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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에 산다는 것

빌라플럼 손현경 에세이

Text | 손현경
Photos | 손현경

<집과 산책>의 저자이자 게스트하우스 빌라플럼 대표 손현경에게 작은 집은 어떤 의미일까? 차고에 딸린 방을 국내외 여행객들이 두루 찾는 멋진 게스트하우스로 변신시킨 그만의 노하우에 대해 들었다. 작은 집에서의 생활은 똑똑한 수납 정리법은 물론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을 가려내고, 잘 돌보는 방식을 알려줬다.









4평 작은 집으로 충분한 삶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병상의 아내를 위해 생일 선물로 지어준 호숫가 오두막집.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지은 오두막집. 이 두 집은 고작 4평 남짓의 작은 집입니다. 그들이 사랑했고 안식을 찾았던 집의 크기는 고작 4평이면 족한 것이었지요. 저는 4인 가족으로 그들보다 훨씬 넓은 집에 살고 있지만, 두 사람의 집 이야기를 읽으며 ‘집의 의미’와 ‘집의 크기’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곤 했습니다.


 

크고 넓은 집, 특히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에 산다는 것이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인 듯 집을 자산 가치 자체로 여기는 요즘, 집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작은 아이의 초등학교 배정으로 저희 가족은 넓은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사실 학교는 핑곗거리였고 전 예전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동네, 혜화동을 선택했습니다. 전보다 많이 작아진 평수 때문에 저희 가족은 혜화동 집을 힘들어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사람은 상황에 맞게 적응하는 동물이라 작은 집에서 최대한 즐겁게 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집을 활용하는 지혜

침대는 모두 헤드가 없고 하단에 수납공간이 있는 형태로 바꾸어 철 지난 옷이나 이부자리를 넣어두었습니다. 기존 그릇장은 중고로 팔고, 눈으로만 즐기거나 더는 필요하지 않은 식기는 모두 처분했지요. 책은 집에서 의외로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데 책장을 둘 만한 바닥 공간이 없어 벽 선반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가족의 공용 공간인 식탁이 있는 자리 뒤편에도 벽 장식의 책장을 짜 넣었지요. 거실은 소파를 들이기에는 공간이 작아 과감히 소파를 포기하고 벽걸이 선반과 기존의 사이드보드, 일인용 암체어로 거실을 꾸몄습니다. 대신 가족이 모두 모이는 메인 공간이 거실 소파가 아닌 식탁이 되었지요.



 







좁은 집일수록 식탁은 커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식사를 위한 용도가 아니라 작업도 하고, 공부도 하고, 독서도 하는 멀티 공간이 되어야 하기에 큰 테이블은 여러모로 꽤 쓸모가 있지요. 작은 집을 여유롭고 멋진 집으로 장식할 수 있는 인테리어 요소로 식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식물은 그림이나 소품 그 이상으로 인테리어를 극대화해줍니다. 심심하고 쓸쓸한 공간에 식물을 하나 턱 놓아두면 따듯한 공간으로 변모하지요. 흐린 벽돌빛 토분으로 적당히 통일감을 주고, 잎사귀가 큰 아이, 열매가 열리는 아이 등 다양한 식물을 곳곳에 놓아두면 공간마다 빛이 난답니다.



 







저는 식물을 의도적으로 모아두지 않고 군데군데 놓아두는 편입니다. 눈이 닿는 곳곳에서 초록을 느끼고 싶어서요. 저희 집 베란다는 폭이 무척 좁아서 식물을 맘껏 들여놓을 수 없기에 자연스레 관리하기 쉽고 오래 사는 식물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화분조차 자리를 차지하기에 천장에 걸어 멋스럽게 내려오는 행잉 플렌트나, 선반에 놓을 수 있는 크지 않은 화분, 생화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집으로 이사 온 후 생긴 큰 변화는 틈나는 대로 치우지 않으면 발 디딜 곳이 없다는 것이에요. 택배가 오면 현관에서 즉시 상자를 개봉하고 물건을 꺼내 정리합니다. 그래서 신발장 위에 둔 적절한 공병이나 서랍에 가위나 칼을 넣어두면 편리하고요.


 

집 한쪽에는 ‘비움 바구니’를 두어 내겐 필요하지 않지만, 상태가 좋거나 누군가에게 쓸모 있을 만한 것을 모아둡니다. 중고마켓에 내다 팔기도 하고 원하는 지인에게 주기도 하지요. 가득 차 있던 바구니가 비워지면 바구니는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 즐거운 비움이 된답니다.



 

이른 새벽 온도, 여름밤 공기, 계절의 변화,

텃밭의 채소를 수확하는 놀라움 등 집 안팎으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얼마든지 있답니다.”



 

아름답고 옛스러운 동네에 살다 보니 집에서 가볍게 시작하는 발걸음이 산책이 되었습니다. 좁은 집에서 외부로 향하는 산책은 공간의 확장이 되기도 하지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 꼭 집 안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른 새벽 살에 닿는 차갑고 기분 좋은 온도, 여름밤의 공기, 꽃과 나무가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 텃밭의 채소를 수확하는 놀라움 등 집 안팎으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얼마든지 있답니다.








나의 작은 숙소, 빌라플럼

저희 집을 이야기할 때 저희 집보다 더 작은 숙소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네요. 혜화동의 집 차고에는 작은 방이 있었습니다. 5평 남짓하는 작디작은 방이었지요. 제겐 20대부터 간직해온 꿈이 있는데, 작은 숙소의 호스트가 되어 피곤한 여행객들에게 청결한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도 추억할 수 있는 여행지의 숙소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했지요.










차고의 작은 방은 ‘빌라플럼VillaPlum이라는 이름으로 게스트를 맞이하는 숙소가 되었습니다. 이 작고, 초라한 차고에 딸린 방에 누가 올까 고민하던 많은 갈등의 시간이 지나 저는 오래된 꿈을 이루어 호스트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간 국내외 많은 게스트들과 함께한 이야기는 이 지면에 모두 실을 수 없을 만큼 값진 경험을 주었습니다. 빌라플럼의 추억과 산책의 기쁨, 작은 집에서 똑똑한 수납과 정리를 하며 살아온 시간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작은 집은 저의 생활을 단순하게 해주었고, 작은 물건을 고를 때도 깊은 고민을 하게 합니다. 작은 집은 제게 진짜 좋아하고 필요한 것만 고르는 요령을 알려주고, 삶의 중요한 그 무언가를 알게 해준 고마운 존재입니다.



 

손현경 | 집 차고에 딸린 작은 방을 정성스럽게 고쳐 게스트하우스 빌라플럼을 운영했다. 국내외 여행객들과 만난 이야기, 빌라플럼을 꾸리며 겪은 이야기를 엮어 책 <집과 산책> 을 냈다. 증권사, 광고 회사, 영어 학원 등에서 다양한 직업을 거친 손현경은 15년째 집으로 출근하며 집을 돌보고 가꾸는 일이 천직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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