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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라이프스타일, 홈데코

집에서 술집으로, 술집에서 집으로

<시시알콜> 큐레이터.DJ 김혜경 에세이

Text | 김혜경
Photos | 김혜경

김혜경은 술 마시면서 시를 읽고 얘기하는 팟캐스트 <시시알콜>의 술 큐레이터이자 DJ다. 최근에는 지금껏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 단골 술집에 관한 에세이책 <아무튼, 술집>을 펴내기도 했다. 그의 이력만 보아도 애주가임은 자명하다. 작업실을 얻으며 처음으로 독립한 집에도 그는 술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김혜경과 술, 그리고 집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관한 글이다.








한 음절 차이로 달라지는 '' '술집'

집과 술집, 고작 한 음절 차이로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그 차이를 아쉬워하던 20대의 나는 주로 집보다 술집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독립하지 못한 처지가 그렇듯 ‘내 집’이 아닌 ‘아버지 집’에 살던 때였다. 내 방이라 지만 내 취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벽지와 초록색 체크무늬 침대보 사이에 몸을 집어넣을 때마다 마음도 조금씩 구겨지는 것 같았다.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술잔을 사 모았다. 오롯이 내 소유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이 늘어날 때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부피도 그만큼 늘어나는 것 같았다. 나의 꿈 역시 커졌다. 내가 원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는 공간을 갖는 꿈이었다.








세상에서 술 마시기 제일 좋은 곳, 작업실

나는 ‘작업실’이라 부르는 공간을 먼저 구했다. 회사 근처 이태원 인근에서 월세 25만 원짜리 원룸을 발견하곤 곧장 계약했던 기억이 난다. 몹시 좁은 데다 바닥은 기울어고 벽지가 낡았으며 창틀은 녹슬고, 간혹 날아다니는 바퀴벌레가 출몰하기도 했지만 허접한 만큼 부족한 나도 채울 수 있는 곳이었다. 나와 애인(지금은 남편이 된) 승용은 직접 벽지를 바르고 바닥을 깔았다. 에는 좋아하는 술병을 빼곡하게 늘어놓고, 한가운데 일본에서 수입한 커다란 코타츠 테이블을 두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꼭 막차엔 ‘작업실’ 가자며 그들을 이끌었다. 나의 작업 멘트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세상에서 술 마시기 제일 좋은 곳이 있다. 작업실을 운영했던 2년여 동안 많은 친구들과, 친구로 삼고 싶은 이들이 그곳을 다녀갔다. 우리는 그때마다 서로를 보며 웃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다고. 친구들이 편하게 취하고 작업실을 아껴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공간을 꾸린 스스로가 대견.



홈 바의 인테리어를 위한 빈 술병

요즘 술꾼들은 집에 홈 바를 둔다고 한다. 홈 바란 집 안에 바처럼 꾸 공간을 말한. 나는 집에 바가 있다기보다는 집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이길 바란다. 집이 가장 편안하고 안온한 술집이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술집이란 술에 이어 끝내 마음까지 꺼내놓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니까. 집 어디서나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술이 있다. 특히 싱글몰트위스키가 많다. 병 모양이 독특해 인테리어 요소로도 훌륭하고, 상온에 오래 둬도 는 보관상의 이유도 있다. 오래 두지 못하고 금방 마셔버릴 때도 많지만 빈 술병을 놓아두기만 해도 좋다. 술마다 담긴 추억이 제각기 달라서 술병을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출판사와 책을 계약하고 나서 계약금이 들어왔을 때 원고료의 3분의 2 정도를 지불하고 산 위스키’라는 식이다. 발베니 튠 1509, 글렌드로낙 CS 배치 시리즈, 글렌피딕 30, 글렌모렌지 시그넷, 블랑톤 스트레이트 프롬 더 배럴 같은 값비싼 위스키마다 집에 입주하게 된 특별한 사정이 있다. 덕분에 그 술을 마시거나 술병을 볼 때마다 당시의 기쁨을 진하게 누린다. 좋은 일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소중한 기억으로 가득 채운 맥시멀리스트의 술집 그리고 집

술 말고도 온갖 물건이 집 안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집은 아무래도 그 공간에 는 사람의 취향이 담긴 물건 모이는 거대한 보물 창고이기도 하니까. 특히 나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맥시멀리스트인 탓에 집 안에 여백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아버지 집에 있던 내 방, 이태원에 있던 작업실보다 물건을 놓아둘 공간 훨씬 더 커졌지만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집이 점점 좁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래도 좋다. 지금의 집은 가장 행복했던 기억의 조각들과, 미래에 지니고 싶은 취향의 조각들이 나를 감싸고 있는 공간이니까. 그 모든 것이 내가 직접 고르고 값을 지불한 나의 취향이니까.




그 모든 것이 내가 직접 고르고

값을 지불한 나의 취향이니까.”




공간을 채운 기억은 더 빼곡하다. 나와 남편, 그리고 반려견 똘멩이가 더불어 지 일상의 시간들로. 우리 집을 술집처럼 다녀 친구들과 함께 지새운 밤들로. 몸은 불편해도 마음이 편한 곳에서 술을 마시겠다며 줄곧 밖으로 나돌던 나는, ‘집보다 술집’을 부르짖던 나는, '작업실’이라도 만들어야 했던 나는, 그렇게 살던 기억을 그러모아 <아무튼, 술집>이라는 책도 쓴 나는, 이제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 집순이가 되었다. 집이 그저 술집일 수만은 없다. 사실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시간이 더 기니. 집은 가끔 술집이 될 뿐이. 그래도 이제는 집과 술집, 그 한 음절의 차이가 아쉽지 않다.




김혜경 | 회사를 다니며 팟캐스트를 기획·제작하고 글을 써서  돈으로  마신다<아무튼술집>, <시시콜콜 시시알콜취한 말들은 시가 된다> 썼다 읽으며  마시는 팟캐스트 <시시알콜>에서  큐레이터 ‘DJ풍문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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