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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거실의 표정

도미니크 나보코프 “베를린의 거실”

당신의 집에 누군가 들어와 거실을 촬영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까. 대형 TV만 응시할 수 있도록 배치한 커다란 소파가 게으른 모습으로 나올 게 뻔하다면, 도미니크 나보코프가 1945년 뉴욕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에서 촬영한 작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예술가들의 거실에서 영감을 받아보길 바란다. 봄이 오기 전에.



본 콘텐츠는 2020“VILLIV” 매거진에 실린아파르타멘토가 출간한 베를린의 거실 표정’ 기사를 활용했습니다.




Dr Evelyn Stern and Sir David Chipperfield, architect, Mitte, 2014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실은 집의 얼굴과 같다. 하지만 거실을 떠올리면 가족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소파, 벽에 걸린 대형 TV, 부엌과 연결된 통로처럼 뻔한 이미지만 생각나는 건 왜일까? 한국의 주거 형태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60%이고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을 포함하면 무려 75%에 이르는데, 이렇게 대량생산된 주거 공간이 한국의 거실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든 건 아닐까? 반면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이어온 서구권 거실 비교적 개성 강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이런 매력적인 요소를 지닌 거실을 지난 30년 동안 여러 도시를 돌며 기록해온 포토그래퍼가 있다. 도미니크 나보코프Dominique Nabokov 1945년 뉴욕을 시작으로 파리, 베를린까지 작가, 패션 디자이너, 건축가 등 다양한 예술 종사자들이 거주하는 주택의 거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했다. 그 결과 각 도시의 이름을 딴 사진집이 한 권씩 나왔고, 가장 최근의 것으로 2014년 베를린에서의 작업을 엮은 베를린 리빙룸Berlin Living Rooms이 라이프스타일 전문 매거진 아파르타멘토Apartamento에서 출간되었.




Timo Miettinen, art collector (Salon Dahlmann), Charlottenburg, 2015



Benita Yon-von Dehn and Marcel Yon, entrepreneurs, Potsdam, 2015



Mary Ellen von Schacky-Schultz and Bernd Schultz, director and founder of Grisebach, Dahlem, 2015



Benita Yon-von Dehn and Marcel Yon, entrepreneurs, Potsdam, 2015



83개의 거실을 기록한 뉴욕 리빙룸서문에는이것은 인테리어 장식을 위한 책이 아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나보코프는 어느 집의 거실을 촬영하러 갈 때 그 흔한 조명 장치 하나 없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필름인 폴라로이드 컬러그래프 타입 691 두어 박스만 챙겨 간다. “저는 이 필름의 톤이 좋아요. 모든 것이 명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인쇄된 사진에 녹청색이 드리워지거든요. 그 필름의 불완전성은 거실이 보여주는 삶과 현실 사이에 시적 거리를 만들어줘요.”


심지어 인테리어 전문 포토그래퍼라면 으레 그렇듯이 가구를 보기 좋게 재배치하거나 특별한 장식을 더하는 일도 없었다. 나보코프가 포착한 거실은 아름다운 모델을 찍은 작품 같다기보다 상상하기도 벅찬 이야기를 담고 있는 어떤 사람의 초상화 같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파리에서도 예술가들의 거실을 기록하게 된 계기 역시 폴라로이드 필름이었다. 뉴욕에서 유수의 전시를 마치고 파리에 갔던 도미니크가 우연히 카메라 숍에서 잊고 있던 그 필름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녀는 역시 거실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담백하게 담는 방식으로 파리의 거실 92개를 기록하여 2002파리 리빙룸Paris Living Rooms을 아파르타멘토에서 출판했다.



거실 사진은 인테리어 장식이나 스타일링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 자체로 살아가는 방식을 담은 거예요.”



나보코프는 촬영을 위해 낯선 이의 거실에 평균 2시간 정도 머문다고 한다. 그 공간을 알기 위해 누군가와 오랫동안 대화하거나 며칠씩 함께 지내는 일 없이, 거실에 처음 방문한 후 그녀의 시선으로 빠르게 거실 분위기를 포착하는 것이다. “결국 이 거실 사진은 인테리어 장식이나 스타일링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 자체로 살아가는 방식을 담은 거예요. 저는 그 안에서 원하는 방법으로 촬영하죠. 만약 해가 져서 거실이 어둡다면 그에 있는 램프를 켤 뿐이에요.”


당신의 집에 누군가 들어가 거실을 촬영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까? 대형 TV만 응시할 수 있도록 배치된 커다랗고 게으른 모습의 소파만 나올 것 같다면, 나보코프가 마치 도둑처럼 잠입해 찍은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거실을 참고해보기 바란다. 기민하면서도 섬세한 그의 사진에서 거실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이끌어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Text | Kakyung Baek

Photos | Apartame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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