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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오가닉, 재생, 친환경

가구란 온 생애에 걸쳐 수집한 삶의 컬렉션

건축가 페터 춤토어의 가구 컬렉션

Text | Nari Park
Photos | Time & Style

‘건축가의 건축가’로 불리는 거장 페터 춤토어의 가구 시리즈는 ‘나의 공간’을 둘러보게 한다. 들어내고 비운 여백의 공간에 놓인 가구 한 점의 장악력이 얼마나 절대적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자연에서 온 소재가 장인의 지극한 손길과 만나 완성된 컬렉션은 '가구란 결국 자연과 인간을 공간 속에서 연결하는 매체'라는 거장의 인생관을 담았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20세기 후반 혜성같이 등장한 페터 춤토어. 올해 여든 살을 맞은 백발 거장의 출발은 목수였다. 수많은 공정을 거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완결품을 제작해왔던 그에게 가구를 만든다는 건 자연의 산물을 최대한 인간의 삶에 융화될 만한 오브제로 치환하는 일이었다. 한 번도 자신이 디자인한 가구를 출시한 적 없던 그가 50년 건축 인생 최초로 선보인 ‘페터 춤토어 컬렉션Peter Zumthor Collection은 그의 철학이 응축된 오브제로 평가된다.



일본의 디자인 브랜드 ‘타임 & 스타일Time & Style’이 실제 생활 공간에 사용할 만한 가구로 제작을 맡았다. 목가구 장인들의 기술과 최고급 목재가 결합된 이번 컬렉션은 총 다섯 종류의 가구를 포함한다. 침대처럼 몸을 누일 수 있는 라운지체어와 현대적 소반이 연상되는 목재 사이드 테이블, 정제된 라인이 돋보이는 워킹 테이블 등이다.








무엇보다 이번 가구 시리즈는 지난 50년간 건축가로 살아온 페터 춤토어의 삶을 투영한다. 그동안 그가 제작한 건물 내부에 들였거나 집과 아틀리에에서 사용했던, 거장의 삶에서 눈부시게 빛났던 가구 가운데 엄선했다. 발세리에주 셰즈 롱그Valserliege Chaise longue는 여백의 공간에서 단연 독보적인 분위기를 뽐내는 가구다.








스위스 산악 지방에 자리한 온천 테르메 발스Therme Vals 라운지 공간에 비치되었던 이 의자들은 유리창 너머 그림 같은 알프스 산자락을 마주한 채 마치 인간처럼 살아 숨 쉬는 피사체로 평가받아왔다. 일본 아키타에서 제조한 이번 제품은 목재에 열을 가해 프레임을 유연하게 구부리는 장인들의 벤트우드 기술(bentwood technique)을 접목했다. 더 이상 목재가 낭비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이 기술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건물이 자리한 지역의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페터 춤토어의 건축 방식과도 닮았다.




“세상으로부터 유래한 물성을 들일 때 비로소 집은 완결성을 갖는다.




고도로 절제된 선이 돋보이는 워킹 테이블은 과거 페터 춤토어 자택과 스위스 할덴슈타인Haldenstein에 자리한 아틀리에에서 사용하던 것을 상용화한 것이다. 4개의 탈부착 가능한 원목 다리와 테이블 상판으로 구성됐으며, 상판을 지탱하는 나무의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균형감을 이뤄 미학적 아름다움이 극대화됐다.








콜룸바Kolumba 스타일의 사이드 테이블은 당초 독일 쾰른에 있는 콜룸바 박물관의 리딩룸을 위해 고안한 것을 일본 장인들이 목조각 기술로 새롭게 고안한 것이다. 레드, 블루 계열의 밝은 색상으로 마감한 테이블 상판이 삼각꼴 형태의 목재 다리와 어우러져 경쾌한 느낌을 준다. 테이블마다 나뭇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가구는 자연의 물성을 공간 속으로 옮겨오고자 노력한 페터 춤토어의 건축물을 떠올리게 한다. “건물도, 가구도 모든 재료는 자연으로부터 온다. 세상으로부터 유래한 물성을 들일 때 비로소 집은 완결성을 갖는다.” 페터 춤토어는 말한다.








공간의 쓰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지 않은 채 유행처럼 가구를 소비하는 시대. 반백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관된 철학으로 시적 공간을 선보여온 거장은 결국 가구란 삶과 삶을 연결하는 매개체라고 말하는 듯하다. 타임 & 스타일과 나눈 인터뷰에서 페터 춤토어는 이렇게 말했다. “가구는 한 사람이 온 생애에 걸쳐 수집한 삶의 컬렉션 같은 것이다. 종종 가구가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타인의 공간 속에서 빛나는 물건을 좇는 이들을 본다. 가구가 우리의 삶과 어우러져 호흡하고 다음 세대와 연결되는 것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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