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우리의 공간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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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 우리의 공간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향수 브랜드 퍼퓨머 에이치

향은 빛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간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 이 무형의 존재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고, 심리적 긴장감을 풀어주며, 특정 공간에 대한 잔상이 깊이 남도록 유도한다. 비슷한 디자인 가구와 오브제들로 공간의 개성이 상실되고 있는 요즘,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자 하는 이들은 결국 어떤 향을 품을 것인지에 눈을 돌린다. 영국의 대표하는 세계적인 조향사 밀러 해리스가 론칭한 퍼퓨머 에이치는 지난 몇 년 새 런던의 크리에이터들의 공간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조향 캔들 시장은 2020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매년 4%가 넘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취향, 찰나의 감정까지도 향에 담아내는 이들의 공간이 내밀한 감각을 통해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향을 공간에 입히고,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까지 디자인하는 향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을까.


전 세계 트렌드의 최전선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런던 말리본 중심가에 문을 연 퍼퓨머 에이치Perfumer H는 그 답을 보여주는 브랜드라 할 수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조향사 린 해리스Lynn Harris 20년간 몸담았던 향수 브랜드 밀러 해리스Miller Harris를 떠나 새롭게 론칭한 퍼퓨머 에이치는 타인의 일상과 직업, 문학의 한 글귀 같은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영감을 얻는스토리텔링 향수를 제안한다.




©João Sousa



©João Sousa





©João Sousa



©João Sousa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To the Lighthouse)>에서 영감을 얻은 미네르Mineir 향은 차갑고 어두운 방에 놓인 소설 속 주인공의 고립과 생에 대한 투지를 세이지, 유칼립투스, 민트 등을 통해 조향해낸다. INK 컬렉션은 언뜻 떠오르는 잉크 향과 같은 직관적 조향을 기대하는 이들을 한 차원 높은 상상력으로 이끈다. 매일 밤 노트에 일기나 시를 끄적이는 행위를 즐기는 이들을 닮은 향, 어느 소설가의 공간 속에 들어선 듯한 기시감을 담아낸다. “마치 흰 종이에 푸른 잉크가 스며들듯 이 향은 어둑어둑한 도서관의 늦은 밤을 떠올리게 한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다. 파피루스 인디아, 베티베르 아이티, 삼나무, 장미 향이 혼합된 이 잉크 향은 퍼퓨머 에이치의 브랜드 정체성을 대표하는 시그너처로 꼽히며 여러 셀러브리티들과 협업한 특별한 에디션으로도 판매한다. 퍼퓨머 에이치에서는 온전히 단 한 사람을 위한 향을 맞춤 제작하기도 하는데, 최대 1 5000파운드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향기로 구현하려는 이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다가오는 이 계절

우리의 공간에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퍼퓨머 에이치의 정체성은 창립자인 영국 최고의 조향사 린 해리스의 유년 시절과 연결된다. 웨스트요크셔 출신인 그녀는 방학이면 조부모가 사는 스코틀랜드 시골의 황무지를 누비고 다녔는데, 그때의 경험이 후각을 일깨웠다고 한다. 매일 아침 모닥불 냄새를 맡으며 할머니와 함께 빵을 굽고 잼을 만들던 자급자족의 생활을 경험하며 그녀는 채소와 꽃밭에서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람푼Lampoon>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하는 계절의 아름다움이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예술가이자 창작자로서 내 정체성의 일부다.”


여름과 겨울, 일 년에 두 차례 컬렉션을 선보이는 퍼퓨머 에이치가 이번 겨울 시즌 제작한 ‘A FEAST’는 어떤 이들의 삶에는 향이 다른 무엇보다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아침저녁으로 차갑게 변한 공기, 초겨울로 접어든 빛의 조도와 깊이, 그 속에서 어떤 옷을 구입하고 어떤 가구를 들이느냐를 고민하는 이들의 삶 한편에 자리한 향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강력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토스트> <더 키친 다이어리> 등을 집필한 영국의 유명 요리 칼럼니스트 나이젤 슬레이터Nigel Slater와 협업한 ‘A FEAST’다가오는 이 계절에 우리의 공간에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을 초대해 한 해를 돌아보고 기념하는 축제(feast)가 많은 계절이잖아요. 요리와 향은 많은 이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가장 오래 잔상을 남긴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차와 케이크처럼, 그것을 즐긴 이들이 각자 그 경험과 느낌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해석하고 기억하는 거죠.”


 

Text | Nari Park

Photos | PERFUMER H(www.perfumer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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