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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culture, essay, 노마드, 호텔, 다양성, 공동주택

소지품 100개 이하로 사는 미니멀리스트의 집

여행 작가 박건우 에세이

Text | 박건우
Photos | 박건우

추운 날에는 태국으로, 폭염의 날씨에는 바다가 가까운 제주도로, 어디든 살고 싶은 곳에 사는 노마드 생활은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삶이 아닐까. 여행 작가이자 유튜브 채널 ‘미니멀유목민’을 운영하는 박건우는 그렇게 살아왔다. 30분 안에 이사할 수 있을 정도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그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그는 일본 미에현에서 답을 보내왔다.




제주도 한 달 살기로 동서남북을 돌던 20209.

 



살기 위한 본능, 여행

방 한 칸당 3평 남짓한 태국의 여행자 숙소. 여기서 만난 9살 연상 일본 여성과 연애 4개월 만에 부부가 되어 11년이 지났다. 밑천 없이, 장난처럼 맺어진 우리에겐 시작부터 공간이 없었다. 정확히는 공간을 마련할 능력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아내가 근무하던 직장 기숙사에서 신혼 생활을 했다. 우리는 결혼 전부터 각자 장기 여행을 일삼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저축의 대부분은 여행을 위한 용도였다. 왜 그런 생활을 했는지는 이성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저 살기 위한 본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정착하면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아 일단 떠나야 했다.

 

코로나19 발생 전에는 매년 절반은 여행 인솔자로 일하고 늦가을부터 봄까지는 반대 계절인 나라에서 지냈다. 흔히 말하는 안정된 미래를 위해 추운 걸 견딜 인내심이 없었다. 공기가 차가워지면 주저 없이 떠났으니 삶의 행복 지수는 높았다. 이상적인 노후 생활도 미리 다 체험했고 이상적인 나라 역시 찾았다. 미래의 청사진이 그려지자 조급함도 치열함도 줄었다. 이 모든 배경은 우리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데서 왔다.

 



미래의 청사진이 그려지자 조급함도

치열함도 줄었다. 모든 배경은 우리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데서 왔다.”

 



물건은 적게, 삶은 넓게

필자는 38살에 소유한 모든 물건이 100개 이하다. 물론 면봉은 여러 개를 하나로 치지만 ‘그것마저 셀 줄은 몰랐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직하게 구분했다. 볼펜은 한 자루도 없다. 1년 전까지만 해도 한 자루는 있었는데 지금은 사용할 일이 없어 방출했다. 양말은 여러 인체 실험(?)을 거쳐 한 켤레만 남기게 되었다. 나아가 반팔은 한 장, 속옷은 두 장 있으며 장신구와 의류를 모두 다 더해도 20벌이 안 된다. 그러나 자부할 수 있다. 누구보다 청결에 신경 쓰고 있다고. 빨랫감을 쌓아두지 않고 매일 손빨래하면서 위생을 더 의식하게 되었다. 아내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다. 그래서 소지품을 세는 유치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대신 세어본 적도 없지만, 여행 다닐 때 보면 나와 짐이 비슷하거나 더 적을 때도 있다.




태국 북부 치앙콩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 묵은 오두막 게스트하우스



 

시간을 만드는 건 간단하다. 지금 수입 이상으로 욕심을 낸다면 시간에 쫓기겠지만, 많은 돈을 벌 필요가 없으니 버거운 일은 다 쳐낸다. 꼭 사고 싶은 물건도 없다. 따라서 생활비는 항상 남는다. 먹고 싶은 걸 다 먹어도 남는다. 우리가 먹고 싶은 건 주로 야채이기 때문이다.

 

집은 한국에서 전세를 계약한 적 있는데,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전세였다. 보증금 사기로 법원을 오간 이후로는 장기 계약에 목돈을 맡기지 않기로 다짐했다. 어차피 겨울은 지났고 집에 1년 내내 있어 본 적도 없겠다, 보관할 짐만 없다면 집이 없는 편이 나았다. 이걸 현실화하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먼지 쌓인 물건, 안 쓰는 물건, 장식품 등을 정리하니 혼자 힘으로 이사를 다닐 수 있을 만큼 짐이 줄었다. 이때부터 호텔같이 깔끔한 집에 살고 싶으면 집을 그렇게 꾸미는 게 아니라 이삿짐을 들고 호텔로 가면 됐다. 단순히 필요한 물건만 남겼을 뿐인데 이동 반경이 범우주적으로 넓어진 것이다.




20182월 인도 티루반나말라이. 무료로 숙식 가능한 아루나찰라 명상 센터.



 

집 때문에 설렘을 외면하지 않도록

그러다 맞이한 코로나19라는 불가항력 사태. 보장된 수입원을 한순간에 잃고 겨울을 농락하던 철새놀이 같은 일상이 중단됐다. 그동안 만족해온 삶에 깊은 우울이 드리웠다. 자유로운 방랑자에서 갈 곳 잃은 불청객이 된 기분이었다. 우리의 이상은 접어두고 일본 미에현의 처가 댁으로 갔다. 꽤 긴 시간 동안 집을 계약할 일이 없을 것 같았으나, 이런 생각을 바꾸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집을 선택하는 경로는 보통 세 가지다. 월세, 매매, 건축. 우리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맞춰 빈집 매매를 알아봤다. 매물은 간단히 찾을 수 있었다.

 




현재는 미에현 마을 건축 사무소 기숙사 방에서 단기로 사는 중이다.

 



미에현의 쇠퇴한 어촌은 이층집이 500만 원부터 매매 가능했고 다른 빈집도 대부분 5000만 원 이하였다. 산골 마을은 집을 사면 땅을 주거나 산을 주기도 하는데 평균 거래가가 3000만 원 전후였다. 매물로 나온 집 중 50평 이하는 100채 중 한두 채였다. 즉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든 집이 대저택 독채에 창고마저 딸려 있다. 이게 걸림돌이다. 짐이 적은 2명이 큰 집에 사는 건 공짜로 살라고 해도 엄두가 안 났다. 우리는 여전히 미니멀리즘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넉넉잡아 15평도 우리에겐 충분하다. “서면 0.25, 누우면 0.5평”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2명이 누워도 1평이면 되는데 어찌 15평이 부족하겠는가?





2019 12월 치앙마이 숙소에서 유튜브 편집 중. 여행 인솔자 일을 쉬는 동안은 유튜브를 통해 생활비를 마련한다.



 

미에현에서는 15평 이하 집을 구하려면 맨션에 세 들어 살며 2년간 얌전히 지내거나 목돈을 들여 독채를 지어야 한다. 어느 쪽을 정하든지 결혼보다 큰 결심이 필요했다. 그런데 선택할 수가 없었다. 백신 보급률이 높아지고 트래블 버블 소식이 들려오면서 없던 학구열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동 문턱만 낮아진다면 즉시 대만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계획이다. 현재는 마을 건축 사무소 기숙사 방 하나를 단기로 빌려둔 상태다. 불혹과 지천명을 앞둔 딩크족 부부는 머릿속 번뜩임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직은 집을 갖지 않기로 했다. 소지품 100개 이하로 사는 미니멀리스트에게 집이란 요양하기 전에만 고르면 되는 느긋한 선택이다.

 


박건우 | 박건우는 여행 작가로 198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0분 안에 여행을 떠나고, 20분 안에 가진 물건을 다 세며, 30분 안에 집을 버릴 수 있는 궁극의 미니멀리스트다. 유튜브 채널 '미니멀유목민'을 운영하면서 13 2000명의 구독자에게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며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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