 이게 모든 작가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아니에요. 사는 집은 파리 8구 몽소 공원 근처이고 요즘은 대부분 집에서 일을 처리해요. 이곳에서는 작품 검수와 사진 촬영, 그리고 작품 보관을 합니다.








이곳에서 주로 어떤 일상이 벌어지나요?

코로나19 이후 대부분의 일을 화상으로 진행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죠. 한 가지 주재료로 작업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저는 돌, 레진, 유리, 나무, 세라믹 등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해 작업합니다. 재료를 고른 후 어떻게 하면 재료 특성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죠. 돌로 만든 테이블을 레진으로 재료를 바꿔 제작하는 식으로 제작 기법과 물성을 바꾸어 고정 관념을 깨뜨리기도 하고요. 결과물만 보면 무척 간단해 보이지만 아티스트는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보여주는 사람이잖아요. 인위와 관습의 틀을 깨는 데 중점을 두죠.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기에 에너지 소모가 많아요.




아름다움을 멀리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속에서 사용하면서 예술과 공감하는 거죠.”




요즘 몰두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5 10일 미국 뉴욕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 개인전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전시 제목은 [Unding : Restoration of Existence]입니다. 베를린 예술대학 철학과 한병철 교수의 책 [사물의 소멸]을 인용했어요. 그에 따르면 우리는 친구와 팔로워를 쌓아가고 있지만 타자와 마주치지 않고 탈 사물화한 세계, 정보가 지배하는 유령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요. 점점 사물이 허망해지는 것이죠. 우리는 고요하고 수수한 사물, 평범한 것, 부수적인 것, 통상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있어요. 저는 존재와 현존의 회복을 위한 탐구 정신이 깃든 작품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돌로 만든 ‘Stone & Steel’ 시리즈 작업이 3D 스캐닝과 사진, 드로잉, 숫자 등의 정보로 바뀌고, 다시 이 정보를 돌이 아닌 다른 재료를 이용해 인간의 손으로 복원한 ‘Remediated’ 시리즈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전체적으로 제가 디렉팅하고 실제 작업은 중국, 네덜란드, 프랑스 팀이 함께 움직이면서 돌아가요. 제 몸은 파리에 있지만 마음과 사고는 온 세계 각국을 넘나들죠.





2013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Haze’ 시리즈는 박원민 작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시초가 되었다. 레진 재료에 대한 치열한 탐구로 등장한 작품이다.



최근 작업한 서울 공예 박물관 로비 데스크.




영상으로 쉽게 소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티스트가 요구하는 디테일한 요소까지 소화하기 힘들 것 같아요.

오해와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3D 스캔, 프린팅 등 첨단 기술을 이용하고 실제와 비슷한 미니어처를 만들어요. 제 스스로 손과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거죠. 물질을 만지고 더듬고 살피면서 자연계의 물리적 습성을 이해하고 그 순간의 감정을 느끼면서 삭제, 수정을 반복하는데, 제 작업의 포인트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오브제여야 한다는 점이에요. 조각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기능성을 부여하는 거죠.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기능적 조각 가구’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상에 거부감 없이 사용 가능하면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오브제를 만들고자 합니다. 실용과 미학, 관념과 일상을 한데 묶어내는 일이죠.



예술품과 컬렉터블 디자인 가구의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집 안에 둘 수 있는 컬렉터블 디자인 가구는 일상과 맞닿아 있죠. 앉고 만지고 눕고 쓰다듬는 등의 행위를 통해 작품에 담긴 감성과 메시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다르게 말이죠. 쓰임이 있지만 쓰임새를 정해두지는 않아요. 사용자에 따라, 공간에 따라, 목적에 따라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그래서 평생 소장하고 싶은 오브제가 됩니다. 아름다움을 멀리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속에서 사용하면서 예술과 공감하는 거죠.







부드럽고, 거칠고, 매끄럽고, 단단하다. 재료가 가진 디테일한 감각을 조합한 컬렉터블 디자인 가구.




인스타그램 피드와 스토리를 보고 어떤 작업을 하는지 짐작했어요. 비행기에서 찍은 광활한 대지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컬렉터블 디자인 가구가 탄생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어요.

전시와 작업 때문에 비행기 탈 일이 많아요. 어느 날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보는데, 문득 울퉁불퉁한 대지가 하나의 거대한 돌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체론적 시점에서 볼 수 있는 생경한 객관성이 느껴졌죠. 그래픽적으로 표현하면 포지티브와 네거티브가 혼합된 모양새인데, 여기에 자연과 인간이란 의미를 입혀 더 깊게 파고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이 만든 돌, 인간이 만들어낸 철판, 시간이 형성한 돌의 형태와 선, 인공이 창조한 직선, 이것을 모두 테이블이란 일상적인 물건 안에 융합해보기로 했죠. 지난 파리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 개인전 타이틀을 [On Earth]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고요. 이 시리즈는 전시 이후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요즘 아티스트에게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는 새로운 소통 창구가 되었어요. 가상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신작을 소개하기도 하고, 직접 판매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소셜 미디어를 주로 기록 목적으로 사용해요.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오랜 시간에 걸쳐 작업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동영상으로 압축해 보여줄 수도 있죠.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리미티드 작품으로, 갤러리를 통해 전시와 연계해서 판매하고 있어요. 이와 별도로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구와 물건을 소개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저만의 브랜드가 되겠죠.








