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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저택에 나타난 오브제 페티시스트들

<호텔 마니에라>전

Text | Kakyung Baek
Photos | Jeroen Verrecht

벨기에 브뤼셀의 갤러리 마니에라는 가구 디자이너가 아닌 건축가, 예술가와 함께 가구를 만든다. 예를 들면 도널드 저드, 솔 르윗, 프란츠 웨스트 같은 형태와 공간에 대한 방법론이 명확한 예술가를 발굴해 그의 가구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탄생한 작품 15점은 1922년에 지은 오래된 저택 ‘호텔 당카르트’에서 전시했다. 낡은 공간과 현대적 가구의 공존이 뿜어내는 신비한 아우라를 함께 느껴보자.








가구는 집의 인상을 좌우한다. 집의 기능이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을 넘어 개개인의 취향을 드러내고 창의적인 영감을 얻는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가구 역시 실용성 이상의 미감이 필요해졌다. 소위 아트 퍼니처, 하이엔드 가구, 낯선 미감의 빈티지 가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나 흔하고 획일적인 디자인의 가구가 아닌 나만의 개성이 담긴 고유한 디자인 가구를 찾고 싶어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벨기에 브뤼셀의 갤러리 ‘마니에라Maniera 1920년대에 지은 호텔 당카르트Hôtel Danckaert에서 지난 5월까지 선보인 전시 <호텔 마니에라>는 비일상적 가구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프로젝트였다. 유명 디자이너의 말에 따라 ‘제로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창조지만 기존의 것을 미지화시키는 것 역시 창조’라면 마니에라는 예술과 가구의 경계를 흩뜨리면서 새로운 개념의 가구를 만드는 창조적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집과 가구는 지금 마니에라와 매너리즘, 그 사이 어디쯤 위치할까?”




예술 분야에서 생산 관리자로,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로 오래 일했던 아마릴리스 제이콥Amarylis Jacob과 쿠엔틴 라빈Kwinten Lavine 2014년 자신들의 예술적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마니에라를 공동 설립했다. 두 사람은 2017년 온라인 매거진 <커피클래치Coffeeklatch>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오브제 페티시스트object fetishists’라 소개할 정도로 예술, 디자인, 건축 등 여러 분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예술 작품에 열광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들은 마니에라를 통해 형태와 공간에 대한 방법론이 명확한 건축가와 예술가를 초대해 그만의 방식대로 가구를 만들 것을 의뢰한다. 건축가와 예술가는 관행을 뛰어넘어 다른 예술 영역을 뒤섞으며 새로운 디자인의 가구를 선보이는 것이다. 이들의 결과물은 단순한 가구 이상으로 다양한 영역 사이에서 의도적으로 대립 구도를 찾아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탄생한 첫 번째 컬렉션은 두 창립자 부부의 낡은 아파트에서 전시했다. 그들은 집의 절반을 전시와 삶을 병행하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전시를 위한 임대료로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싶지 않을뿐더러 마니에라의 작업을 보여줄 가장 적합한 공간은 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니에라는 첫 번째 전시를 마치자마자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 초청됐으며 전 세계 가구 애호가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 무대가 된 호텔 당카르트 역시 마니에라가 공들여 찾아낸 공간이다. 호텔 당카르트는 1922년 건축가 장바티스트 드윈Jean-Baptiste Dewin이 사업가 장 당카르트Jean Danckaert의 가족이 살 저택으로 지은, 3개의 박공지붕 집과 정원, 차고 세 부분으로 구성된 건축물이다. 또한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부흥한 산업 부르주아 계층의 삶을 드러내는 역사적 사료로도 중요한 건축물이다. 특히 정원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주요한 공간이 모두 들여다보이는데, 이는 당대 자연에 대한 애착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니에라는 <디진Dezeen>과의 인터뷰에서 호텔 당카르트에 대해 “현대적 가구가 더욱 눈에 띄도록 만든 훌륭한 전시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15점의 새로운 작품을 호텔 당카르트의 거실, 부엌, 화장실, 정원 등 곳곳에서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마니에라가 손꼽은 작품을 소개하면, 첫 번째로 오스트리아 예술가 루카스 그흐반트너Lukas Gchwandtner의 ‘레이지 필로Lazy Pillows’다. 이 작품은 상반된 성질의 두 소재가 충돌하는 점이 가장 인상적인데, 부드러운 깃털로 가득 채운 베개와 강철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레이지 필로’는 테이블, 침대, 소파 등 다양한 용도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두 번째는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활동하는 여성 듀오 룸 스튜디오Room Studio의 작품이다. 룸 스튜디오의 구성원 나타 잔베리제Nata Janberidze와 케티 톨로라이아Keti Toloraia가 태어난 조지아는 구소련으로부터 독립 이후에도 러시아의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정치적 영향으로 룸 스튜디오는 고대, 중세, 소비에트 시대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문화, 역사의 조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호텔 마니에라>에 전시할 작품으로, 조지아의 공공장소에 흩어져 있는 벤치를 오브제로 승화시켰다. 소련 붕괴 이후 주로 돌로 만든 벤치들이 개인이 소장하거나 버려졌는데,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변화시켜 오래되고 잊힌 것에 새로운 의미와 정의를 불어넣었다.








‘마니에라’라는 단어에는 16세기 중엽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예술가의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양식이나 화풍’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어 ‘매너리즘’ 또한 ‘마니에라’에서 파생한 것으로,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 거장의 마니에르를 모방하는 사조를 일컫는다. 가장 독창적인 것은 가장 만연한 것을 낳고, 전형적인 것으로부터 고유한 것이 잉태되는 일, 이러한 순환은 미술뿐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존의 것을 미지화’시키며 끊임없이 새로운 마니에라를 찾아 나서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집과 가구는 지금 마니에라와 매너리즘, 그 사이 어디쯤 위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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