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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공동주택, 도시, 친환경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주택단지

주택단지 ‘비스페비카’ & 순환 마을 ‘타이슈가’

공동주택은 지금까지 거주자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을 지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모여 직접 집을 짓고, 집으로써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면서 천편일률적인 공동주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로 조성한 주택단지 비스페비카



노르웨이 오슬로, 바다와 인접한 곳에 위치한 비스페비카Bispevika는 도시 개발 프로젝트로 조성한 주택단지다. 투박한 외관의 회색 건물 5채는 서로 전망을 방해하지 않도록 엇갈린 각도와 다른 높이로 지었다. 종종 SNS에서 이 공동주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올린 피드를 발견하는데, 좁은 건물 사이로 흐르는 수로가 베네치아를 연상시킨다.


비스페비카의 독특한 구조는 오슬로의 특징과 연관이 있다. 오슬로는 항구도시로 번영했지만 기반 시설이 해안가까지 연결되지 않아 도심과 바다가 단절되어 있었다. 그러다 2008년 바다를 배경으로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서자 점차 해안가와 도시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그중 하나가 공동주택 단지인 비스페비카인 것이다. “우리는 거주민뿐 아니라 오슬로의 모든 시민이 기존의 교통 인프라로 인해 단절되었던 바다에 다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비스페비카를 설계한 건축 사무소 반드쿤스텐Vandkunsten은 언제, 어디서든 오슬로의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위 모두) 노르웨이 오슬로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로 조성한 주택단지 비스페비카



건물 간 거리가 최소 6m밖에 안 되는 이 주택단지에는 바닷물이 흐르는 수로가 놓이고, 일부 건물에는 보트 정박지가 있어 거주민들이 보트를 타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하기도 한다. 실제로 보트를 타고 다른 건물의 베이커리나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스페비카의 수로는 단순히 조경이 아니라 거주민의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수로 위 목조 다리는 느긋하게 이동하는 거주민에게 산책로가 되어준다. 비스페비카는 걷고 싶은 주택단지를 조성하고자 사람의 시선을 기준으로 공간을 해석, 설계했다. “이곳만의 매력을 확보하려면 1층을 아이 레벨eye level로 조성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도시 설계를 담당한 에이랩A-Lab은 보행자 시선에 맞춰 건물 1층과 단지 내 거리를 설계했다. 각 건물 1층에는 레스토랑, 카페, 베이커리 같은 상업 공간이 입점해 거주민들이 1층으로 내려와 자연스럽게 일상을 영위하도록 했다. 해안가와 가까운 주택단지 건물 1층에 자리한 레스토랑과 카페는 바다 경치를 즐기려는 외부인도 이용해 단지를 보다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다. 여기에 바다를 배경으로 덱을 설치해 오슬로 시민이 자유롭게 바다 경치와 일광욕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기존의 폐쇄적인 공동주택과 달리 비스페비카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








(위 모두) 대만의 타이슈가 순환 마을



한편 대만의 타이슈가 순환 마을은 건축 폐기물의 재활용과 재생에너지 활용, 도시 농장 운영 등을 통해 순환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주택 모델을 제시한다. 타이슈가 순환 마을이 순환이라는 가치에 초점을 맞춘 근본적 이유는 비스페비카처럼 지리적 환경과 연결된다. 섬나라인 대만은 자원이 부족해 국가에서 소비하는 원자재와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자원 낭비를 줄이고 재활용을 통한 자원 순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타이슈가 순환 마을은 기획부터 건축, 설비, 조경 등 주택단지 조성에 필요한 분야의 여러 학자와 전문가가 참여하고 미래 거주자들과 함께 비전을 공유하며 만들어갔다. 공공의 목적이 우선시되는 공동주택인 경우 시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데, 타이슈가 순환 마을 역시 그 과정을 따랐다. 재생, 순환, 공유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타이슈가 순환 마을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지 중앙의 녹지 공간이다. 자립적 생태계가 형성되도록 조경에 신경 썼으며, 특히 생태 연못은 무더운 대만의 여름 대기를 시원하게 만드는 자연 정화 장치로 작동한다. 녹지 공간에 설치한 빗물 수거 시스템은 도시 농장과 수경 재배 시스템에 사용되어 단지 내에서 자원 수급과 생성까지 한번에 이뤄진다.


타이슈가 순환 마을은 건축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방안도 마련했다. 건축자재부터 집 안의 가전제품까지 주택을 이루는 모든 요소는 개별적 수리가 가능하고, 쉽게 조립 및 분해되도록 제작했다. 각 자재에는 고유 ID를 부여해 파손되거나 고장 났을 때 쉽게 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차후 건물 수명이 다했을 때도 재활용 여부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러한 자원 순환 시스템은 인테리어에도 적용된다. 가구와 가전제품은 물론 작은 조명까지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특히 가전제품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해 지속적인 관리와 서비스를 업데이트할 수 있다. 또한 단지 중앙에 자리한 공용 공간 ‘C-하우스에서는 수리 관련 워크숍을 여는 등 주민들이 친환경적인 삶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지금까지 공동주택은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현시대에는 가치관의 변화를 지지하는 모두의 집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타이슈가 순환 마을은, 처음부터 철저한 계획을 세운다면 300가구가 넘는 주택단지도 얼마든지 친환경적이고 순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이뤄낼 수 있고, 거주민도 그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공동주택은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도시 및 환경 문제와 사회 변화를 맞이한 현시대에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가치관의 변화를 지지하는 모두의 집으로 발전하고 있다.



Text | Young-eun Heo

Photos | Vandkunsten, Oslo S Utvikling, Studio Millspace, Yue-Lun Ts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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