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멋진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낯선 곳에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익숙한 곳으로 만들어가는, 즐겁지만은 않은 과정을 묵묵히 이어간다. 하지만 이방인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외롭고 낯선 느낌은 쉽게 지울 수 없다. <투룸매거진>의 차유진 대표는 이국과 모국에 2개의 방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매거진을 만든다. 그의 시선을 통해 잠시나마 너무 익숙하기만 했던 집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보낸 나의 20대는 방 하나의 삶으로 요약된다. 대학 기숙사의 작은 방, 능동의 작은 원룸, 그리고 논현동 셰어 하우스의 방 한 칸까지, 어찌 보면 작은 상자 속의 삶을 살았다.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서 몇 개째인지 알 수 없는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노트북 자판을 쉴 새 없이 두드리던 어느 날, 원하지 않는 삶의 컨베이어 벨트에 타고 있는 내 모습을 목격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나는 아직 가고 싶은 곳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라는 결론에 다다랐고, 결국 취업을 포기하는 다소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3년 12월, 나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얼굴로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렇게 나의 모국과 이국의 두 방을 오가는 삶이 시작되었다.
여유로운 독일에서 분주하기만 한 이방인의 삶
나의 두 번째 방에서의 삶은 빠른 속도로 굴러갔다. 이방인이란 결국 여유로운 유럽 국가에 정착하기 위해 끝없이 밀려드는 생존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기 때문일까. 처음 한 달은 내가 독일에서 가장 먼저 정착한 도시인 쾰른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이리저리 눈에 담으며 밀려드는 불안을 애써 외면했다. 한 달이 지나고 나서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언어 공부에 매진했다. 독일어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3여 년의 시간이 지나 쾰른 대학교 사회심리학 강의실에 눈을 멀뚱거리며 앉아 있었다. 다시 대학에 다니면서 새로운 친구를 하나둘 사귀기 시작하고 학교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집을 오가며 다른 이들도 으레 살고 있는 제대로 된 일상을 살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매일 산책하는 베를린 집 뒤편의 산책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에 그토록 원하던 안정감이 찾아오자 스스로 '나의 집은 도대체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낯선 이국에 정착해 살아가다 한숨 돌리기 위해 3~4년에 한 번씩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 애써 집중하지 않아도 바로 이해되는 언어와 익숙한 장소, 그리고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향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그 상상만으로도 이방인은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도착해 거리를 걸으며 도시 풍경이 낯설다는 걸 감지할 때, 서울 사람들의 걸음걸이 속도에 맞춰 걷지 못할 때, 그리고 만원 전철과 버스에서 답답함을 느끼게 되면 이국에서 느낀 이방인의 감정이 기다렸다는 듯 다시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제야 깨닫는다. 나는 첫 번째 방으로 돌아온 사람이 아닌, 잠시 들렀다 두 번째 방으로 돌아갈 사람이라고.
“그제야 깨닫는다. 나는 첫 번째 방으로 돌아온
사람이 아닌, 잠시 들렀다 두 번째 방으로 돌아갈 사람이라고.”
졸업을 한 학기 앞둔 2020년 2월, 나는 입사하고 싶은 회사 이름을 쭉 적는 것으로 뒤늦은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이미 상경 계열을 전공했으니 독일에서 심리학과 졸업장을 손에 넣으면 취업에 무리가 없겠다는 근거 없는 확신을 하며 드디어 일반 회사원이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살았다. 그 무렵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코로나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독일의 취업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었고 취업은커녕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소식만 들려왔다. 학교 수업도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고, 록다운이 시작되어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고 집에만 있는 나날이 이어졌다.
혼란스러운 코로나 시국에 고민이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갑자기 고요해진 도시에서 나는 묘하게 안정감을 느꼈고, 독일에 온 이래 처음으로 제대로 된 휴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하루는 종이 한 장을 꺼내 가운데에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나의 앞날" 이라고 쓴 다음 마인드맵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가지가 뻗어나가고, 거기에 스스로 잘한다고 믿고 싶은 일들의 가지가 더해져 '그렇다면 해외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모아 온라인 매거진으로 만들어보자'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고요한 록다운 기간 동안 우리 집 거실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나는 매거진의 대략적인 콘셉트를 잡고, 건너 건너 알던 옆 동네 사는 강지명 작가와 손잡고 2021년 1월 1일 첫 번째 <투룸매거진>을 탄생시켰다. 매체에서 일해본 적은 없지만, 그저 쓰고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나 밤낮으로 일해 만든 <투룸매거진>은 지금까지 매달 이국과 모국 두 공간을 오가며 살아가는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름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베를린 집 근처 Krumme Lanke
이국과 모국 두 공간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얼마 전 쾰른에서 베를린으로 이사 오면서 <투룸매거진>을 만드는 사무 공간이 한결 넓어졌다. 낮이면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실 한쪽에 앉아 국경 너머, 바다 건너 사람들과 화면을 통해 만난다. 내가 있는 곳은 캄캄한 밤인데 화면 속 인터뷰이가 앉아 있는 풍경은 대낮인 경우도 많다. 단지 2개의 방을 마음에 품고 산다는 공통점만으로 <투룸매거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유하고 나눈다.
해외에서 유학한 뒤 직장을 잡으며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와 주변 공동체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춥고 어두운 이국의 긴 겨울을 견디게 하는 따뜻한 음식 레시피를 공유하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건네는 위로, 그리고 자신이 거둔 성취를 자기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닌, 열심히 2개의 방에서 살고 있는 당신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힘내라고, 함께 잘되자고 손 내미는 이야기를 <투룸매거진>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큰 기쁨이자 영광이다.
독일에 산 지 어언 8년이 되어간다. 독일어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어렵고, 종종 겪는 인종차별과 느린 행정 속도에 마음이 지칠 때도 있다. 하지만 내 파트너가 있고 너무나 사랑하는 <투룸매거진>이 만들어지는 베를린 집이 이제 '우리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된 것 같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사는 한국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자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방이 2개나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일 뿐이다.
차유진 |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큰 고민 없이 일단 해보는 성격 덕분에 독일로 이주해 생애 두 번째 대학 입시도 치렀다. 지금은 베를린 자택 거실에서 해외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투룸매거진>을 제작·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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