그렇다면 공간을 디자인해보는 것은 어떤가요? 지난해 런던 왕립예술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고 들었어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보다 디자인의 연장선으로 건축을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가장 혁신적인 건축가로 렘 콜하스를 꼽을 수 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어요. “현대사회에서는 박스 같은 건물이 교회, 학교, 병원 등이 될 수 있다. 디자인의 형태보다 중요한 것은 건물의 콘셉트와 사회를 꼬집는 질문이다.” 그는 첨단 기술과 아이디어로 틀에 박힌 구조 대신 현실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메시지가 보이는 건축물을 만들어요. 미국 시애틀 중앙도서관은 ‘앞으로 늘어날 디지털 자료를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책보다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죠. 렘 콜하스가 설계 회사 외에 싱크 탱크 회사 AMO를 만들고 도시와 건축, 문화 등 광범위한 영역의 작업을 하는 것을 보면 건축이 건물이 아닌 사고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저 또한 그런 질문과 답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콘셉추얼한 공간이 되겠죠. 집이라고 해도 평범하지는 않은.(웃음)








파리 8구에 위치한 본인의 집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많은 사람들이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니 멋진 집에 살 거라고 짐작하는데 현실은 반대예요. 이전에는 파리에서 런던으로 이사할 예정이라 풀 옵션 아파트에 살았어요. 집이라는 생각보다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파리에서 살기로 결정하고 결혼한 후에야 ‘제대로 된 집을 찾아봐야겠다’ 생각했어요. 파리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는 정말 어려워요.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집을 구하는 곳이기도 하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면 바로 계약해야 하죠. 결혼 후 금방 아기가 생겨서 저희 3인 가족의 거주 공간, 한국에서 오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게스트 룸, 사무실로도 쓸 수 있는 넓은 거실이 있는 큰 집이 첫 번째 조건이었어요. 전형적인 파리의 오스만 양식 건물로 중앙에 천고가 높은 응접실이 있어 탁 트인 느낌이 들죠.








본인 작품 하나쯤은 가지고 있겠죠?

확실히 제 집이 생기니 가구 고르는 자세도 달라지더라고요. 대중적 라인을 만들어보자는 생각도 그 덕분에 하게 되었고요. 직접 그린 그림은 몇 점 있지만 가구는 아직 없습니다. 가구는 빈티지 마켓과 갤러리에서 구입한 장 프루베, 샤를로트 페리앙, 포울 헤닝센, 한스 베그네르 등의 디자인 가구를 써요. 집에 어울리는 작품을 제작하고 싶은데 일이 바빠 계속 미루게 되네요. 책상이 첫 번째 대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웅장한 응접실에 있는 책상에서 일하고 있으면 카페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창밖으로 이웃도 보이고, 공원도 보이고, 집 안 전체 모습도 한눈에 들어오고 말이죠. 집다운 집을 만드는 것은 가구가 아니라 문득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아닐까 해요. 일상의 풍경이 평화롭고 여유가 느껴질 때 ‘집이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지금까지 가본 집 중 가장 놀라웠던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작품 설치 때문에 내로라하는 컬렉터와 예술가의 집에 많이 가봤는데 파리 캄봉가 코코 샤넬의 아파트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공간에 있는 모든 사물에 샤넬과 그녀의 스토리가 담겨 있었어요. 그곳에 다녀온 뒤 사는 사람을 투영하는 물건과 집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2016년 월페이퍼 매거진 전시 ‘핸드메이드 프로젝트’에 출품된 작품.




네덜란드 에인트호번과 로테르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한국 서울 등 다양한 도시에서 살았어요. 그중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8년 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살다가 문득 좀 더 넓은 도시로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날 차에 짐을 싣고 무작정 파리로 왔죠. 프랑스어도 모르고 프랑스 친구도 없었지만요. 파리는 매년 새로워요. 서울처럼 트렌드에 따라 확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존 그림 위에 새로운 그림이 덧입혀지는 느낌이에요. 시간, 세대의 축에 따라 다양한 레이어가 투명하게 보이는 도시죠. 이후 런던, 뉴욕, LA 등 여러 도시로 이주할 기회가 많았지만 파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브렉시트 이후 파리가 유럽의 중심지가 되면서 더욱 좋아지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도시 규모가 마음에 들어요. 걸어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죠. 조각 같은 건물을 보면서 하염없이 걷게 되는 도시. 그리고 와인, 치즈 등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쉽게 떠나지 못할 것 같아요.




인공지능이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만큼 반전 가득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는 없다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요즘 인공지능 챗GPT가 대세라 이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인공지능이 소설가를 대신해서 소설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어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아티스트의 작업을 대신하게 될 날이 올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인공지능이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미 발 빠른 디자이너들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업하고 있고요. 하지만 보지 못하는 것을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보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만큼 반전 가득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는 없다는 말이죠. 진정한 예술은 사람만이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창조와 예술은 우연과 불규칙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불쑥’ 등장하는 것이니까요. 인공지능은 반복적인 학습에서 오는 규칙과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하죠. <2029 기계가 멈추는 날>의 저자 게리 마커스 뉴욕 대학교 교수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의 상식이 핵심이라고 했어요. 인공지능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경험이 없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죠. 진정한 예술은 기존의 맥락과 틀을 깰 수 있는 것이기에 인공지능 시대에는 자연스레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 되겠죠. 아티스트는 말도 안 되고 이상하고 묘한 방법으로 이전에 하지 못했던 생각을 창조해 현실을 새롭게 환기시켜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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