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앞 바다에 띄운 미술관

VILLIV



SPACE|노마드, 재생, 테크놀로지

히로시마 앞 바다에 띄운 미술관

시모세 아트 뮤지엄

Text | Anna Gye
Photos | Shigeru Ban Architects, Simose Art Museum

발아래 펼쳐진 이 땅이 만약 바닷속으로 사라진다면? 이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증가, 화석연료 사용이 지구 평균기온을 끌어올리며 해수면 상승을 가속하고 있다. 자연재해나 지구온난화 같은 전 세계적 문제에 대응하는 혁신적 건축 솔루션을 제시하는 건축가 반 시게루. 그는 점점 가라앉는 우리의 일상을 구원하기 위해 플로팅 건축 방식을 적용한 시모세 아트 뮤지엄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자연 또는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 재난 지역을 위해 건축가는 무엇을 할 수 있나. 건축가 반 시게루Ban Shigeru는 점점 가라앉는 우리의 일상을 구원하기 위해 플로팅floating 건축 방식을 적용한 시모세 아트 뮤지엄Simose Art Museum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8개의 컨테이너 박스 같은 건물은 부력 기능뿐만 아니라 전기, 상하수도 등 기본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재 이 건물은 본관 건물과 연결되어 있는 세토 내해와 미술관 본관 사이에 만들어 놓은, 바다와 연결된 대형 연못 위에 떠 있지만 언제든지 자유롭게 위치를 조정할 수 있다. 전시 장르와 목적에 따라 레고처럼 박스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훌륭한 대안이자 미래 미술관의 형태를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건물 외관의 컬러다. 핑크, 오렌지, 바이올렛, 스카이 블루 등 달콤하고 생생한 컬러가 어둠 속에서 바닥에 설치된 조명과 어우러져 연못 위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낸다. 내부의 세 면은 단단한 벽으로, 나머지 한 면은 반투명 막으로 처리한 벽이 감싸고 있다. 이 반투명 벽은 빛과 열을 흡수하는 창이자 외부와 연결하는 문 기능을 겸한다. 은은한 산란광이 내부의 반투명한 순백 공간을 채우며 관람객이 편안한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전시에 몰입하게 만든다. 박스를 이동하며 전시의 흐름을 천천히 즐길 수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미술관 관리에 대한 고민 중 하나는 습온도 조절이다. 미술관은 각 공간마다 개별 에어컨 장치를 설치해 섬세하게 온습도를 조절한다. 8개의 플로팅 건축물은 미술관 본관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세토 내해 위에 떠 있는 여러 개의 섬처럼 보인다. 수평선을 마주하며 바다와 대화를 나누는 이곳에서 바다는 무섭게 다가오는 위기나 재난이 아닌, 삶을 포근하게 감싸안는 아늑한 존재로 여겨진다.



건축가 반 시게루는 건축물에 평화로운 바다 이미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삽입했다. 반사 유리로 둘러싸인 미술관은 사방으로 펼쳐진 고요한 바다를 거울처럼 비치며, 마치 전체 건물이 바닷속에 잠긴 듯 푸른빛을 머금고 있다. 주차장을 지나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마치 바닷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으로, 바닷속으로 들어서면 마치 땅에서 자라난 듯한 거대한 나무 기둥을 만나게 된다. 이 기둥은 천장으로 가지를 활짝 펼치며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8개의 박스 건물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도록 창가에 의자와 테이블도 마련해두었다. 현재 미술관에는 프랑스 예술가 에밀 갈레Émile Gallé의 일본 전통 인형과 유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 작품은 미술관을 소유한 시모세 가문이 대대로 수집해온 것이다.





시모세 아트 뮤지엄 인스타그램 페이지






미술관 외에도 이곳에 오면 미술관 옆 빌라를 둘러봐야 한다. 이 빌라 부지는 한때 프라이빗 휴양 리조트로 사용했으나 철거 후 방치되었다. 시모세 가문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이 땅을 매입해 건축가 반 시게루에게 프로젝트를 맡겼다. 그렇게 완성된 10개의 빌라는 미술관 개관과 동시에 공개했다. 반 시게루의 건축적 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빌라는 현재 호텔로 운영한다. 가장 유명한 '종이의 집'도 만나볼 수 있다. 반 시게루는 오래전부터 종이 소재를 활용했다. 두께와 길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방수 처리가 가능하며,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종이와 나무는 설치 및 해체 과정에서 그 장점이 극대화된다. '페이퍼 하우스Paper House' 1995년 야마나카 호수에 처음 지은 빌라를 재현한 것으로, 110개의 종이 튜브가 S자 형태로 움직이며 율동감을 주고 빛과 통풍을 조절한다. 종이 튜브로 둘러싸인 야외 저쿠지도 있다. '크로스 월 하우스Cross Wall House' 2개의 교차하는 십자가 모양 벽이 서로를 가로지르며 빌라가 마치 땅 위에 떠 있는 듯하게 지탱한다. 1997년 가루이자와에 지은월레스 하우스Wall-Less House’는 세 면이 슬라이딩 유리문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벽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유리문은 내외부 경계를 흐리게 하며, 벽이라는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반 시게루는 대학 시절부터 건축에 대한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부유층과 권력자를 위한 건물보다 일반인을 위한 집을 짓고자 했다. 그는 친환경이란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자연에서 해답을 찾았으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했다. 무엇보다 그는 단순히 책상에 앉아 이론을 펼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1995년 일본 고베, 1999년 튀르키예, 2010년 아이티,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 등 세계 재난 지역을 찾아가 현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저렴하고 재활용 가능한 집과 공동 시설을 지어 피해자들을 도왔다. 2014년에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하얏트 재단은 그를행동하는 건축가로 칭했다.



그의 실천은 건축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플로팅 건축 방식을 적용한 시모세 아트 뮤지엄 프로젝트는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훌륭한 대안이자 미래 미술관의 형태를 보여준다. 가상과 실재가 공존하는 미술관에서 관람객은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까. 물리적 공간에서 일방적 방식으로 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작품뿐 아니라 건물, 분위기, 환경, 사람 등 모든 것이 융합되어 확장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위대한 창조물을 바라보며 성찰에 빠져드는 공간이 바다 위를, 우리 마음속을 떠다니고 있다.




RELATED POSTS

PREVIOUS

힙스터의 뉴욕 아파트 월세는 얼마
리파이너리29의

NEXT

집을 떠나 집을 생각하다
호텔 그라피 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