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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친환경, 가드닝, 오가닉, 반려식물, 재생

베란다에 정원을 들이는 이유는

야마자키 나오코라

Text | Kakyung Baek
Photos | Samtoh

요즘 들어 유독 ‘도시 농업’, ‘베란다 가드닝’에 대한 얘기가 자주 나온다. 오래전부터 트렌드였기는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될 거라는 예측이다. 식물을 기르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인 요즘, 자신이 먹을 것을 길러보고 꽃을 꾸준히 돌보는 일은 일상의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야마자키에게 (베란다의) 정원 가꾸기는 가뿐한 마음으로 돌보는 취미 생활이라기보다 자신을 치유하고 인내하는 과정이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등의 인기 작품을 발표한 영국 소설가 로알드 달은 자신의 정원에 있는 과일나무를 관찰하던 중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의 영감을 얻었다. <자기만의 방>으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는 <큐 가든>에서 <댈러웨이 부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설에 자신이 아는 정원을 엮어 넣었고,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의 추리소설 곳곳에 자신이 사랑하는 정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곤 했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시보다 앰허스트 정원의 소유자로 더 유명했다.

오래전부터 걸출한 작가들은 잘 가꿔놓은 정원에 마음을 쉽게 빼앗겼던 것 같다. 키 큰 너도밤나무, 초원을 가득 메운 민들레 등 작품을 쓰는 데에도 생생한 영감이 되어준 것이다. 하지만 이 목가적인 정원은 현대인에겐 너무나도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여러 편의를 저버리고 교외 지역에서 살지 않는 이상, 집을 제외하고 정원을 마련하기 위한 손바닥만 한 땅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일본 작가 야마자키 나오코라가 쓴 정원에 대한 예찬은 훨씬 더 솔깃하다. 그는 소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로 2004년 아쿠타가와상 등 일본의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며 문단의 샛별로 떠오른 작가다. 야마자키의 정원은 집 안 한쪽의 베란다에서 시작한다. 투명한 새시 창 너머로 언제든지 곁에서 감상할 수 있는 가깝고 작은 정원이다.

‘나의 베란다 정원 일기’라는 부제가 달린 <햇볕이 아깝잖아요>를 펼치면 이상하리만큼 녹색 식물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야마자키의 담백하고 단단한 생각은 작은 열매에서, 나무에서 끊이지 않고 자라난다. 야마자키는 솔직하고 대담한 문체로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정작 그는 한동안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지독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 30대에 접어들자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 결혼 후 유산까지 지난한 시간을 보내며 이 책을 써나갔다고. 야마자키에게 정원 가꾸기는 가뿐한 마음으로 돌보는 취미 생활이라기보다 자신을 치유하고 인내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먹을 것을 가지고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나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명을 취하는 것도 아니고, 생계를 위해 필사적으로 키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삶에는 생존이 전부가 아니듯, 베란다에도 목적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나의 모히토를 위해, 나의 베란다 아침을 위해 식물을 기른다.”




야마자키는 27살에 처음으로 독립해 거의 2년마다 이사를 했다. 이사할 때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소설가로서 다양한 장소를 알아두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고, 소음 때문에 창문도 열지 못하는 5평의 방에서 넓은 도로변 아파트의 3층 집 등을 전전하면서도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집을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전망이 좋을 것, 시끄럽지 않을 것’ 이 두 가지 조건에만 집중해 후지산 아래 남향 집을 선택한다. 빛이 가장 많이 머문다는 남향 집에서 야마자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작은 화분을 들여 베란다 가드닝을 시작한 것이다.

대체로 베란다 가드닝 하면 이름도 외우기 힘든 멋진 식물과 값비싼 화분, 가드닝 도구를 먼저 떠올리는데 야마자키의 가드닝은 그의 성격대로 합리적이고 깔끔하다. 야마자키가 먹다 남은 과일 씨를 심거나 채소 뿌리를 다시 심는 등의 실험을 하는 이유는 일상에서 친숙한 작물을 기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녀에 따르면 베란다에서 먹기 위해 기르는 식물로는 허브류, 토마토, 방울토마토, 여주, 풋콩 등이 적당하다. 이런 식물은 바로 먹을 수 있지만 딸기, 마카다미아, 자몽, 아보카도는 열매가 열릴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페퍼민트는 자생력이 매우 좋아서 물만 잘 주면 그냥 내버려두어도 쑥쑥 자라난다. 베란다 정원의 초심자가 새겨두면 좋을 팁이다.





위 사진은 책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 ⓒ Sonelly745 / Dreamstime.com



위 사진은 책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 ⓒ prof203522 / PIXTA




이 책에서 야마자키가 자신의 베란다 정원에 정착하고 나서부터는 한 편의 글에 하나의 식물이 등장한다. 여느 가드닝책과 달리 <햇볕이 아깝잖아요>만의 매력이 있다면, 식물이라는 소재에서 동일본 대지진이나 30년 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고 개미만 지켜봤다는 노령의 작가, 소극적인 인간관계, 세상의 솎음질 등 뜻밖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식물에서 비롯된 삶에 대한 통찰은 “인생의 덧없음을 알기 위해 정원을 키운다”는 야마자키의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자라면 자라는 대로, 시들면 시드는 대로 남들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책을 마무리할 때쯤 어느덧 마흔이 되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그는 더 이상 베란다 정원을 가꾸지 않는다. 시시하든 특별하든 지금은 그저 뚜벅뚜벅 살아가는 그는 언젠가 다시 정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페이지를 닫는다. 한동안 베란다에서 가꿨던 정원이 지금은 그 곁에 없어도 결국엔 마음속 한구석에 든든하게 남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식물이 싹을 틔울 때까지 시행착오를 겪고 끊임없이 생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에 요즘만큼 적절한 시기도 없을 테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데에서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면 지구의 리듬을 거스르지 않고 꾸준히 자라는 초록 식물을 집 안에 들여보자. 여러해살이 풀처럼 지금은 비록 이파리가 시들고 떨어지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새로운 싹이 돋아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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