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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가드닝, 다양성, 반려식물, 재생, 친환경

정원사의 집을 닮은 정원

이대길 정원사

Text | Daegil Lee
Illust | Jungmin Son

집의 조건 중에서 안락함, 편안함, 안전함 등이 전제된다면 정원사에게 집은 정원이기도 하다.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 자연은 태초의 집이었고 이를 잊지 않기라도 하는 듯 정원사는 정원이라는 집을 지어 생을 살피며 삶의 안정을 찾는다. 온통 초록 에너지가 생동하는 요즘, 자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정원사는 정원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정원사의 일터이자 쉼터로서 정원

나의 일상 대부분은 정원사라는 업으로부터 떠오르는 생각으로 채워진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이건만, 찾아온 나비를 반가이 바라본다. 문득 많은 이들이 바쁜 일상의 반작용으로 정원과 같은 비워질 수 있는 공간을 바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닿는다. 멀리 가지 않고도 편안하게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 말이다. 내게도 무던히 흘러가는 자연처럼 별다른 손길 없이도 매 계절의 흐름에 따라 조용히 흘러가는 작은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와 같은 마음이 드리운다. 그 작은 정원에 나비와 벌, 여러 풀벌레까지 맞이할 수 있음은 위기에 처한 생태를 조금이나마 도울 희망까지 깃든다.



요 며칠 정원 작업을 위해 나무와 풀을 보러 다니다가 오랜만에 정원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화단 앞에 앉아 약간의 먹을거리와 함께 차를 마셨다. 그간 여유가 뜸했던 건지, 시야에는 낯섦이 서려 있었다. 꽃은 제 시간을 어기지 않고 져버린 채 검게 맺은 씨앗만 가득한 풍경을 만들고, 몇몇 꽃이 희미하게 피어 낱장의 꽃잎으로 색을 밝히고 있다. 남은 여백엔 핍박받는 들풀이 어우러진다. 누구에게는 볼 것 없는 풍경이지만 그 계절만의 순수한 모습이 좋다. 그렇다고 이 화단에 화사한 계절이 없었음은 아니다. 생기 어린 계절을 지나 겨울을 보내고 있을 뿐 매 계절이 잠들고 깨기를 반복한다.



자연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무척 달랐다. 정원사로 지내는 만큼 흙과 식물을 가까이 접한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과 몇 년 전의 일상은 자연과 동떨어져 있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 자연은 그저 배경일 뿐이었고 주체가 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자연을 좀 더 이해하고 싶어졌고, 이제는 자연을 살피고 그 흐름 속에 내가 숨을 쉬고 흘러가고 있음을 인식한다. 작은 크기의 정제된 시를 읽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듯 정원에서 목격하고 쌓인 경험이 더 넓은 자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길가의 가로수는 물론 숲의 나무, 더 나아가 물의 순환, 계절의 흐름, 곳곳의 풀과 나무의 안위까지 두루 생각이 닿는다. 그와 함께 무채색이었던 일상은 꽃이 피고 열매가 맺듯이 그 흐름 안에서 여러 색을 띠고 풍성해져만 갔다.




비어 있어서 풍성한 정원사의 집

그전까지는 몰랐던, 들여다봐야 보이는 지구 절반의 혹은 전체의 세계였다. 신기하게도 이 풍성함은 오히려 마음을 비워주는 듯하다. 그 풍성함 속에 균형이 있고 정교한 질서가 흐르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하기만 한다. 그러한 질서와 균형을 보고 배워 삶에도 조금씩 드리운다. 집의 조건 중에서 안락함, 편안함, 안전함 등이 전제된다면 정원사에게 집은 정원이기도 하다.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 자연은 태초의 집이었고, 이를 잊지 않기라도 하는 듯 정원사는 정원이라는 집을 지어 자신을 포함한 여러 생을 살피며 삶의 안정을 찾는다. 그 세계를 여전히 알아가고 있을 뿐이지만 그 안에서 기쁨과 슬픔, 여러 감정과 생각이 다채롭게 깃들 수 있다는 것만큼은 어렴풋이나마 아는 듯하다.



글을 쓰는 동안 계절이 어느새 바뀌었다. 섣부른 마음에 식물을 심으려 파낸 흙 아래 단단히 얼어 있는 흙을 마주했던 날들을 지나 고슬고슬 갓 지은 밥같이 적당히 촉촉한 부드러운 흙이 매만져지는 봄을 오늘 맞이했다. 봄이 햇빛을 따라다니는 모양인지 햇빛이 오래도록 드는 양지바른 곳에서는 잎은 물론 몇몇 꽃까지 피어나 하늘거린다. 며칠 후엔 봄볕이 아마 온 세상을 싹 틔울 것이다.




이대길 | 원예학을 공부하고 천리포수목원에서 식물을 돌보는 일을 했다. ‘이 방식이 진정 식물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곤충, 자연, 지구까지 공부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현재는 식물을 조화롭게 심고 건강하게 돌보는 정원사를 업으로 삼고 있다. <자연정원을 위한 꿈의 식물>을 공동 번역했으며 그들과 함께 영화 〈다섯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의 자막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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