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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culture, essay, 도시, 다양성, 공동주택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저자 이인규 에세이

Text | 이인규
Photos | 이인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통해 집의 의미에 대해 오래 생각해온 저자 이인규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클럽하우스’에서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열띤 토론의 소회를 보내왔다. ‘공유 주거’, ‘탈서울’, ‘주거 정책’ 등에 대한 얘기를 듣던 그가 답답한 마음에 스피커가 되어서 했던 말은 무엇일까?







목소리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클럽하우스’가 한국에서도 퍼져나가던 시기에 재미 삼아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린 적이 있다. 남의 집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다 보니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신가요?’라는 제목의 방이 눈에 띄었다. 대화 중인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자그마한 방인 것도 마음에 들어서 한번 들어가 보았다.

 

정부에서 주거 대책을 연이어 제시하던 시기였던 터라, 내가 그 방에 입장했을 때는 정부의 주택 정책에 대한 비판과 집값 상승에 대한 우려와 상대적 박탈감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조금 아쉬웠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집에 대해 다들 이런 얘기밖에 할 말이 없는 걸까? 이런 이야기라면 그냥 뉴스를 볼까도 싶었는데, 다행히 색다른 주거 형식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들려주는 이들도 있어서 초반의 심드렁한 태도에서 벗어나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남성 전용 공유 주거 공간에서 수년째 살고 있는 40대 남성도 있었고, 청년 주거 문제 해결에 앞서는 시민 단체에서 활동하는 20대 청춘도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직접 들을 기회가 없던 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으니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공유 주거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이도 있었다. 한국에서의 ‘공유’라는 것은 다분히 이상주의적 발상이며 ‘온전한 집’을 갖지 못한 이들이 자신의 상태를 미화하는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온전한 집’은 뭘 말하는 걸까. 흔히 생각하는 단란한 가족의 단독주택 같은 것일까. 아니면 대단지의 4베이 남향집 같은 걸까. 공유가 이상주의적 허상에 불과하다면 새로 짓는 대단지 아파트에서 특화 설계라고 강조하는 단지 조경이나 커뮤니티 센터, 그 유명한 인피니티 풀 같은 것도 포함해서 하는 얘기일까. 왜 아파트 단지의 공유는 집값 상승 요인이 되지만, 공유 주거의 공유는 이렇게 비하되는 걸까.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이기보다는

그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이 아닐까.

 



답답한 마음에 손을 들어 스피커로 참여했다.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온전한 집’이야말로 어쩌면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로 만들어진 환상이자 고정관념일 수 있지 않을까. 가족 구성과 사회구조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 만큼 집도 다양한 방식으로 새롭게 실험하고 시도하는 것이 어쩌면 더 건강하고 안전한 길이 아닐까. 결국 집이라는 건 각자의 삶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를 던졌다. 다행히 몇몇 분이 공감해주었고, 자연스럽게 우리가 만난 대화방의 주제인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신가요?’에 관해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화의 방향이 흘러갔다.










한 분이 최근에 이사하며 어떤 동네에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다가 자신이 살고 싶은 동네를 고른 독특한 기준을 이야기해주었다. 부동산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최대한 집값 변동 폭이 작은 동네 위주로 집을 알아보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집값이 요동치지 않는 동네는 특별한 개발 이슈가 없다는 얘기고, 그만큼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동네라고 판단했다는 거였다. 처음 들어보는 동네 선택 기준에 다들 신기해했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대외적으로는 잘 이야기하지 않았던 나의 ‘탈서울 로망’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지방의 작은 도시 한 곳을 점찍어두었는데, 그 도시를 선택한 이유가 도시 전체에 매장된 문화재가 많고 교통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서 적어도 내가 사는 동안에는 큰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이 투기를 목적으로 사기에는 좋지 않으니 오히려 살기에는 좋은 곳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마침 그 대화방에 내가 이야기한 그 도시를 나처럼 마음속에 점 찍어둔 이가 있었고, 우리는 고향 친구라도 만난 듯 서로 반가워했다.








‘어떤 집에 살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특정한 공간의 유형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집 주위의 환경과 분위기, 함께 살아갈 사람과의 관계를 더 많이 이야기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게 아쉬울 만큼 이야기가 새로웠고, 마음은 한결 편안했다.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집에 대한 로망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이기보다는 그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이 아닐까. 우리가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언론에서 쏟아지는 집값의 오르내림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갈 각자의 삶의 모습을 더 많이 꿈꿀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환경도, 우리의 삶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이인규 |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집의 의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공간에 엮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 공간의 서사를 기록하는 일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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