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이클링 브랜드의 새로운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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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클링 브랜드의 새로운 조짐

스페인 업사이클링 브랜드 누깍

Text | Dami Yoo
Photos | Youngjun Choi

전 세계 패션 산업 규모는 2,832조 원에 달한다. 그중 미국의 업사이클링ㆍ리사이클링 시장이 200조 원을 차지할 정도로 이 시장은 점점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로는 프라이탁이 압도적인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탄소 중립을 위해 자원 순환을 실천하고 지속 가능한 소비문화가 폭넓게 이루어지게 하려면 이 산업의 지형도가 훨씬 더 역동적이고 다채로워질 필요가 있다.





©unseenbird




유럽경제위원회(UNECE)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폐수 가운데 20%가량이 패션업계에서 나오는 것이며,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10%도 패션업계가 주범이다. 한편 패션 산업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약 70%는 소재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다. 탄소 중립을 위해 모두가 의지를 가지고 실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전 세계 섬유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식물성 섬유,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다고 해서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 생산 과정에서 물, 토지, 에너지는 여전히 소비되고 오염되며, 줄어들지 않는 탄소 배출량은 어김없이 기후 위기를 가속화한다.



탄소 배출량을 영향력 있는 수준으로 줄이려면 새로운 소재를 연구하고 생산하기보다는 소재의 재사용으로 자원을 순환시키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패션 산업에서 업사이클링ㆍ리사이클링 시장이 점점 확대되는 이유다. 전 세계 패션 산업 규모는 2,832조 원에 달하는데 그중 미국의 업사이클링ㆍ리사이클링 시장이 200조 원을 차지할 정도다. 그러나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라면 프라이탁이 압도적인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이제는 이 산업의 지형도가 훨씬 더 역동적이고 다채로워질 필요가 있다.




새로운 소재를 연구하고 생산하기보다는 소재의 재사용으로 자원을 순환시키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누깍 2001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탄생한 브랜드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바오Vaho 설립자인 파트리시오 아브레우Patricio Abreu와 미디어 아티스트 페드로 리보사Pedro Ribosa가 함께 만들었다. 슬로건은 ‘모두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Everybody deserves a second chance)’로, 업사이클링 브랜드 정신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누깍이란 이름은 콜롬비아 정글의 마지막 유목 민족 누깍 마쿠Nukak Maku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민족은 자신이 사용할 물건을 필요한 만큼만 손수 만들어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두 창립자는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필요 이상으로 생산된 물건이나 쓸모를 다한 소재를 조합해 두 번째 기회를 만들어내기로 했다. 업사이클링 패션의 대명사 격 브랜드로 스위스의 프라이탁이 독보적이지만 스페인의 누깍 역시 그 못지않다.





©unseen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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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성수동에는 누깍의 브랜드 정수를 보여주는 플래그십 스토어 누깍 까사가 오픈했다. 국내에서는 2016년 커먼그라운드에서 조촐하게 시작해 해마다 그 입지를 조금씩 넓히며 영향력 있는 브랜드로 흐름을 이어온 것이다. 성수동 평범한 골목 지하에 자리한 누깍 까사에 들어서면 300여 ㎡ 규모의 매장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금세 신선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공간 디자인은 언씬버드unseenbird가 맡았다. 알루미늄 프로파일과 목재를 결합해 만든 가구와 집기가 공간의 무드를 이끌면서 누깍의 재기 발랄한 제품을 단정하게 뒷받침해준다.



이곳을 방문하면 제품이 업사이클링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워크숍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다양한 제품과 소재의 변신을 살펴볼 수 있다. 누깍의 주요 소재 중 하나인 돛은 다양한 색상과 뛰어난 내구성, 초경량이 특징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수천 km를 달리고 제 명을 다한 폐타이어의 내부 튜브 역시 엄청난 무게와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재사용에 여전히 가치 있는 자원이다. 길거리에 나부끼는 광고 배너도 중요한 재료다. PVC 배너는 시대의 디자인 산물로 의미 있으며 누깍의 개성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unseenbird




수명을 다한 대형 트럭 덮개를 주요 소재로 사용하는 프라이탁과 달리 누깍은 이렇게 폐현수막 외에도 자전거나 트럭의 타이어 튜브, 카이트서핑 돛을 이용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형태와 소재의 제품군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프라이탁의 패턴과 컬러, 제품의 모양이 볼드하고 중성적인 느낌이라면 누깍의 디자인은 훨씬 더 다종다양하다. 버려진 현수막이나 광고 사인물에 새겨진 디자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현수막의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부분을 사용한다거나 문자가 적힌 부분을 재치 있게 배치하는 식이다. 디자인의 종류 역시 기본 형태로 변주하는 프라이탁 가방과 달리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제품의 분위기를 다양하게 전개한다.



마지막으로 가격이다. 프라이탁의 브랜드 가치를 이해하더라도 기후 위기 시대에 컨셔스 소비가 더욱 활발해지려면 가격 경쟁력도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멋지고 힙하고 패셔너블한 인상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특정한 사람들만 향유하는 영역으로 국한된다면 폭넓게 이뤄져야 할 자원 순환의 실천이 확장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누깍은 생산과 제작 프로세스를 현지화하는 방법을 통해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한다. 누깍을 한때 ‘한국의 프라이탁’이라고 잘못 인식했던 해프닝도 이로써 생긴 일이다. 때때로 한글이 적힌 PVC 배너를 재사용하는 등 국내에서 수급한 자원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다 보니 누깍이 국내 브랜드라는 오해를 샀던 것이다.



누깍 외에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개하는 업사이클링ㆍ리사이클링 브랜드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여전히 업사이클링 제품의 가치 측면을 넘어서는 매력적인 브랜드는 많지 않다. 그래서 누깍이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통해 훨씬 산뜻한 이미지로 전환한 점은 고무적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자원 순환이 더욱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소비문화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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